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 O’Rourke – Insignificance – Drag City, 2001 ‘거세된’ 20세기 록의 업그레이드 몇몇만 열거하겠다. 윌코(Wilco), 스테레오랩(Stereolab), 소닉 유스(Sonic Youth), 스모그(Smog), 하이 리마스 (The High Llamas), 슈퍼청크(Superchunk)의 나열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간혹 창작자로서의 음악가보다는 프로듀서로서 이름이 더 알려진 이들이 있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가 그러했듯이, 짐 오루크(Jim O’Rourke) 또한 그렇다. 짐 오루크는 시카고의 드폴 대학(DePaul University)에서 클래식작곡가로 교육받았다. 그래서 오루크가 음반을 발표했을 때, 그의 작곡방식은 무조(無調)의 현대 클래식 작곡법에 기반하고 있었고 이는 1995년 발표된 [Terminal Pharmacy]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던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일렉트로-어쿠스틱(electro-acoustic)음악이었다. 오루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비교적 대중음악에 가까운 어법을 구사하는 가스트르 델 솔(Gastr del Sol)의 두 번째 음반인 [Crookt, Crackt, or Fly](1994)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루이스빌의 매쓰 록(Math Rock) 공동체에서 시카고 포스트 록(Post-Rock) 공동체로 이어지는 가교역할을 하던 가스트르 델 솔은 오루크가 참여하기 전에는 데이빗 그럽스(David Grubbs)와 번디 케이 브라운(Bundy K. Brown)이 악곡의 구성을 맡고 존 맥킨타이어(John McEntire)가 연주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짐 오루크가 참여하면서부터 번디 케이 브라운의 역할을 상당부분 그가 가져가게 되었고, 사실상 가스트르 델 솔은 데이빗 그럽스와 짐 오루크의 2인 체제가 된다. 짐 오루크는 가스트르 델 솔과 솔로 작업을 병행하며, 대중음악과 현대 클래식 그리고 프리 재즈(Free Jazz)의 해체주의를 융합시켜 시카고 포스트 록 씬의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였다. 이는 가스트르 델 솔의 [Upgrade & Afterlife](1996)와 솔로 작업인 [Bad Timing](1997)을 거쳐 텍스트의 체계적인 구성과 즉흥 연주의 느낌 둘 다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어쿠스틱기타의 단선적인 면을 최대한 살리는 형식을 유지했다.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가스트르 델 솔에서 [Camoufleur](1998)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사운드의 방향성은 기존의 틀을 유지했지만 확장된 선율과 풍부한 질감의 텍스처를 선보이며 단선적인 어쿠스틱 기타위주의 음향실험에서 탈피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 점은 그동안 오루크가 곡의 텍스트를 우선했던 것과는 달리 어떻게 들려지느냐는 점을 감안했다는 즉, 선율을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선명한 근거가 된다. 그것이 명백해지는 바는 솔로 작업인 [Eureka](1999)이다. 팝에 경도되었음을 단적으로 예시하는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의 곡을 커버한- “Something Big”과 기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다양한 악기의 음향이 자아내는 오밀조밀한 텍스트로 인도하는 “Prelude to 110 or 220/Women of the World”에서 증명되듯 오루크는 새로운 ‘팝의 텍스트’를 구현했다. 하지만 [Eureka]가 혁신적인 음반이었더라도, 되새겨 볼 점은 있다. 시종일관 음반을 채우는 달콤한 선율과 스트링, 아기자기하게 반짝이는 텍스트는 음반에 공간을 비워두지 않으며, 실험주의(experimentalism)의 영역을 벗어난 팝은 록의 진정성을 상실한 것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듯 약간 앞서갔다는 것이 일부의 견해이다. 그런 관점에서 2000년 발표된 EP인 [Halfway to a Threeway]는 [Eureka]의 흐름 안에서 사운드의 여백이 돋보이는 느낌이지만, 현 피치포크미디어(pitchforkmedia) 편집장인 라이언 슈라이버(Ryan Schreiber)의 말처럼 그의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인지는 아리송하다. 슈라이버가 선호하는 가스트르 델 솔 시절 스타일과 닮아있는 “Not Sport, Martial Art”덕택에 그렇게 추측했을 가능성도 있다. [Insignificance]는 짐 오루크가 드랙 시티(Drag City) 레이블에서 3번째 발표한 정규 음반이다. 한국에서 ‘3’이라는 숫자가 갖는 특별한 의미(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가 미국에도 적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음반의 제목은 무의미이다. 음반을 살펴보면 록의 에너지를 잘 드러내는 드럼의 둔탁한 소리로 포문을 열고 전기기타의 ‘굉음’이 시종 음반을 주도하는 “All Downhill from Here”부터 변화는 충분히 감지된다. 비록 “Insignificance”에 이르면 오수(午睡)를 즐기는 한량의 BGM같이 따스한 음들이 청자를 포용하지만 오래 가진 않는다. 뒤를 이어 “Therefore, I Am”이 시작되면 음반의 실체는 선명해진다. 헤비한 기타리프와 나직한 목소리, 과장된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코러스가 뒤섞이고 짐 오루크 곡의 특징인 절정 부분에 선율을 확장시키는 특징이 버무려지면 복고 록큰롤은 ‘원 의미’를 상실한 채 ‘감상용’이 되는 거다. 기타소리는 일그러져 있지만 다른 효과음들은 지나치게 깨끗해서 사이키델릭(Psychedelic) 효과를 배제한다는 것도 단적인 예가 되겠다. 게다가 “Prelude to 110 or 220/Women of the World”의 복고버전으로 들리는 “Memory Lame”에 이르면 이와 같은 부분은 극명하게 드러나며, “Get a Room”은 1970년대 포크 송의 버전 업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음반은 록의 원초적인 공격성이 없다는 점에서 ‘거세된 20세기 록의 업그레이드’같은 인상을 주지만, “Life Goes Off”의 말미에 이르면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을 소음으로 깨우쳐준다. 사운드의 근간이 실험주의에서 출발했다는 것을.(이런 불평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짐 오루크는 [Eureka]에서 그만의 악곡형식을 일궈냈지만 이미 록의 원초적 생동감은 잃어버린 뒤였다. 그러나 그는 [Insignificance]에서 [Eureka]의 장점을 지닌 채, 록의 활력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Insignificance]는 오루크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해서 버전업한 20세기 록인 것이다. 비록 이런 독특한 스타일은 그가 프로듀싱한 음반들처럼 각 뮤지션의 ‘개성’이나 음악적 재료들의 특성을 억제하는 역효과도 낳긴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현재 짐 오루크는 그의 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20021215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9/10 P.S. 도모자와 미미요(Mimiyo Tomozawa)가 그린 부클릿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문어에게 강간당하는 변태아저씨라니… 엽기적이지 않은가. 수록곡 1. All Downhill from Here 2. Insignificance 3. Therefore, I Am 4. Memory Lame 5. Good Times 6. Get a Room 7. Life Goes Off 관련 글 짐 오루크와 인디 록의 젠체하기(Jim O’Rourke and indie rock snobbery) – vol.3/no.24 [20011216] Sonic Youth [Murray Street] – vol.4/no.21 [20021101] Wilco [Yankee Hotel Foxtrot] – vol.4/no.9 [20020501] 관련 사이트 드랙 시티 레이블에서 제공하는 공식 사이트 http://dragcity.com/bands/jim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