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혜밴드 –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로맨스 – 圖詩樂, 2002 전자인간 황씨의 구저분한 로맨스 그래, 차라리 암울하면 좋겠다. 여전히 계속되는 황신혜밴드의 ‘위선’ 혹은 ‘위트’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대상에 대한 시선을 조소(嘲笑)로 ‘위장’하기 위하여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으니 들을 때마다 ‘위경련’이 일어날것만 같다. 이는 아마도 병아리 감별사 ‘김택봉’씨나 새마을 금고 ‘미쓰 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좁쌀로맨스’가 희극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우울하면 좋겠다. 그것은 “퍼즐”에서 이야기하듯 “한사람은 볼 수가 없고 한사람은 들을 수가 없고 한사람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 그 깊은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있으랴. 하지만 꼬이고 숨기는 의중이란 비단 이런 연유에서만 일까. 가끔씩 드는 생각은 무언(無言)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편법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이는 긍정과 부정이 혼합되어 믿음과 의심을 함께 만든다. 아울러 황신혜밴드는 앨범 속지에 쓰여진 소설가 이외수의 “문득 누군가를 못 견디게 사랑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음악에 부침”이라는 오매불망 연서(戀書)가 내용과 의도를 상반되게 진행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 하긴, 이렇게 생각한들 돌아오는 대답이란 기껏해야 “아, 오줌 마려워”일 테지만. 이런 식으로 스타일 없음이 곧 자신(들)의 스타일이라는 황씨는 세 번째 앨범에서도 여전히 ‘키치’적으로 걸어오니 ‘록커’에서 ‘전자인간’으로 변해도 청자에게 다가서는 태도란 여느 때와 다름없다. 다만 노래내용이 다소 고어(gore)스러워져 “너의 몸 속에 실핏줄 속을 헤엄치며 깊이 깊이 떠다니고 싶어”라든가 “검은 눈동자에 털, 혓바닥에 붉은 털”이라는 가사를 속지에서 읽을 때면 섬뜩하기는 해도 음악과의 부조화, 앞뒤로 배치되어있는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로맨스” 연작과 “새마을 금고 미쓰 김은 좋은 냄새가 나. 예쁜 미쓰 김 한번만 웃어주면. 아, 오줌마려워… 흐흐흐”라는 식의 내레이션, 여기에 쓰인 조악한 샘플링과 왜소한 연주곡 등으로 부족한 것을 방어하기란 충분하지 못하다. 즉, ‘전자인간 장본인’이라는 명칭아래 나열된 음악들은 기본적으로 이전의 밴드형식과는 다르게 일렉트로닉을 바탕으로 하지만 동어 반복적인 태도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을뿐더러 앨범을 채우고 있는 음원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안일함으로 베여있다. 수록곡 중 가장 긴 14분대의 “꽃과 곰아줌마”의 경우도 1집에서의 히든트랙 “G선상의 아리랑”이나 2집의 “Pain KillerⅡ”처럼 상반된 당혹스러움, 혹은 그 앨범의 사운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단지 길게 늘어진 고무줄에 불과하다. 비록 “온종일 비가 내려”는 반 젤리스의 “블레이드 런너(Blade Runner)”가 연상되는 음울한 어조와 음원이 어우러져 있거나 “가시”의 기괴스러움, “잘 먹겠습니다”에서의 산울림스러운 분위기, “퍼즐”에 스며든 강태환의 전위적인 색소폰 샘플이 도약을 가져오는 듯 싶지만 이러한 요소가 전방위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Pussycat VS dickbird”나 “Electronic lover”의 단순 반복적이며 이따금 효과하나 넣어주는 습작성 연주곡이 감상적이지도 않고 댄스 플로어용이거나 실험성 등이 가미되지 못한 소음의 남발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로맨스” 연작에 지대한 원인을 돌려야 할 것 같다. 앨범 속지에 그려진 병아리 얼굴을 한 김씨는 마치 강간을 하듯 미스 김에게 달려들지만 이를 정당화시키려는 듯 눈물로 그렁그렁하고 이에 대하여 미스 김은 고작 “싫어요. 냄새가 나더라구요, 술 냄새가”라며 평면적으로 항거하고 마는데, 이처럼 사운드도 강요에 가까운 집착으로 너저분하게 풀어 나간다. 이는 지독한 남근위주의 사상이며 유아기적 상상인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는 도대체 여기 어디에서 ‘놀라운 에너지와 신선한 메시지’를 느낀 것일까. 전자인간 황씨,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을 속이지 말아라. 20030115 | 이주신 youhadbeenredsometime@hotmail.com 3/10 수록곡 01. 퍼즐 02. 털 03. 온종일 비가 내려 04. 가시 05.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로맨스 act 1 06. Pussycat VS dickbird 07.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로맨스 act 2 08. Electronic lover 09. 병아리 감별사 김씨의 좁쌀로맨스 act 3 10. 열등인간 멸종시대 11. 잘 먹겠습니다 12. 꽃과 곰아줌마 관련 글 황신혜밴드 [만병통치(萬病通治)] 리뷰 – vol.3/no.1 [20010101] 영화음악 [하면 된다] 리뷰 – vol.2/no.24 [20001216] 배리어스 아티스트 [도시락 특공대 2: Behind Story] 리뷰 – vol.2/no.9 [20000501] 관련 사이트 홈페이지 http://www.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