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27093554-christinaaguileraChristina Aguilera – Stripped – BMG, 2002

 

 

지나친 자기확신의 함정에 빠지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의 소포모어 앨범 [Stripped](2002)를 듣고 떠오른 생각은 그녀가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조는 이미 찾아볼 수 있었다. 상업면에서나 비평면에서도 대성공작이었던 데뷔앨범 [Christina Aguilera](1999) 이후 그녀는 차기작을 준비하는 대신, 계속되는 싱글 커트와 다양한 합동작업(리키 마틴(Ricky Martin)과의 듀엣 곡 “Nobody Wants To Be Lonely”, 영화 물랑 루즈(Moulin Rouge, 2001)의 메인 송 “Lady Marmalade” 등) 및 정규작 외의 음반 작업(라틴어 앨범 [Mi Riflejo](2000)와 크리스마스 캐롤 모음집 [My Kind Of Christmas](2000))에 열중했고, 이런 지나칠 정도의 과외 활동을 보며 그녀가 너무 성급히 자신의 커리어를 ‘대가’의 그것과 동일한 선상에 올려두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그래미 신인상 부문 수상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잘 만들어진 아이돌 가수의 데뷔 앨범일 뿐인(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녀만의 무언가를 보여준 앨범은 아니었기에) [Christina Aguilera](1999)에 대한 이런 요란스런 반응은 이 초짜 가수의 ‘자의식 과잉’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고, 이는 [Stripped]를 통해 우려가 아닌 현실로 드러났다.

앨범은 발랄한 티니밥을 완전히 배제한, 성숙하고 뇌쇄적인 R&B와 힙합 사운드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미 데뷔시절부터 충분한 화제가 되었던 그녀의 가창력이지만, “Loving Me 4 Me”나 “Beautiful”(두 번째 싱글 커트 곡) 같은 곡에서 들려오는 섬세한 음색의 변화는 정말로 갓 20세를 넘긴 소녀의 목소리인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숙련된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보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위 두 곡과 “Soar” 정도가 전부이고, 다른 대다수의 곡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칠 만큼 고음역에 치중함으로써 청자를 피곤하게 만든다. 첫 싱글인 “Dirrty”는 보기에 따라 혐오스럽다고까지 할 만한 비디오 클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힙합 리듬 위에 얹히는 끈적한 소울풍의 보컬이 상당히 인상적인 곡이지만, 알리샤 키스(Alicia Kyes)가 참여한 “Impossible”은 ‘알리샤 키스의 곡’ 이상의 감흥은 주지 못한다.

앨범을 듣다 보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자신의 보컬 역량을 과시하는데 주력 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보컬은 아직 자기 음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엔 감정 표현력에 있어 단편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타고난 성량과 훈련 받은 기교만으로 보컬 능력을 평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Stripped]의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호흡) 역시 지적 받을 요소 중 하나이다. 물론 76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감당해 내기엔 그녀의 표현력은 아직 한계가 있는 듯하다. 뒤로 갈수록 동어반복이란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일까?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점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이제 갓 두 번째 앨범일 뿐인 [Stripped]에서 왜 이토록 급격한 변화를 감행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혹시 ‘음악적 성장’을 위하여 과감히 상업성은 포기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는 아이돌 가수로 시작한 자신의 경력에 대한 강한 반발심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는 아이돌 출신의 가수이고, 현재에도 그러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앨범의 음악적 성취도와 같은 비중으로(혹은 그 이상으로), 상업적인 성공 또한 이루어내야만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상업적으로는 별 볼 일 없지만 음악적으로 훌륭한 아이돌 가수? 말이 되지 않는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무언가 중대한 착오를 저지른 듯하다.

한마디로 [Stripped]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자신의 재능을 너무 과신했다. 물론 그녀가 데뷔작에서 보여준 능력은 평범한 신인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준수한 수준이었지만, 아직 이런 식의 과욕을 부리기엔 지금 당장 드러나는 몇 가지 결정적인 ‘경험부족’의 결함이 귀에(그리고 눈에) 거슬린다. 당연히 이쯤에서 그녀의 라이벌이라 불리우는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t Spears)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재능이 없(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할 수 없는 것은 건드리지 않는 전략을 택했다(이는 음악적으로 ‘답보 상태’라는 말과는 다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점진적’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적중했다. 현역 최고/최대의 여가수 중 하나인 마돈나(Madonna)가 그녀에 대해 ‘브리트니는 자신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완벽한 비전과 통제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 나이 때의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는데 말이다’라고 극찬을 한 배경에는 분명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Stripped]의 판단착오(현재까지의 음반판매 상황을 보면 확실히 착오인 것 같다)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급격한 변동(변덕)을 보이는 팝스계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내딛는 한발 한발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Stripped]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영역확장’이란 기대감보단, 이대로 그녀의 경력이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만드는 음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고로 뭐든지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하는 법’이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범작 앨범이란 평가가 가장 합당할 듯하다. 20021216 | 김태서 uralalah@paran.com

5/10

수록곡
1. Stripped Intro
2. Can’t Hold Us Down (feat. Lil’ Kim)
3. Walk Away
4. Fighter
5. Primer Amor (Interlude)
6. Infatuation
7. Loves Embrace (Interlude)
8. Loving Me 4 Me
9. Impossible
10. Underappreciated
11. Beautiful
12. Make Over
13. Cruz
14. Soar
15. Get Mine, Get Yours
16. Dirrty (feat. Redman)
17. Stripped Pt. 2
18. The Voice Within
19. I’m OK
20. Keep On Singing My Song

관련 사이트
Christina Aguilera 공식 사이트
http://www.christinaaguile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