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 – Nirvana – Geffen, 2002 Teenage Angst Will Pay Off, Well… 8년이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침침한 방구석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린 지 어언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비록 본인은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한 시대를 상징하던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그 파장이 실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더도 말고 지금 돌아가는 씬의 상황을 보면 다들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너바나(Nirvana)가 로큰롤의 신비화에 정면으로 도전했었다는 일화는 이미 꺼내기가 민망할 만큼, -커트 코베인의 신격화와 더불어- 그들 또한 영광스러운 ‘로큰롤 전설’의 일부가 돼버린 지 오래다. 모두들 이야기한다. 1990년대 초반의 시애틀 무브먼트(Seattle Movement)가 다시금 록을 듣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타협하지 않는 순수성이 다시 한 번 음반의 세일즈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짧지만 좋았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풍요로웠던’ 시기였다고. 맞는 말이다. 이제 와서 ‘알고 보니 그 때도 문제는 많았다’ 식의 말을 하는 것은 비겁한 결과론일 뿐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너바나는 원치 않았던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부여받았고, 지금 우리가 손에 든 베스트 앨범 [Nirvana](2002) 역시 이러한 신격화 과정의 한 단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너무나도 관심이 모아졌던 탓에 처음 들으면서도 처음 듣는 곡 같지 않았던 미발표곡 “You Know You’re Right”를 시작으로, 시간상 순차적으로 나열된 수록곡들을 들으며 아련했던 너바나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일 것이다. 모든 곡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Digital Remastering)되었다고 하지만 어차피 이들의 음악은 처음부터 ‘깔끔한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었던 바, 귀를 자극하는 새로운 청각적 즐거움을 발견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히트곡 레퍼토리도 조금은 지루할지 모르겠다(“Been A Son”과 “Pennyroyal Tea”의 다른 테이크(take) 버전이 실려있다는 사실이 [Nirvana]의 구매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곡 모두 ‘Alt. Take’가 들려줄 법한 실망스런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게다가 아무리 너바나가 3, 4분대의 짧은 곡 위주의 밴드였다고 하더라도, 첫 공식 베스트 음반의 러닝타임이 60분도 채 안 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가장 흥미를 자아냈던 “You Know You’re Right”의 경우, ‘다채로운 펑크(punk)음반’이었던 [Nevermind](1991)의 강렬한 멜로디 라인과, [Nevermind]의 딜레마(펑크로 백만장자가 된 ‘록스타’라는)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In Utero](1993)의 단순 리프의 반복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게 다다. 더 이상 이 음반에 무슨 말을 갖다 붙이기엔 너바나는 이미 너무나 유명해졌고, 또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결국 어떤 좋은 말을 갖다 붙이건 이 음반은 ‘때늦은 울궈먹기’ 이상의 평가를 받아내기엔 무리가 있다(커트 코베인 사후 발매되었던 [Unplugged In New York](1994)나 [From The Muddy Banks Of Wishika](1996)가 라이브 음원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던 것과는 대조되게, [Nirvana]는 스튜디오 음원을 담은 베스트 앨범임에도 차트 3위에 오르는 데 그쳤을 뿐이다). 물론 [Nirvana]가 갖는 나름의 가치는 있다. 이미 ‘현재의’ 것이 아닌 너바나의 음악이 새로운 세대에겐 익숙하지 않은(접하기 까다로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음반이 ‘소개’의 기능을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음반사가(그리고 나머지 멤버인 크리스 노보셀릭(Chris Novoselic)과 데이브 그롤(Dave Grohl)이) 이 점을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생각은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와 “You Know You’re Right”의 발표 여부를 놓고 온갖 험담들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더욱 확실히 굳어졌다. ‘소개’의 기능을 위해서라면 미발표곡의 수록여부가 왜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결국 그런 의미에서 [Nirvana]는 너바나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화석화’하고 ‘박제화’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음악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앞으로도 계속될 너바나 세일즈에 이로운 상황을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음반의 본 의도가 이미 다 아는 노래들을 가지고 새로운 척 포장하여 소비자를 우롱하는데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조건마저 모두 감수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때로는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씁쓸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모두 알면서도 속아넘어가는 뮤직 비즈니스계의 일면인 것이다(해당 가수에 대한 팬들의 ‘애착’이 강할수록 이런 ‘착취’ 또한 더욱 강도 높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도 [Nirvana]를 통해 들려오는 그 노래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커트 코베인은 죽었다. 너바나도 끝났다. 하지만 음악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아마도) 다시 한 번 이들에 대한 음악산업의 착취가 시작될 때, (그 수많은 ‘로큰롤 성자’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커트 코베인 역시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 한 번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역사가 아무 교훈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교훈’이니까. 20021210 | 김태서 uralalah@paran.com 5/10 수록곡 1. You Know You’re Right 2. About A Girl 3. Been A Son 4. Sliver 5. Smells Like Teen Spirit 6. Come As You Are 7. Lithium 8. In Bloom 9. Heart-Shaped Box 10. Pennyroyal Tea 11. Rape Me 12. Dumb 13. All Apologies 14. The Man Who Sold The World 15.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관련 글 리이슈(re-issue)의 정치경제학 – vol.4/no.24 [20021215] Nirvana [Nirvana] 리뷰 – vol.4/no.24 [20021216] Joe Meek [The Alchemist Of Pop: Home Made Hits & Rarities 1959 – 1966] 리뷰 – vol.4/no.24 [20021216] 관련 영상 “You Know You’re Right” 관련 사이트 Nirvana 공식 사이트 www.geffen.com/nirvana Nirvana 팬 사이트 www.nirvanacl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