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 4 – Gotham! – Gern Blandsten, 2002 상처 입은 도시, 고담(Gotham)을 향한 모호한 선동가 라디오 4(Radio 4)의 두 번째 정규앨범인 [Gotham!]에 대한 리뷰를 구상하면서 무척 난감했다. 하찮은 필력이지만 음악 얘기만 쓰자면 편할 수도 있는데, 이 앨범은 별로 좋지 않은 기억과 맞닿아 있고, 음악 외적으로도(정치적으로) 뭔가 얘기하고자 하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일단 앨범 제목인 ‘고담(Gotham)’은 사전적으로는 뉴욕시의 별칭 정도의 뜻이지만, 매우 부정적인 유래와 이미지로 덧입혀져 있다. 고담市(Gotham City)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부패와 탐욕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며, 영국 동화에 나오는 ‘바보들이 사는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감독 팀 버튼은 영화 [배트맨] 시리즈에서 악한들과 괴상한 인물들이 거주하는 고딕풍의 암울한 가상 도시의 이름을 고담이라 명하기도 했다. 뉴욕시는 자본주의적 풍요와 자유의 파티장인 동시에 온갖 범죄와 음습한 데카당스가 창궐한 야누스적인 도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양면의 평화로운 공존과 뉴요커들의 안락한 자부심은 2001년 9월 11일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일개 록 밴드가 테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도시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표현하거나 비판했다면, 아마 보수 언론의 돌팔매질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디오 4(Radio 4)의 [Gotham!]은 그렇게 무모한 의도를 품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앨범 어디에도 911 테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며, 각종 외지들은 이 앨범이 911 테러 이전의 뉴욕시에 대한 송가이자 뉴요커들의 자유분방한 도시생활 경험담쯤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Start a Fire”, “Save the City”, “Certain Tragedy”와 같은 수록곡들은 재앙이 던져다준 공포와 충격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앨범 [Gotham!]이 테러를 상상하지도 못하던 시절 도시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추억하며 상처받은 이들을 위무하려는 의도를 가졌건, 부패와 자만에 대한 자기반성적인 호소를 담고 있건 간에 정치적 성향이 농후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Start a Fire”에서는 “누가 병폐(disease)가 한 물 갔다고 생각하는가 / 그것은 단지 그런 식으로 모습만 바꾸었을 뿐 / 누군가 여기에 불을 놓아야 해!”라고 선동한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앨범의 사운드는 이 모든 해석과 억측을 무색하게 할만큼 경쾌하고 낙천적이다. 라디오 4는 음악적으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의 포스트 펑크 록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밴드명 자체는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의 명반 [Metal Box](1979)의 수록곡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만 훵키한 연주 스타일과 선동적인 태도는 갱 오브 포(Gang Of Four)를 빼다 박은 듯 하다. 보다 세부적으로 보면, 덥(dub) 스타일의 뒤틀린 저음을 만들어내는 앤서니 로만(Anthony Roman)의 베이스 라인과 토미 윌리암스(Tommy Williams)의 훵키한 기타 스크래치, 드러머 그렉 콜린스(Greg Collins)와 퍼커션주자 피제이 오코너(P.J. O’Connor)가 주고받는 흥겹고 에스닉한 리듬 파트, 마지막으로 디스코풍의 그루브를 끼워 넣는 제랄드 개론(Gerard Garone)의 건반 연주가 특징적인 부분이다. 오프닝 넘버인 “Our Town”부터 신경을 자극하는 소음의 잔치가 벌어진다. 다음으로 퍼커션이 엄청난 기교와 속도로 두드려대는 “Start a Fire”를 지나면, 앨범에서 가장 흥분감을 고조시키는 세 곡이 이어진다. “Eyes Wide Open”은 토미의 훵키한 기타와 앤서니의 덥 베이스, 콩가(conga) 류의 퍼커션 리듬이 조성하는 그루브가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곡이며, “Struggle”과 “Calling All Enthusiasts”도 앨범의 대표곡으로 뽑혀도 손색없을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다. 8번 트랙인 “Certain Tragedy”는 멜로디가 친숙하게 들리는 비교적 대중적인 곡이다. 특히, 질감이 거친 둔탁한 베이스 라인과 짧게 끊어 치는 기타 스트로크가 인상적이다. 다음 곡부터는 별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 반복적인 곡들이 나열되면서 끝을 맺고 있는데, 바로 수록곡들의 연주 스타일과 템포가 흡사해 “Certain Tragedy”를 제외하고는 뚜렷이 기억나는 곡이 없다는 점이 본 앨범의 치명적 단점이 아닐까 한다. 정치적 색채와 선동성을 함유한 록 음악에는 유독 댄서블한 그루브가 넘치는 경우가 많다. 메시지의 전달은 들뜨고 고조된 분위기에서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갱 오브 포가 그랬고,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도 그랬다. 라디오 4의 음악은 여피취향의 고급스런 모노톤과는 거리를 두며 오히려 뒷골목 춤판에나 어울릴 법한 댄스 비트를 마구 쏟아내고 있다. 이 점이 인터폴(Interpol), 워크멘(Walkmen) 등 뉴욕 인디 록 씬의 동료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상처 입은 자유와 번영의 도시, ‘고담’에서 모호한 선동을 담은 시끌벅적한 펑크 록의 의미는 어쩌면 지극히 낯설고 이단적인 것이 될지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면, 라디오 4는 자신들의 뉴욕시로부터 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021214 | 장육 evol62@hanmail.net 7/10 수록곡 1. Our Town 2. Start a Fire 3. Eyes Wide Open 4. Struggle 5. Calling All Enthusiasts 6. Save Your City 7. Speaking in Codes 8. Certain Tragedy 9. Red Lights 10. The Movies 11. End of the Rope 12. Pipe Bombs 13. New Disco 관련 글 Interpol [Turn On The Bright Lights] 리뷰 – vol.4/no.22 [20021116] Walkmen [Everyone Who Pretended to Like Me Is Gone] 리뷰 – vol.4/no.23 [20021201] 관련 사이트 Radio 4 공식 사이트 http://r4ny.com 주로 만화 속에 등장하는 뉴욕시의 상반된 이미지를 소개한 [씨네21]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