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ts – Phrenology – MCA, 2002 급박한 터치로 그린 힙합의 정체성과 청사진 주류 힙합 시장에서 루츠(The Roots)의 지위는 유별나다. 메이저 레이블에 7년여 째 머물며 이미 4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면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을 듯한데, 이 필라델피아 출신 ‘밴드’는 여전히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힙합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물며 제이 지(Jay-Z)와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같이 하고 코카콜라와 광고 계약을 맺었다해도, 결코 루츠는 힙합의 ‘진정성’을 신봉하는 골수 팬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다섯 번째 정규 앨범 [Phrenology]는 바로 그러한 믿음에 대한 보답이자,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성장하는 루츠의 진면목을 담고 있다. 전작들에 비해 사운드 프로덕션은 전체적으로 훨씬 격하고 급진적이다. 이전의 재즈 힙합 사운드나 훵크 질감의 소울에 여전히 애착을 갖고 있다면, [Phrenology]는 분명 당혹감을 안겨 줄 것이다. 루츠 사운드를 특징짓는 유기적인 라이브 연주는 여전하지만, 그 내부에서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 드러난다. 우선 지겨울 정도로 시종일관하던 휀더 로즈(Fender Rhodes)의 건반 음이 대폭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거친 록 기타 음색의 비중이 커졌다. 카말(Kamal)의 키보드가 주로 리듬 섹션과 조화를 이루는 임무에 충실하다면, 새로 가세한 기타 주자 벤 키니(Ben Kinney)는 때론 하드 록 성향의 연주까지 과시하며 사운드 중심에서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드럼 프로그래밍 또한 ‘재즈 힙합’ 전형을 파괴하는 데 한몫 한다. 퀘스트러브(?estlove)는 특유의 훵크 드럼 솜씨에, 100 BPM을 넘나드는 드럼 머신의 속도감과 소음을 가미해 사운드의 공격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로, 루츠의 라임과 래핑은 음악에 대한 자성(自省)적 태도와 한층 성숙된 사회 의식을 동시에 표현한다. 사실 앨범 제목 ‘골상학(骨相學, phrenology)’을 반영한 커버 재킷부터 예사롭지 않다. 젊은 흑인 남성의 두뇌 속엔 공적인 영역부터 지극히 사적인 사건까지 미국 흑인의 삶에서 가능한 다양한 경험들이 내장되어있다. 블랙 팬더(Black Panther), 로사 파크(Rosa Parks), 흑인 인권 운동, KKK에서 시작해 노예 제도와 부모의 사랑에 이르는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이 골상학 차트를 분할한다. 거창하게 말해, 이 앨범에서 루츠는 흑인 공동체의 역사와 투쟁을 강조하고 동시에 음악에 대한 자신들의 고민 심지어 개인 일상의 희망과 고통까지 기술하려는 야심을 내보인다. 말릭 비(Malik B)가 떠난 뒤 엠씨잉을 독점하게 된 블랙 쏘우트(Black Thought)는 은유 혹은 직설적 표현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빼어난 라이밍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밴드’의 그늘에 가려 상대적으로 과소 평가되었던 그의 엠씨로서의 재능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포문을 여는 “Rock You”는 블랙 쏘우트의 거친 ‘샤우트’ 랩과 강력한 드럼 비트, 거친 기타 리프가 중심이 된 하드 코어 펑크 성향의 곡이다. 마이너 쓰레트(Minor Threat)의 파괴력에 견줄만한 스킷(skit) “!!!!!!!”가 뒤따르면서, 초반부터 마치 펑크 록 밴드의 앨범을 듣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반면 중간에 포진한 “Thought @ Work”는 벤 키니의 기타와 퀘스트러브의 드럼 솜씨가 돋보이는 훵크 록이다. 힙합 명인 쿨 지 랩(Kool G Rap)과 디제이 폴로(DJ Polo)의 “Men At Work”를 재해석했다고 하는데, 흥겨운 비트 위를 날아다니는 블랙 쏘우트의 랩 또한 일품이다. 그는 다소 복잡한 문장 구성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한꺼번에 전달하고자 한다. 특히 올드 스쿨 배틀 엠씨잉에 대한 애정, 갱스터와 핌프(pimp) 래퍼에 대한 조롱 그리고 알리야(Aaliyah)에 대한 헌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절묘한 라임은 압권이다. 연륜에 걸맞게 루츠는 호화 게스트를 기용하되, 그들을 단지 조연으로 적재적소에 배치, 통제하여 최상의 결과를 끌어낸다. 가령 “Sacrifice”의 넬리 퍼타도(Nelly Furtado)와 “Rhymes And Ammo”의 탈리브 퀠리(Talib Kweli)는 튀지 않기에 오히려 진정한 까메오 구실을 한다. 역으로, “Seed (2.0)”은 순전히 코디 체스넛(Cody Chesnutt) 덕분에 빛을 발하는 곡이다. 그의 데뷔 앨범 [The Headphone Masterpiece]에 수록된 원곡과 마찬가지로 코디 체스넛의 탁월한 보컬과 기타 솜씨가 돋보이는 달콤한 록큰롤이다. 하지만 블랙 쏘우트의 의미심장한 라임이 새롭게 곁들어지면서 적당한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진다. 그는 힙합에 대한 대안으로 네오 소울은 반기면서 록큰롤엔 여전히 냉담한 흑인 공동체에 대한 불만을 잔뜩 토로한다.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은 곡들은 이 앨범의 또 다른 축이다. “Thought @ Work”나 “Seed (2.0)” 등에서 표현된 음악적 자부심과 자성은 “Something In The Way Of Thing (In Town)”에서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나아간다. 원로 시인이자 학자이며 흑인 인권 운동가인 아미리 바라카(Amiri Baraka)의 어두운 서사시는 퀘스트러브의 스네어 드럼과 블랙 쏘우트의 랩을 통해 ‘게토 광시곡’으로 재탄생했다. 한편, 선정적인 제목의 “Pussy Galore”는 가벼운 비트와 편안한 여성 코러스가 시종일관하는 가운데 블랙 쏘우트가 TV 광고 속의 무수한 섹스 관련 문구들을 신랄히 까발린다. 11분 여에 이르는 삼부작 “Water”는 루츠의 비판적 태도와 음악적 욕심이 함께 농축된 야심만만한 트랙이다. 스파이크 리(Spike Lee)의 영화 [정글 피버(Jungle Fever)]에서 웨슬리 스나입스(Wesley Snipes)가 마약을 찾아 할렘을 헤매는 장면이 이 곡의 모티브라고 한다. 짐작하듯이, 마약 중독으로 사실상 루츠를 떠난 엠씨 말릭 비에 대한 아쉬움과 훈계가 가사의 주 내용이다. 아프로비트 성향의 리듬 위로 블랙 쏘우트의 4분 여에 이르는 숨가쁜 래핑이 끝나면, 이어지는 7분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나 선 라(Sun-Ra)를 떠올리게 하는 아방 훵크의 향연이다. 온갖 소음과 소리의 파편들이 이어지는데, 그 와중에 제임스 블러드 얼머(James “Blood” Ulmer)의 프리 재즈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게 이채롭다. 물론 록에서 프리 재즈와 아방 훵크로 이어지는 실험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질 스콧(Jill Scott)의 팔세토 창법이 돋보이는 재즈 힙합 “Complexity”나 요즘 한참 MTV를 통해 밀고 있는 R&B 변종 “Break You Off”는 메이저 레이블 뮤지션으로서 당위적인 마케팅을 고려한 듯하다. 하지만 후자의 곡은 뮤직(Musiq)의 매끄러운 보컬과 자극적인 뮤직비디오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어 다소 혼란스럽다. 아쉽게도, 자신들이 다른 곡(“Pussy Galore”)에서 까발린 상업 방송의 선정성에 스스로 빠져들며 앨범의 일관성을 깨뜨리는 것이다. 미세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Phrenology]는 힙합, 소울, 록, 프리 재즈를 아우르는, 일견 무모한 실험을 제대로 이뤄낸 소중한 결과물이다. 아마 커먼(Common)의 신보 [Electric Circus]와 함께 힙합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지는 문제작이 될 것이다. 사실, 기존의 소위 랩-록 혹은 랩-메탈 하이브리드가 진정한 대안적 변종이 되지 못했기에, 루츠가 주조해낸 새로운 유기질 사운드는 더욱 주목할 가치가 있다. 루츠 식의 끊임없는 ‘내 안의 혁명’이, 단지 주류 시장 내에서 자신의 니치(niche)를 찾아내기 위한 전략의 차원을 넘어, 힙합의 대안 혹은 대안적 힙합을 주도하는 하나의 기폭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20021227 | 양재영 cocto@hotmail.com 9/10 수록곡 1. Phrentrow 2. Rock You 3. !!!!!!! 4. Sacrifice (feat. Nelly Furtado) 5. Rolling With Heat 6. Waok (Ay) Rollcall 7. Thought @ Work 8. The Seed (2.0) (feat. Cody Chesnutt) 9. Break You Off (feat. Musiq) 10. Water 11. Quills 12. Pussy Galore 13. Complexity (feat. Jill Scott) 14. Something In The Way Of Things (In Town) 15. Bonus Track 1 16. Bonus Track 2 17. Bonus Track 3 18. Bonus Track 4 관련 글 Niggas with Guitars: ‘블랙 록’의 새로운 영웅들 – vol.5/no.3 [20030201] Cody Chesnutt [The Headphone Masterpiece] 리뷰 – vol.5/no.3 [20030201] N*E*R*D [In Search Of…] 리뷰 – vol.4/no.9 [20020501] Res [How I Do] 리뷰 – vol.4/no.7 [20020401] 관련 사이트 OkayPlayer.com의 The Roots 공식 사이트 http://www.okayplayer.com/theroots MCA의 The Roots 페이지 http://www.mcarecords.com/artistMain.html?artistid=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