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27085824-joe20meekJoe Meek – The Alchemist Of Pop: Home Made Hits & Rarities 1959~1966 – Sanctuary, 2002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축음기의 발명가 에디슨(T. Edison)은 자신의 발명품이 유언이나 계약서 같은 문서자료의 대용물로 활용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 달리 사람들은 그것에 음악을 녹음해 듣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인간과 음악이 맺는 관계의 본성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이 혁명의 출발은 지극히 소박했다. 초창기의 축음기는 단순한 실연(實演)의 대체물에 불과했으며 음반은 연주실황을 그대로 모사한 기록물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고정관념은 깨지기 시작했다. 올드 팬들 사이에서 합창단 지휘자로 더 유명한 프로듀서 미치 밀러(Mitch Miller)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은 실연과 다르다’라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이룩한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신념에 입각해 패티 페이지(Patti Page)나 프랭키 레인(Frankie Laine) 등의 음반에 강아지 소리나 채찍 소리 같은 다양한 효과음을 삽입했고 이를 통해 당시의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사운드 혁명에 비하면 이는 아직 ‘장난의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1960년대의 사운드 혁명을 주도한 이들은 리 헤이즐우드(Lee Hazlewood), 필 스펙터(Phil Spector) 그리고 조 믹(Joe Meek) 등을 필두로 한 일군의 젊은 프로듀서들이었다. 이들은 대중음악에 사운드의 차원을 도입함으로써 작곡가와 연주자 중심이던 기존의 판도를 뒤엎고, 대중음악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방식을 영원히 뒤바꿔 놓았다. 이들의 업적은 실연을 통해서는 재현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음반들을 제작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음반을 실연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실연과 음반 사이의 기존 위계질서를 철저히 전복시켰다.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이나 비틀즈(The Beatles) 등 당대의 진취적 음악인들로 하여금 스튜디오의 잠재력에 주목하도록 자극했고, 결국 현대 대중음악 최고의 예술적 성취로 간주되는 [Pet Sounds]와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등의 결실로 이어졌다.

1960년대의 선구적 프로듀서들 중에서도 조 믹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인물이다. 그는 당시 세계 음악의 변방에 불과하던 영국을 무대로 활동했으며, 특정 레이블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집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혼자 작업을 수행했다. 비록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장비였지만 그는 여기서 수많은 기술적 혁신(근접 마이킹, 멀티트래킹, 페이징, 스튜디오 고립 등이 모두 그의 발명품이다)을 이룩했으며 언제 들어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조 믹 사운드’를 창출해냈다. 이 점에서 그는 인디 레코딩의 시조이며 아마추어리즘의 기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전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그가 작곡하고 프로듀스한 토네이도스(The Tornados)의 “Telstar”가 비틀즈 이전 시기의 영국 음반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이었다. 에코와 리버브가 강하게 걸리고 압축이 심한 이 곡의 우주적 사운드는 가장 전형적인 조 믹 사운드의 일단을 보여준다. 비록 이 곡의 성공을 두 번 다시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1967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그가 만들어낸 수백 장의 음반들은 시대를 앞서간 한 천재의 면모를 뚜렷이 드러내 보여준다.

[The Alchemist Of Pop: Home Made Hits & Rarities 1959-1966]는 조 믹의 길지 않은 음악 인생을 연도 순으로 일별해 놓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두 장의 CD로 구성된 이 앨범에는 한 장에 28곡씩 모두 56곡의 레퍼토리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발매된 조 믹의 모음집 중에서는 단연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음반이다. 프로듀서의 업적을 기리는 컴필레이션 중 현재까지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것은 필 스펙터의 박스 셋 [Back To Mono]다. 비록 이 앨범이 그만큼의 포괄성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것을 조 믹의 [Back To Mono]라고 칭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 하다. [Back To Mono] 앨범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한국식 표현을 빌자면 ‘조 믹 사단’이라고 할만한 아티스트들이 대거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적 톱 스타들이었던 필 스펙터 사단의 면면과 달리 조 믹 사단의 구성원 대부분은 영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팝 음악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면 토네이도스나 스크리밍 로드 서치(Screaming Lord Sutch) 정도의 이름은 들어보았겠지만, 허니컴스(The Honeycombs), 존 리튼(John Leyton), 글렌다 콜린스(Glenda Collins), 하인즈(Heinz) 등은 영국에서 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않고 있는 이름들이다 – 반면 이 앨범에 참여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의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있지 않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바로 하인즈의 곡들에서 기타를 연주한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다.

당연하겠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조 믹이 창출한 광기어린 사운드다. 미학적 완벽을 추구했던 필 스펙터와 달리 조 믹은 원곡을 왜곡하거나 망가뜨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과도한 리버브와 에코의 사용 그리고 컴프레서를 이용한 극단적 사운드 압축 외에도 그는 테이프를 빨리 돌린다든가 강렬한 이미지의 효과음들을 활용함으로써 음악을 완전히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존 리튼 같은 가수는 자기가 녹음한 음반을 듣고도 자신의 목소리를 식별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조 믹의 ‘신들린 사운드’는 1960년대 초에만 무려 50여 곡을 영국 차트에 진입시킬 정도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비틀즈의 등장과 함께 갑작스러운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인생은 끝난 것으로 간주되었고 아무도 더 이상 그의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능력과 비전은 이 시기에도 결코 쇠퇴한 것이 아니었다. 1965-1966년 무렵 발표된 신디캐츠(The Syndicats)의 “Crawdaddy Simone”, 버즈(The Buzz)의 “You’re Holding Me Down”, 제이슨 에디 & 더 센터멘(Jason Eddy & The Centremen)의 “Singing The Blues” 등은 그가 당시에도 얼마나 시대를 앞서 나갔는가를 선명하게 예시해 준다.

이 앨범이 조 믹의 음악세계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입문서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음반을 구입하기 전에 몇 가지를 반드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사운드다. 원곡들이 만들어진 시대가 시대니 만큼 이 앨범은 전곡이 모노로 녹음되어 있다. 오늘날의 스테레오 사운드에만 익숙한 청취자라면 좀 답답하게 들릴 수도 있는 사운드다. 그러나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더라도 듣다 보면 충분히 적응이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한마디로 이 앨범에 수록된 음악의 수준은 대단히 고르지 못하다. 특히 1959-1963년 작품들을 수록한 1번 디스크에는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곡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심지어 이 시대의 음악에 익숙한 사람의 귀에도 “Green Jeans”나 “Can Can ’62” 같은 곡들은 듣기에 심히 민망하다. 따라서 아무리 조 믹의 비전에 집중한다고 해도 음악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갖지 않는 한 이 음반을 제대로 즐기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음악적 잣대가 엄격하거나 취향이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앨범의 구입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앨범은 조 믹의 음악세계에 대한 입문서로서 뿐만 아니라 비틀즈 이전 시기의 영국 대중음악에 대한 개관으로서도 매우 훌륭한 효용을 지닌다. 브리티쉬 인베이전 이후 영국 대중음악의 전개양상은 이제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이전 시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비록 이 앨범에 수록된 음악들이 당시 영국 대중음악의 전체상을 보여주지는 못하겠지만 당시의 경향과 수준에 대해서 상당한 정도의 실마리는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바처럼 당시의 영국 젊은이들은 미국 대중음악에 깊이 매혹되어 있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음악들에서도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발견하기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시 유행하던 미국 음악장르의 차용은 물론이고 가사의 발음마저 철저히 미국식으로 가는 모습을 모든 보컬 트랙에서 접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직 흉내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에디 코크란(Eddie Cochran),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의 아류들, 어디서 베꼈는지 뻔한 선율과 리프들… 같은 시기의 한국 음악과 비교해서도 결코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는 음악들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상당수는 ‘혐오감 유발’ 또는 ‘부도덕’ 등의 이유로 방송금지 조치를 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나 그 격차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한국과 영국의 대중음악은 적어도 출발선상에서는 여러 모로 비슷한 지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20021215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수록곡
Disc: 1
1. What Do You Want To Make Those Eyes At Me For – Emile Ford & The Checkmates
2. Be Mine – Lance Fortune
3. Green Jeans – The Fabulous Flee-Rekkers
4. Chick A’Roo – Ricky Wayne & The Flee-Rekkers
5. Angela Jones – Michael Cox
6. Sunday Date – The Flee-Rekkers
7. Paradise Garden – Peter Jay
8. Can’t You Hear My Heart – Danny Rivers
9. Swingin’ Low – The Outlaws
10. Ambush – The Outlaws
11. You Got What I Like – Cliff Bennett & The Rebel Rousers
12. Johnny Remember Me – John Leyton
13. Tribute To Buddy Holly – Mike Berry & The Outlaws
14. Night Of The Vampire – The Moontrekkers
15. Wild Wind – John Leyton
16. Can’t You Hear The Beat Of A Broken Heart – Iain Gregory
17. Till The Following Night – Screaming Lord Sutch & The Savages
18. Son This Is She – John Leyton
19. It’s Just A Matter Of Time – Mike Berry & The Admirals
20. Walk With Me My Angel – Don Charles
21. Lonely City – John Leyton
22. Telstar – The Tornados
23. Stand Up – Michael Cox
24. Theme From “The Traitors” – The Packabeats
25. Can Can ’62 – Peter Jay & The Jaywalkers
26. North Wind – Houston Wells & The Marksmen
27. Don’t You Think It’s Time – Mike Berry & The Outlaws
28. Globetrotter – The Tornados

Disc: 2
1. Ridin’ The Wind – The Tornados
2. Jack The Ripper – Screaming Lord Sutch & The Savages
3. Robot – The Tornados
4. I Lost My Heart At The Fairground – Glenda Collins
5. Only The Heartaches – Houston Wells & The Marksmen
6. Hobbies – Jenny Moss
7. Wipeout – The Saints
8. Just Like Eddie – Heinz
9. Sky Men – Geoff Goddard
10. My Friend Bobby – Pamela Blue
11. Country Boy – Heinz
12. All My Loving – The Dowlands
13. You Were There – Heinz
14. Have I The Right – The Honeycombs
15. Questions I Can’t Answer – Heinz
16. I Can’t Stop – The Honeycombs
17. Little Baby – The Blue Rondos
18. Something Better Beginning – The Honeycombs
19. Diggin’ For Gold – David John & The Mood
20. That’s The Way – The Honeycombs
21. Crawdaddy Simone – The Syndicats
22. What’cha Gonna Do Baby – Jason Eddy & The Centremen
23. Something I’ve Got To Tell You – Glenda Collins
24. Please Stay – The Cryin’ Shames
25. You’re Holding Me Down – The Buzz
26. I Take It That We’re Through – The Riot Squad
27. Singing The Blues – Jason Eddy & The Centremen
28. It’s Hard To Believe It – Glenda Col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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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Joe Meek 비공식 사이트
http://www.joemeek.com
http://www.concentric.net/~meekweb/telstar.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