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식스 – 당신은 몰라/아름다운 인형 – 오아시스(OL 1104), 1972/1975 히 식스의 만가 1970년대 초반 당시 히 식스가 최정상의 ‘그룹 사운드’였음을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 당시에 잘 나가던 TV 프로그램 ‘쇼쇼쇼’에 출연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들의 인기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은 이 음반의 몇 곳에서 암암리에 표명되고 있다. 본 음반을 열면, 앞면 커버에는 큼지막하게 히 식스의 얼굴이 부각되어 있다. 이전의 음반 커버들이, 하늘이 보이는 건물 아래 멀찌감치서 찍은 사진이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자신만만한 포즈로 클로우즈업된 얼굴은 그들의 인기(에 힘입은 자부심)를 은근슬쩍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음반 뒷면 문구에 적힌 ‘구룹 사운드의 왕자’ ‘인기 정상을 달리는 여러분의 히 식스’라는 글귀도 그저 빈말은 아닌 것이다. 또 한 가지. 음반의 기록사항을 꼼꼼히 체크하면, 이 음반을 당시 2대 메이저 중 하나인 오아시스 레코드로 이적해서 발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변화 지점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보컬들을 보자. 그 동안 다이나믹한(예를 들어 비틀스 식의) 보컬 하모니를 채용해 다채로운 보컬을 선보였었는데, 이런 점이 이 음반에서는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대신 이영덕이나 최헌의 리드 보컬 라인이 선명하게 들리곤 하는데, 특히 전 음반에 비해 최헌의 비중이 상당하게 느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폭발하는 기타 솔로는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이전의 ‘순수한 환희’가 다소 사라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물론 보다 정제되고 다듬어진 사운드를 분출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대곡인 두 번안곡으로 B면을 채워 놓은 것 역시 당시 그룹 사운드 음반 포맷의 한 정형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이 번안곡 레파터리는 여전히 소울의 흥취를 포함하고 있는데, 템프테이션스(The Temptations)가 아닌 레어 어쓰(Rare Earth)의 버전을 원형으로 삼은 “Get Ready”가 삽입되어 있다. 불길하게 들리는 오르간에 유상윤의 플루트가 때로는 온화하게 때로는 싸이키델릭하게 입혀지다가, 퍼즈 톤의 기타와 시원스레 샤우팅하는 최헌의 보컬이 이어진다. 뒤이은 화려하고 긴 연주부에서는 베이스 기타, 오르간, 플루트, 기타, 드럼의 솔로가 차례로 삽입되면서 15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무아지경으로 인도한다.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는 관악기와도 어우러지는데 당시 유행한 일명 ‘브래스 록’ 스타일과도 접속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시카고(Chicago)의 “Colour My World”를 번안한 “사랑의 약속”을 수록했는데 이 곡에서 주도하는 것은 관악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선율이 흐르는 건반 악기 및 서정적인 유상윤의 플루트이다. 이런 서정성은 “태양이 질 때”에서도 나타난다. 이 곡은 영국 싸이키델릭 록 및 바흐에서 영향받은 프로그레시브/아트 록의 명곡인,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을 번안한 곡으로 최헌의 우수에 찬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이 외에는 모두 ‘창작곡’으로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창작곡은 그룹 사운드 히트곡의 전형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겠소이다”를 제외하면 “당신은 몰라” “사랑의 상처” “초원의 빛” 등의 창작곡들은 미드/슬로 템포의 노래들이다. 먼저 “초원의 빛”은 사실 새로운 곡이 아니라 지난 앨범 [히 식스 Vol. 2(초원의 빛/물새의 노래)]에도 실렸던 곡이다. 본 음반에 김호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김호의 본명은 김정호다. 그가 누구인지는 이전의 기획글‘고고 클럽, 한밤의 혁명 혹은 하룻밤의 꿈: 1971-73’에 나와 있듯 서울대 음대 출신 MBC PD로, 연주자 및 가수로 활동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음반의 버전은 이전의 버전과는 달리(이전에 실렸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1분 가량 축소되어 간명한데, 전주에서 들렸던 새소리나 여성 배킹 코러스가 사라지고 후렴구 반복 부분과 플루트 간주가 삭제되어 있다. 그 외에 전주 후 보컬과 기타가 주 선율을 주고받는다거나, 다층적인 보컬 코러스가 입혀졌다는 점은 여전하게 들린다. 베이스나 드럼을 비롯해 오르간 소리가 명징하게 들리는데, 시간이 흐른(혹은 그로부터 비롯된 녹음환경) 탓일까(아니면 음반의 상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히 식스의 ‘초원’ 시리즈의 대미이자 외국식이 아닌 ‘가요식’ 기타 솔로가 고착화된 형태로 기록될 만한 곡임에는 틀림이 없다. 강찬호 작사, 김홍탁 작곡(음반에는 전문 작사가 지명길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의 ‘문제작’ “당신의 몰라”에서는 아련하고 슬픈 멜로디의 오보에 소리가 들리는데 음반 정보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 연주자는 게스트로 초빙한 손학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래스 록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도 이 곡에서는 이 빰빰빰 하고 튀어 오르는 관악기의 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관악기의 운용은 “모르겠소이다” 같은 곡에서 나타난다. 전주부터 관악의 활기찬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데, 간주의 화려한 기타 애드립이나 후주의 싸이키델릭한 오르간을 비롯해, 다소 묘한 스케일 하에서 히 식스의 장기였던 메인 보컬과 배킹 보컬의 주고받는 역동적인 보컬 형식이 인상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그런데 정점은 곧 하강을 의미한다고 하던가. ‘인기 정상의 히 식스’의 아성은 지속되지는 않았다. 당시 히 식스가 인기 위주로 흘러갔으며 다소 쇠퇴한 스타일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음반은 안정적이고 세련된 히 식스의 음악을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 음반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밴드의 리더 김홍탁이 도미하면서 사실상 히 식스의 아성은 해체의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결국 이 음반은 히 식스의 만가(輓歌)이자 ‘백조의 노래’가 되었다. 20030128 | 최지선 fust@dreamwiz.com 0/10 * 덧붙이는 말 1) 오아시스에 비하면 이전에 발매했던 그랜드 레코드는 군소 레코드사 축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오아시스는 6년 동안 전속시켰던 나훈아를 1972년 봄 지구에 빼앗겼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도 눈을 돌린 것이라고 하면 억측일까. 진위야 어찌되었든 오아시스는 그룹 사운드나 포크 쪽에도 관심을 가져서 히 식스 음반이나 ‘Oasis Folk Festival’, ‘Oasis Pop Festival’ 컴필레이션 시리즈물을 발매했다([Oasis Pop Festival Vol.1]에는 히 식스, 영 사운드, 빅 화이브 등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오아시스의 주력은 늘 트로트였다. 참고로 당시 나훈아는 “물레방아 도는데”로 1위 자리를 지키다가 그해 겨울에는 남진이 “임과 함께”로 응수하게 된다. 2) 위에서 “당신은 몰라”가 ‘문제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저작권 시비가 일어 약간 시끄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때 김홍탁이 만들어 이 앨범에 수록한 곡인데 당시에는 별로 히트하지 못했다. 김홍탁이 도미한 후 이 곡은 ‘임자없는 노래’로 알려져 김추자, 이현, 윤항기 등의 가수들이 취입했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물론 해결은 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리메이크로 말미암아 히 식스의 이 음반도 몇 차례에 걸쳐서 재발매되었는데, 이것이 히 식스 멤버였던 최헌이 훗날 속하게되는 검은 나비의 “당신은 몰라”의 히트 때문이 아니냐는 후문이 있다. 히 식스의 초반에서 “당신은 몰라”가 A면 네 번째 트랙이었던 반면에 재발매된 음반에서는 A면 첫 곡의 위치로 올라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견할 수 있는 “당신은 몰라”의 최초 레코딩은 1971년 [내 님이 그리워/당신은 몰라(김홍탁 작품집)](신세기, 가 12344)에 실린 임성훈(!)이 노래한 버전일지도 모른다. 3) 김홍탁의 도미 이후 히 화이브/히 식스 계보는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정회택이 가입했으나 그 역시 1년 정도 활동하다가 도미했다. 그후 라이더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이진동이 가입해 활동했고, 이 무렵 정회택의 소개로 배수연이 들어오고 권용남이 나갔으며, 최헌도 비슷한 시기에 히 식스를 나가 검은 나비로 활동하게 된다. 곧 조용남도 떠나 유상윤이 히 화이브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이끈다. 유상윤이 이끌던 밴드는 1980년에 히 식스라는 이름으로 ‘김홍탁 기획·안치행 제작(안타기획)’으로 음반 [롤라 디스코]를 발표했다. 수록곡 Side A 1. 당신은 몰라 2. 사랑의 상처 3. 초원의 빛 4. 모르겠소이다 5. 태양이 질 때 Side B 1. 아름다운 인형(Get Ready) 2. 사랑의 약속(Colour My World) 관련 글 ‘한국적 록’의 유산(流産)과 유산(遺産): 1974-75 – vol.4/no.24 [20021216] 드래곤스의 보컬 박명길과의 인터뷰 혹은 긴 채팅 – vol.4/no.24 [20021216] 김기표 인터뷰 – vol.4/no.24 [20021216] 프론트맨보다 더 중요한 사이드맨, 이남이와 인터뷰 – vol.4/no.24 [20021216] 이정선 [이리 저리/거리] 리뷰 – vol.4/no.24 [20021216] 양병집 [넋두리] 리뷰 – vol.4/no.24 [20021216] 오세은 [우리 애인/고아] 리뷰 – vol.4/no.24 [20021216] 김의철 [김의철 노래모음] 리뷰 – vol.4/no.24 [20021216] 김인순 [비오는 날에는/초저녁별(안건마 편곡집)] 리뷰 – vol.4/no.24 [20021216] 엽전들 [저 여인/생각해/그 누가 있었나봐/나는 몰라] 리뷰 – vol.4/no.24 [20021216] 검은 나비 [Album Vol. 1] 리뷰 – vol.4/no.24 [20021216] 최헌 [세월/오동잎] 리뷰 – vol.4/no.24 [20021216] 김훈과 트리퍼스 [나를 두고 아리랑/사랑의 추억] 리뷰 – vol.4/no.24 [20021216] 양키스 [Yankee’s GoGo 크럽 초대] 리뷰 – vol.4/no.24 [20021216] 신중현 & 더 멘 [거짓말이야/아름다운 강산] 리뷰 – vol.4/no.24 [20021216] 영화음악 [별들의 고향] 리뷰 – vol.4/no.22 [20021116] 배리어스 아티스트 [골든 포크 앨범 Vol.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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