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08092951-toriamosTori Amos – Scarlet’s Walk – Sony, 2002

 

 

타라, 타라, 타라!

정규 4집 앨범 [From The Choirgirl Hotel](1998)을 시작으로 토리 에이모스(Tori Amos)의 경력은 새로운 장을 맞이했다. 주목받은 데뷔 앨범 [Little Earthquakes](1992)와 1994년 ‘올해의 앨범’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Under The Pink](1994) 이후 발매한 [Boys For Pele](1996)는, 빌보드 앨범 차트 2위라는 화려한 성적과 유럽을 강타한 “Professional Widow”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격한 찬반 양론을 불러 일으켰고, 일견 모든 것이 과잉돼 보이던 이런 상황에서 토리 에이모스가 택한 다음 행보는 적극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도입과 함께 본격적으로 ‘팝송화’한 작곡방식의 변화였다.

하지만 토리 에이모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결합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그간 그녀의 음악에 있어 가장 큰 차별성을 부여했던 피아노 음이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가려 사실상 유명무실해 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후 발매한 미발표곡/라이브 모음집 [Venus To Back](1999)의 묵직함과 (오직 남자 아티스트들의 작업만을 선곡한)리메이크 앨범 [Strange Little Girls](2001)의 화제성도 예전의 명성을 다시 찾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했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이 어땠던지 간에 토리 에이모스가 기존 ‘피아노 치는 마녀’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처음에는 자신을 여타의 가수들과 차별화하는 수단이었지만, 어느덧 고정된 틀로써 스스로를 옭죄이는 한계사항이 되었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첫 트랙 “Amber Waves”는 약간의 의외감을 선사한다. 물론 초기작들처럼 강한 훅(hook)에도 불구하고 생경함을 자아내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 다시금 전면으로 부각된 피아노 음이 놀라움 반, 반가움 반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점은 첫 싱글 커트된 “A Sorta Fairytale”에 이르러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데, 기존 토리 에이모스의 작업이 몇몇의 싱글곡에서 대폭적으로 전자음을 도입함으로써 앨범의 돌출되는 부분을 만들어내던 것과는 달리, “A Sorta Fairytale”은 여전히 피아노가 주를 이룬 구성을 취하고 있다(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Welcome To Choirgirl Hotel] 부터의 변화는 싱글곡의 분위기를 앨범 전체로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앨범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차분하게 변한 토리 에이모스의 보컬 스타일이다(그렇다고해도 여전히 듣기 ‘편한’ 음색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컬의 변화는 음악 자체의 변모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물론 데뷔시부터 그녀의 화두에서 떠나지 않았던 기독교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의문과 반론은 계속되지만(“Mrs. Jesus”), 이조차도 예전 “God”에서 보이던 그 도발적이고 극도로 날이 선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누군가의 ‘소리 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공격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음악이라는 평가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Scarlet’s Walk](2002)는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리듬 파트를 제외한 곡의 구성만을 놓고 봤을 때, 앨범은 팝적이고 가장 기본적인(멜로디 중심의) 구조의 작곡 위에 이루어져 있다.

분명 토리 에이모스는 [Boys For Pele] 이후 지속된 일련의 작업들에서 그녀가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 재고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앨범의 타이틀인 [Scarlet’s Walk]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그 여걸(혹자에 따라서는 마녀라고 할지도) 스칼렛이 결국은 타라(Tara)의 대지로 돌아가듯, 자신이 떠나왔던 음악적 뿌리로의 회귀를 명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토리 에이모스의 앨범을 평가(?)하는 리뷰어이기 이전에, 그녀의 오랜 팬으로서 사실 이러한 음악적 회귀를 쌍수 들어 반기기에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토리 에이모스의 회귀가 좀 더 근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데, 매력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음색과 확대된 피아노 사운드를 제외하고는 사실 이 음반을 평범한 팝 앨범 이상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토리 에이모스의 경력이 10년에 이르렀고(솔로 활동 이전의 그룹 시절까지 생각해보면 15년에 육박한다) 그간 상당히 급격한 변화와 나름의 성과를 보여준 사실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범하게 이후의 활동을 이어나가기에는 그간 보여주었던 그녀의 재능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한 오랜 팬의 의미 없는 푸념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평범하고 편안하게 늙어가는(39살) 토리 에이모스를 보고 싶지는 않다. 마녀가 아름다운 것은 마녀이기 때문이니까. 20021126 | 김태서 uralalah@paran.com

6/10

수록곡
1. Amber Waves
2. A Sorta Fairytale
3. Wednesday
4. Strange
5. Carbon
6. Crazy
7. Wampum Prayer
8. Don’t Make Me Come To Vegas
9. Sweet Sangria
10. Your Cloud
11. Pancake
12. I Can’t See New York
13. Mrs. Jesus
14. Taxi Ride
15. Another Girl’s Paradise
16. Scarlet’s Walk
17. Virginia
18. Gold 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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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i Amos [To Venus And Back] 리뷰 – vol.1/no.6 [199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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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oriam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