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08090210-microphonesMicrophones – Glow, Pt. 2 – KLP, 2001/Ales(수입),2002

 

 

예민한 사운드의 풍경

초승달이 떠 있는 한밤중의 숲이다. 한 마리의 코끼리가 모닥불에 콧김을 내뿜고 있다. 코끼리의 불온한 눈망울에 비친 풍광은 어둠과 조우한다. 불은 숲을 환하게 비춰주지만 코끼리는 불안하다. 그림은 고색 창연한 동화책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서 음반과 음반표지의 연결고리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음반의 표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마이크로폰즈(Microphones)는 필 엠블럼(Phil Elvrum)의 일인밴드다. 1999년 엘시노어(Elsinor) 레이블에서 발표한 데뷔작 [Tests]는 인디 씬의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같은 해 K 레이블에서 두 번째 정규 음반인 [Don’t Wake Me Up]을 발매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정규 음반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마이크로폰즈의 스타일은 로 파이(Lo-Fi)적인 태도에 기반하며 싸이키델릭(Psychedelic)과 팝적인 접근을 병행하는 것인데, [Window]까지는 명확한 악곡 구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It Was Hot We Stayed in the Water]에 이르면 실험실록(Experimental Rock)과 멜로디가 적절히 화학적 반응을 낳기 시작한다. 이를 대변하는 곡은 내면으로 침잠(沈潛)하는 기억의 단면을 드러내는 “The Glow”를 들 수 있을 것이다. “The Glow”를 통해 드러난 변화는 2001년 발표된 [Glow, Pt. 2]로 확장된다.

[Glow, Pt. 2]를 살펴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형식적으로 다양한 질료(質料)들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 예로 “The Moon”, “My Roots Are Strong and Deep”, “Map”에서는 ‘침실주의 싸이키델릭’과 팝이 적절히 공명하고 있으며, “The Glow, Pt. 2”, “I Want to Be Cold”같은 곡에선 극단적인 노이즈와 훅을 병치시켜 강렬한 분노와 처연한 감정이 오가는 불안정한 내면을 표현한다. 아울러 “I Felt Your Shape”같은 어쿠스틱 소품도 있으며 “My Warm Blood”, “The Mansion”같이 앰비언트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들리는’ 곡도 있다.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지만 음반의 흐름은 지극히 서사적이다. 스타일이 상충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곡들이 도입-확장-도입(첫 도입 부분과는 다르고 다음 곡의 도입부라 해야 적당하다)의 단순한 악곡 구성을 갖고 있고 연주된 악기는 다양하지만 확장 부분에만 사용되며 주로 어쿠스틱 기타가 어둠에 길을 잃은 듯 머뭇거리며 천천히 음반을 주도하고 있는 덕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호한’ 균형이다. 그것은 다채로우면서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스타일과 악기를 동원하는 ‘사운드의 중첩’과 나약한 열망과 분노가 혼재된 ‘감정의 중첩’이 맞물려 음반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단점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음반에서 앰비언트처럼 들리는 전자 음이 그가 평소 생활하는 산이나 계곡에서 채취한 소리들로 녹음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즉, 일렉트로닉하게 들리지만 철저하게 아날로그 장비로 녹음된 [Glow, Pt. 2]은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기묘한’ 음반의 표지에서 드러나듯이 엠블럼은 (모닥불이 사람들에겐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되지만 본능적으로 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코끼리에겐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관계의 상대성을 꼬집는 가사를 노래하며 예민한 사운드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그 풍경은 뒤틀린 성장과 삶 안에 깃들여진 고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치 음반표지와 같은 그림들이 모인 그림책처럼 섬세하게.

라디오헤드(Radiohead)가 2000년에 [Kid A]를 발표했을 때, 비평가들이 열광한 부분은 포스트 록이 텍스쳐에 집중하느라 잃어버린 섬세한 감정표현을 그들이 발굴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라디오헤드는 스타일실험을 하느라 [OK Computer]의 ‘독창성’을 잃어버렸다. 대신 ‘독창성’을 실현한 것은 전위적이면서도 ‘순수한’ 의미의 팝과 무관하지 않으며 인디의 태도를 고수하는 마이크로폰즈이다. 이는 2001년에 [Glow, Pt. 2]로 인디 록을 대표하는 웹진 [피치포크미디어(pitchforkmedia)]와 [페이크재즈(fakejazz)]에서 베스트 1위와 독자투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어느 정도 입증이 되었다. 이제 2003년 발표될 [Mount Eerie]음반을 기대할 차례다. 20021206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10/10

수록곡
1. I Want Wind To Blow
2. The Glow, Pt. 2
3. The Moon
4. Headless Horseman
5. My Roots Are Strong And Deep
6. Instrumental
7. The Mansion
8. (Something)
9. (Something)
10. I’ll Not Contain You
11. The Gleam, Pt. 2
12. Map
13. You’ll Be In The Air
14. I Want To Be Cold
15. I Am Bored
16. I Felt My Size
17. Instrumental
18. I Felt Your Shape
19. Samurai Sword
20. My Warm Blood

관련 사이트
K 레이블에서 제공하는 The Microphones의 홈페이지
http://www.kpunk.com/Microph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