20030208064830-cryingnut4크라잉 너트 – 고물 라디오 – 드럭/KM Culture, 2002

 

 

5인조 악단의 낭만적 메트로폴리탄 연가

크라잉 너트(Crying Nut)는 여러 면에서 흥미롭게 다뤄지는 밴드다. 대부분의 대중 매체들은 이들을 다루기 쉬운 ‘펑크 아이돌’로 취급하고, 홍대앞 인디씬에 기반하고 있는 팬덤에서는 펑크 순수주의가 중심에 있는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류(가요)니 인디(가요)니 가리지 않는 대부분의 잡식성 청자들은 이들의 사운드를 전적으로 취향에 입각해서 받아들이는 것 같고. 물론 그 이유로 크라잉 너트는 어중간한 위치에 놓인 밴드라거나 주류와 인디의 경계에서 효과적인 줄타기를 하는 밴드라는 엇갈린 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엇갈린 평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운드에 대해 펑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크라잉 너트는 곧 한국의 펑크 록을 지칭한다. 그렇게 이들이 홍대 앞에 등장한 지 햇수로만 7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멤버들은 벌써 20대 중반이다. 게다가 주류든 인디든 한국에서 음악(혹은 스포츠)을 하는 청년들에게는 저주처럼 들릴 법한 ‘국방의 의무’도 비켜갈 수 없었으니(멤버들은 2002년 12월 30일에 함께 입대했다), 2002년 12월에 발표한 네 번째 음반 [고물 라디오]는 이들 ‘청춘’의 역사를 중간 정리하는 음반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음반은 긴 시간동안 활동해온 이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는 트랙, “고물 라디오”로 시작한다. 트위스트를 연상시키는 멜로디가 반복되는 전반부와 질주하는 후렴구가 신나는 이 곡을 지나자 등장하는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거리 응원가’로 쓰였던 “오! 필승코리아”를 편곡해 수록한 “필살 Offside”의 경쾌한 멜로디. 그리고 이모코어(emo-core)적인 감수성이 물씬 흐르는 “너구리”까지 제법 정신 없이 지났다 싶을 때 별안간 쿵짝쿵짝하는 우스꽝스럽고 흥겨운 반주에 맞춰 ‘잃어버린 제 사랑도 배달이 되나요?’라는 ‘뜨악한’ 대사를 너무나 진지하게 날리는 “퀵서비스맨”이 등장한다. “소크라테스 클럽”의 재기발랄한 기타 리프를 지나면 처량함을 강조하는 아코디언의 음색에 라틴 스타일의 기타 연주가 트로트로 변형된 듯한 “오드리”가 흐르는데, 이 곡에서도 ‘사랑은 마치 개미지옥에 잘못 빠진 여왕벌과 같은 것이쥐’라는 기름기 잘잘 흐르는 대사가 신성일(혹은 임원희) 버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모던 록 스타일의 “황금마차”와 펑크 스타일의 “사망가”, “타이거 당췌!!”까지 단박에 지나치면, 영화 [스윙키즈](Swing Kids)에 삽입되었던 “Sing, Sing, Sing(With A Swing)”을 연상시키는 인트로의 “Oh My 007″이 흐른다. 이어지는 “양치기 소년의 항해일지”는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를, 서던 록 스타일의 “개가 말하네”는 이전 앨범의 수록곡 “양귀비”를 떠올리게도 한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짠’한 “불꽃놀이”와 맥락에 맞지 않는 가사를 쉴새없이 쏟아내는 “빽구두”를 지나, 뜻밖의 딜레이와 리버브로 아득한 서정성을 풀어놓는 “귀뚜라미 별곡”에 이르러 비로소 음반은 마무리된다.

음반의 전체적인 인상은 이 모든 상이한 음악 스타일들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는 듯한 산만함이다. 게다가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멜로디의 곡들도 제법 있으니 뭔가 있을 듯하다는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음반의 산만함에도 불구하고 [고물 라디오]를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정서는 추억과 노스탤지어다. 수록곡들에 등장하는 어휘들은 고물, 추억, 로망, 어제, 정열, 컨트리 로드, 옛사랑, 낭만, 불꽃, 방황, 구식 난로, 별빛, 회전 목마, 담장과 같은 것들이고, 몇몇 곡에는 아예 존 덴버와 오드리 햅번, 주성치와 같은 아이콘들이 숨어 있기도 하다. 펑크, 이모코어, 서던 록, 컨트리앤웨스턴, 스윙, 트로트, 라틴리듬과 사이키델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갖가지 스타일이 혼합되어 있는 복잡한 사운드가 다다르는 곳은 결과적으로 ‘지나간 옛 사랑’과 같은 과거의 향수이다. 이것은 ‘고물 라디오’라는 제목이 전달하는 주제, 곧 낭만적 노스텔지어라는 정서와 적확하게 맞물리고 있다.

크라잉 너트의 음악은 사실 과하다 싶을 만큼 낭만적이다. 펑크밴드로서의 정체성을 낭만성과 연관시키는 것이 이상하다 싶지만, 이들에게서 펑크라는 외투를 걷어내면 아뿔싸, 낭만적 감수성과 이 5인조 악단의 음악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청자들은 컴필레이션 음반 [Open The Door]에 수록되었던 “블라디미르 광주로 간 사나이”로부터 시작되어 [서커스 매직 유랑단]과 [하수연가(下水戀歌)]를 거쳐 완숙해진 이러한 감수성을 [고물 라디오]에서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제 한국 가요에서 ‘복고주의 밴드’라는 생뚱한 이름으로 분류되어야 할까. 어쩌면 2년 2개월(혹은 그 이상)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그 답을 비로소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가 말하네”와 “귀뚜라미 별곡”이 여기, 이 밴드의 ‘반(反)아스팔트적 낭만성의 진로’에 대한 간추린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20030205 | 차우진 lazicat@empal.com

7/10

수록곡
1. 고물 라디오
2. 필살 Offside
3. 너구리
4. 퀵 서비스맨
5. 소크라테스 클럽
6. 오드리
7. 황금마차
8. 사망가
9. 타이거 당췌!!
10. Oh My 007
11. 양치기 소년의 항해일지
12. 개가 말하네
13. 불꽃놀이
14. 빽구두
15. 귀뚜라미 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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