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05100935-13th_charly13th Floor Elevators – The Psychedelic Sounds Of The 13th Floor Elevators – International Artists/Charly, 1966/2001

 

 

광기의 역사

써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스(The 13th Floor Elevators)의 데뷔 앨범 [The Psychedelic Sounds Of The 13th Floor Elevators]는 싸이키델릭 록의 역사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일부의 견해에 따르면 이 앨범은 역사상 최초의 싸이키델릭 록 앨범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약간의 부연설명을 필요로 한다. 시간상으로 볼 때 1966년 7월에 발표된 버즈(The Byrds)의 [Fifth Dimension]과 야드버즈(Yardbirds)의 [Roger The Engineer]가 이 앨범에 약 1개월 정도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싸이키델릭 록=싸이키델릭 록 밴드가 하는 음악’이라는 형식논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즉 버즈와 야드버즈의 앨범이 각각 포크 록 밴드와 블루스 록 밴드가 발표한 ‘싸이키델릭 성향’의 앨범들이지 싸이키델릭 록 앨범은 아니었다는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여기서 쉽사리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최초의 싸이키델릭 록 앨범으로 평가되든 최초의 싸이키델릭 록 밴드의 앨범으로 평가되든 간에 이 앨범의 역사적 중요성이 유지되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The Psychedelic Sounds Of The 13th Floor Elevators]가 누리고 있는 명성은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에 크게 의존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앨범은 음악적인 면보다 음악 외적인 면에서 더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써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스는 싸이키델릭 록의 메카인 미국 서해안 출신이 아니라 남부 텍사스주의 오스틴 출신이다. 남부 출신으로 싸이키델릭 록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희소성만으로도 이들의 음악은 싸이키델릭 록 팬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룹의 리더 로키 에릭슨(Roky Erickson)은 시드 배릿(Syd Barrett), 스킵 스펜스(Skip Spence) 등과 더불어 록 음악계의 대표적인 광인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에는 정상이었지만, 그의 유명한 정신병력은 ‘미친 천재’에 관한 낭만주의적 관념과 결부되어 이 그룹에 대한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하나의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은 이 앨범이 십 수년간 전세계적인 희귀 음반이었다는 점이다. 즉 이 앨범을 아는 사람은 많았어도 정작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 앨범의 가치는 팬들의 상상 속에서 자기 증식할 수 밖에 없었다.

[The Psychedelic Sounds Of The 13th Floor Elevators]가 가장 먼저 시선을 모으는 부분은 히피즘의 세계관을 강하게 표명한 앨범의 표지 디자인이다. 심안을 상징하는 눈 속의 눈과 피라미드의 이미지 그리고 LSD로 인도된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언설 등, 이 앨범의 표지는 초기 히피즘의 나이브한 흥분과 환희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인간은 수직적으로 분화된 범주를 통해 지식을 조직해왔다…”로 시작되는 이들의 언명은 일부 사람들에게 짜릿한 지적 흥분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LSD의 발견은 천지개벽과도 같은 사건이고 LSD의 경험 유무는 새로운 인간과 낡은 인간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주장에까지 동의를 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LSD를 통해 도달한) 새로운 체제는 인간의 진화에 있어서 커다란 진전을 표상한다. 새로운 인간에 대한 낡은 인간의 관계는 인간에 대한 유인원의 관계와 같다”. 당시만해도 LSD는 불법이 아니었고 그 해악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의 동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 주장에 담긴 논리의 비약은 순박함을 넘어 어리석음에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써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스 음악의 가장 독특한 면모는 일렉트릭 저그(Electrig Jug)로 만들어내는 물방울 같은 사운드다. 저그(물통)를 그룹 편성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는 점은 이들의 음악적 뿌리가 전통적인 저그 밴드에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타미 홀(Tommy Hall)의 저그 연주는 전통적인 연주법과는 전혀 다른 그만의 독특한 발명품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저그의 존재는 계통학적이라기 보다는 은유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혼란과 대결로 특징지어지는 물고기 자리의 시대(Age of Pisces)가 저물고 사랑과 평화가 숨쉬는 물병자리의 시대(Age of Aquarius)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악기(?)의 쓰임이 이들의 음악에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일렉트릭 저그가 이들의 사운드를 매우 독창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악기의 쓰임이 그리 음악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앨범 전체를 통해 일렉트릭 저그는 마치 다른 악기들과는 딴 살림을 차린 것처럼 연주된다. 전체적 조화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혼자만의 연주를 지속하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에는 신선하게 들리던 이 소리도 2-3번 트랙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상당히 거슬리기 시작한다. 이 앨범을 좋아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여부는 일렉트릭 저그의 사운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일렉트릭 저그의 시험을 통과한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써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스의 음악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싸이키델릭 록과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앨범에 실린 음악은 ‘이행기의 싸이키델릭 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1960년대 초의 거라지 록이 싸이키델릭 록으로 진화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의 스냅 샷인 것이다. 1967년부터 만개하는 샌프란시스코 싸이키델릭 록에 비하면 이 앨범의 음악은 매우 원시적이고 조야하며 아마추어적이다. 물론 이들 음악의 거칠고 소박한 질감을 더 좋아하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라지 록 특유의 단조로움과 깊이의 결여는 이 앨범이 지닌 몇몇 장점을 끝까지 지탱하기 어렵게 만든다. “Splash 1”, “You Don’t Know”, “Kingdom Of Heaven” 등 몇 개의 트랙을 제외하고 나면 이 앨범의 나머지 수록곡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대부분의 곡들이 2-3분대의 간결한 로큰롤 넘버들이고 가장 긴 “Rollercoaster”조차도 5분을 조금 넘는 정도다. “Reverberation (Doubt)”이나 “Fire Engine” 등에서 들리는 기타 피드백이 어느 정도 싸이키델릭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싸이키델릭적 아이디어가 충분히 구현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 앨범에서 싸이키델릭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의도와 지향점에 국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운드의 차원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다.

1990년대 초에 있었던 이 앨범의 CD 재발매는 컬렉터블스(Collectables), 데칼(Decal), 스팔락스(Spalax) 등 최소한 세 개 이상의 레이블을 통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처럼 여러 개의 버전이 한꺼번에 출시될 수 있었던 것은 판권을 지닌 인터내셔널 아티스츠(International Artists)가 오래 전에 도산했고 그와 함께 이 앨범의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가 실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아티스츠를 통해 발매된 써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스 음반들의 마스터테이프는 현재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이들 앨범의 CD 재발매 버전들은 모두 다 LP를 복각한 것이거나 기타 정체불명의 음원을 사용해서 만든 불법 음반들이다. LP 복각판의 경우에도 복각에 사용된 LP가 오리지널 마스터테이프에서 추출된 음원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이 당시의 CD들은 버전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답답하고 열악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이들 중 일부는 현재에도 가끔 시판 중인 것을 볼 수 있는데. 같은 돈을 주고 이런 음반을 사지 않도록 철저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20030205124550-13thoriginalThe Psychedelic Sounds Of The 13th Floor Elevators 오리지널 커버아트.
이러한 상황은 2001년에 찰리(Charly)의 새로운 버전이 발매됨으로써 비로소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었다. 찰리의 2001년 재발매 버전은 지금까지의 버전들과 달리 오리지널 앨범의 프로듀서인 레란 로저스(Lelan Rogers)에게서 라이센스받은 음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그가 제공한 음원도 오리지널로 보기에는 다소 의심스럽고 실제로 군데군데서 결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례로 “Fire Engine”에서 나타나는 좌우 발란스의 교란은 테이프가 입은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찰리 판의 음질을 능가하는 버전은 없었고 앞으로도 오리지널 마스터테이프가 발견되지 않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찰리 판의 문제는 음질보다는 포장에 있다. 오리지널 앨범커버의 색상과 위치를 제 멋대로 변경해 만든 이들의 커버아트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싸구려 냄새를 물씬 풍긴다. 2002년에 이탈리아의 선스팟츠(Sunspots) 레이블이 재발매한 가장 최근의 버전은 오리지널 LP의 게이트폴더 디자인을 그대로 되살렸고 음질도 찰리의 음원을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버전은 1,500장 한정판으로 발매된 탓에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20030131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6/10

수록곡
1. You’re Gonna Miss Me
2. Rollercoaster
3. Splash 1
4. Reverberation (Doubt)
5. Don’t Fall Down
6. Fire Engine
7. Thru The Rhythm
8. You Don’t Know
9. Kingdom Of Heaven
10. Monkey Island
11. Tried To Hide

관련 사이트
The 13th Floor Elevators 비공식 사이트
http://elevators.blinkenlights.org
http://www.borderlinebooks.com/us6070s/t3z.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