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29064025-0502kimheegap_gogo_cover김희갑 – GoGo Sound Vol. 1 – 유니버어살(KLS 20), 1971

 

 

‘경음악 악단’의 싸이키델릭하고 트라이벌한 즉흥 잼

1980년대 중반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 양희은이 부른 “하얀 목련”같은 곡으로만 김희갑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 음반은 ‘의외’이자 ‘충격’일 것이다. 그가 ‘대중가요 작곡가’이기 이전에 연주인이자 마스터이고, 20여년 동안 ‘현충일을 제외하고 매일 밤’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했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의외’일 것이다. 김희갑 악단의 연주는 ‘무드있는 경음악’으로 정평이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음반은 자신의 자작곡도 아니고 외국의 유명곡도 아니고 ‘신중현의 히트곡’을 연주한 음반이다. ‘왜 그랬는지’라는 배후의 이유는 따지지 말고 음악부터 감상해 보자.

밴드의 편성은 7인조다. 기타, 드럼, 베이스, 오르간의 ‘포 리듬’을 기본으로 하고 앨토 색서폰과 콩가와 봉고가 추가되어 있다. 그렇지만 기타와 오르간의 역할은 리듬에 그치지 않고 솔로 연주를 통해 멜로디를 연주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타는 오버드라이브를 많이 걸고 서스테인을 길게 뽑은 톤으로 원곡에서 보컬의 주(主)선율을 연주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역할을 오르간이나 앨토 색서폰이 맡을 때 기타는 대(對)선율을 만들어 내거나 애드립을 전개한다. 결과적으로 김희갑의 ‘록 기타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그리 흔치 않은 음반이다. 이런 선주/후주(call and response)는 기타와 오르간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베이스 기타마저도 단지 리듬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와 서로 주고 받으면서 멜로디를 연주할 때가 있다. “커피 한잔”의 도입부에서 기타와 동일한 멜로디를 한 옥타브 차이로 주고 받는 패턴이나 “빗속의 여인”의 버스(verse) 부분에서 기타가 선율을 연주하면 베이스가 리프를 만들어 응하는 패턴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연주 잘 하는 프로페셔널 연주인들의 능수능란한 즉흥 잼 연주를 듣는 기분이다. 당시의 관행이었던 2트랙을 이용한 더빙(이른바 ‘오도아와세’)도 없이 ‘한번에 간’ 연주다. 중간중간에 사소한 실수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싸이키델릭 록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분위기는 충분히 싸이키델릭하다. 특히 “떠나야 할 그 사람”의 브릿지와 엔딩 부분에서 오르간이 Am – G – F – E 로 이어지는 코드를 누르는 부분은 마치 스냅 사진을 보여주듯 ‘그때 그 시절의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 음반은 앞면과 뒷면으로 구분된 것을 제외한다면 트랙 사이에 이음새가 없어서 분절되지 않는 부단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데, 이 점이 싸이키델릭한 효과를 증폭시킨다.

기타, 오르간, 심지어 베이스까지 솔로 연주를 통해 연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리듬을 다른 악기들이 담당해 주기 때문이다. 드럼은 물론 봉고와 콩가가 추가되어 리듬이 다채롭고 현란하기까지 하다. 불행히도 녹음 환경의 미비 탓인지 낮고 깊은 톤으로 퉁퉁거리는 콩가 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님아”의 도입부에서는 콩가 특유의 ‘붕’하면서 끌어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3분이 지난 다음부터 1분 가량 지속되는 타악기들의 향연에서도 콩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비트를 잘게 쪼개어 두들겨 대는 봉고는 음반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부단히 지속된다. 연주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니라 ‘한국 타악기 연주계의 귀재’ 유복성이다. 퍼커션의 추가로 인해 사운드는 싸이키델릭할 뿐만 아니라 ‘트라이벌(tribal)’해진다.

이런 ‘싸이키델릭’함과 ‘트라이벌’함(영어 단어로 표현해서 미안하다)이 ‘한국적’인지에 대해서는 따져 보아야겠지만, “커피 한 잔”에서 원곡과는 다르게 박자 한 개를 셋으로 쪼개어 바운스(bounce)의 감을 가미한 리듬 편곡은 왠지 ‘민요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워킹 베이스(walking bass) 스타일의 재즈풍의 베이스 연주, 그리고 마지막에 ‘아우’하고 소리지르는 룸바풍의(?)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면 ‘잡종적 돌연변이’같은 양상까지 보여준다.

중간의 트랙들은 비트 하나를 넷으로 쪼갠 편곡이 특징적이다. 구성은 대동소이하지만 유심히 들으면 조금씩 변주를 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음악의 경우 구성이나 형식을 따지면서 듣는 일은 바보스러워 보인다. ‘소리의 흐름에 몸과 정신을 맡기는 편이 낫다’는 경우에 속하는 음악이다. 특이한 트랙은 마지막에 배치된 “봄비”다. 수록곡 가운데 가장 느린 템포의 이 곡은 원곡 특유의 축 늘어지는 멜로디 탓인지 주 선율을 기타로 연주하지 않고 색서폰과 오르간이 담당하고 기타는 아르페지오 백킹이나 이펙트를 이용한 묘한 효과음을 넣는 것으로 만족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음반과 비슷한 음악이 뭐가 있을까. 과문한 탓이겠지만 크림(Cream)이 재즈 연주인들과 협연하면 이런 사운드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트(afro-beat)의 제왕인 펠라 쿠티(Fela Kuti)의 발상이 이 음반의 발상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망상도 든다(펠라 쿠티는 런던에 체류할 때 크림의 진저 베이커와 협연한 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단발적 시도로 끝나 버렸다. 이 시기 한국의 음반들 가운데는 ‘이 길로 죽 나갔으면 뭐가 나와도 나왔을 텐데…’라는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렇지만 그 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개발’로 인해 사라져 버리고 없는 서울의 많은 옛길들처럼. 20020130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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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음반 표지 뒷면에 적혀있는 연주인들은 다음과 같다. 기타 김희갑, 드럼 김인성, 콩가 유복성, 봉고 전명찬, 올갠 박남수, 베이스 경윤, 앨토 색서폰 강승용. 이들은 당시의 ‘김희갑 악단’의 멤버들과는 다르므로 이 음반의 주체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보인다(김희갑 악단의 정규 멤버들은 ‘관련 글’에 실린 김희갑과의 인터뷰를 참고하라). 이들 중 김인성은 재즈 클라리넷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기의 캄보 밴드인 ‘이동기 악단’의 정규 멤버로 활동했고, 킹 프로덕션/마장동 스튜디오(유니버살 스튜디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이다. 이동기 악단의 음반 [이동기 작편곡 경음악 제5집](킹 레코드KL-7044, 1967.8)에 수록된 “Congo”에서도 ‘쿠바 음악같은’ 그의 보컬을 들을 있다. 이동기와 이동기 악단에 대해서는 [핫 뮤직] 2003년 2월호에 실린 ‘그룹 사운드 열전 2회’를 참고하라.

2. 1960년대 중반 ‘일반 무대’로 나온 김희갑의 기타 연주곡집으로는 1960년대 이전의 대중가요를 연주한 [톱힛트 경음악 퍼레이드 제3집: 사랑하고 있어요/울려고 내가 왔나] (오아시스 OL 12531, 연도 미상), 샹송과 라틴 음악을 주로 연주한 [김희갑 악단 제1집: 감미로운 땐씽 경음악] (오아시스 OL 12539, 연도미상), 자신의 곡과 기타 대중가요를 연주한 [즐거운 경음악] (유니버어살 K-APPLE 가 26, 연도미상) 등이 있다. 자세한 음반 정보는 [핫 뮤직] 2003년 1월호에 실린 ‘그룹 사운드 열전 1회’를 참고하라.

수록곡
Side A
1. 커피 한잔
2. 떠나야 할 그 사람
3. 빗속에 여인
Side B
1. 님아
2.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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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윈드버드
http://www.windbird.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