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 Soony 6 – 하나뮤직/신나라, 2002 불혹(不惑), 미혹(迷惑), 매혹(魅惑) 장필순이 대학연합 창작음악서클 ‘햇빛촌’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82년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어느새”가 수록되어 있는) 첫 음반을 낸 것은 1989년이고, 이 음반은 그녀의 여섯 번째 정규 음반이다. 편하게 ‘포크 싱어’라 부르고 말아버리면 그녀의 음악에 담긴 다양한 성향들(퓨전 재즈 스타일의 훵키한 가요, 단정한 발라드, 차분한 모던 록)을 간과하는 것이다. 3집 [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1992)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나기획 뮤지션들과의 작업은 장필순의 음악 이력에서 일종의 전환점이었고, 1997년의 다섯 번째 음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그 정점으로서 장필순의 서늘한 목소리와 예민하고 투명한 편곡, 낭만적인 작곡이 비범하게 조화된 음반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중간에 스튜디오를 옮기고, 그동안의 작업을 절반 이상 뒤엎는 동안 그녀는 불혹에 이르렀다. 헛되이 홀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나이다. 하지만 그녀와 조동익, 조동진이 새로이 미혹되어 흘러간 곳은 인공적인 세계, 일렉트로니카의 영토이다. 전작을 열어젖히던 “첫사랑”의 시린 서정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헬리콥터”는 낯설다. 불협의 전자음이 반짝거리더니 뒤뚱거리는 싱코페이션 리듬이 출현하고, 그 위를 금이 간 듯한 비트와 리버브(reverb) 걸린 기타가 뭉개듯이 덮는다. 노이즈라 하기도, 선율이라 하기도 어려운 날카로운 음들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장필순은 스산한 톤으로 노래한다. “김이 서린 뿌연 창에 / 더운 내 이마를 대고 / 지난 밤 심하게 몸살을 앓아 / 모든 게 커 보이네” 후반부로 갈수록 겹겹이 쌓이는 날선 전기기타음은 알듯 말듯 스며든 수많은 노이즈와 섞여 버석거리고, 그녀의 목소리도 그 혼란에 동참한다. 바로 이어지는 “고백”에서는 트립합을 닮은 성긴 비트와 맑은 어쿠스틱 기타, 오르간이 뒷받침하는 사운드 틈새로 명멸하는 루프(loop)가 떠돌아다니고, 장필순은 뜻모를 가사를 모호하게 반복하며 ‘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구성과 후려치는 듯한 비트가 인상적인 “soony rock”은 전작의 “스파이더맨”을 닮아 있으면서도 훨씬 헤비하며 인공적인 소리를 뽑아낸다. 첫 세 곡이 주는 정서는 강렬하며, 그 인공성에도 불구하고 깊은 감정을 담아낸 소리라는 인상을 받는다(“고백”의 현악 반주는 ‘진짜보다 더 진짜’같다). 음반의 기본 골격은 아날로그 비트를 어쿠스틱 악기의 섬세한 연주와 병렬시킨 뒤 그 주변에 각종 효과음과 전기 기타의 강렬함을 수없이 덧입히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장필순의 목소리는 각각의 소리에 때론 무심하고 건조하게(“고백”), 때론 온몸으로 반응하며 습하게(“빛”) 움직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전작이 보여주었던 냉랭함과 포근함의 만족스러운 종합이 이번 음반을 통해 일렉트로니카의 영역에서 다시 한 번 표현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며, 반복하자면 사운드의 극단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질감보다는 일관성을 지닌다는 평가가 가능하리라는 말도 될 것이다. 돋보이는 것은 어레인지먼트부터 커버 사진까지 음반의 거의 전부를 담당한 조동익의 능력이다. [Movie](1998)의 “현기증”과 “이탈”에서 전자음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시킨 그는 [동경](1994)에서 표현했던 아련한 서정을 두텁고 건조한 전자음과 결합시킴으로써 목 아래만 찍힌 인물사진처럼 비현실적인 소리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를 전인미답의 경지라 부르는 것은 과장이겠지만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라 말할 수는 더더욱 없다. 음반의 사운드에 대한 가장 정확한 감상은 ‘최신 스타일과 닮았으면서도 들을수록 닮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는 말일 것이다(따라서 지금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타일들의 이름은 실은 부정확하다). 특히 삼바-레게 리듬 뭉치를 백워드 매스킹으로 만든 효과음과 병치시킨 실험적 트랙 “모래 언덕”, 후벼파는 듯한 리프가 인상적인 “신기루”, 앰비언트의 어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드림 팝 “햇빛”으로 이어지는 (첫 세 곡과 더불어 올해 새로 작업한) 후반부의 세 곡은 음반의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극대화되면서 몽상과 망상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해낸다. 그러면서도 일관된 정서는 실종되지 않는다. 4집부터 작곡에 참여한 장필순은 이번 음반에서도 세 곡(“soony rock”, “흔들리는대로”와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을 선보이고 있으며, 이 곡들을 비롯하여 “10년이 된 지금”과 “동창”은 암갈색 정서가 지배적인 음반에서 반딧불처럼 빛난다. 만약 장필순의 새 음반에서 달콤하고 우울한 발라드와 나긋나긋한 모던 록의 향연을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이 음반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온갖 소리로 뒤덮인 사운드의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면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장필순의 노래를 만날 수 있으며, 그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여러분은 노래 이상의 그 무엇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베스 오튼(Beth Orton), 만달레이(Mandalay), 아주레 레이(Azure Ray), 아니 누구의 음반을 위해서건 전자음으로 주조한 서정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돈을 아꼈던 이들은 이 음반을 집어들기 바란다. 불혹에 이른 그녀의 미혹은 진심으로 매혹적이다. 20021205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9/10 수록곡 1. 헬리콥터 2. 고백 3. soony rock 4. 10년이 된 지금 5. 흔들리는대로 6. 동창 7.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8. 모래 언덕 9. 신기루 10. 햇빛 관련 글 한영애 vs 장필순: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여성적 측면(Female Sides of Korean Underground Music) – vol.5/no.14 [20030716] ‘강남 어린이’ 시절부터 ‘수니 로커(soony rocker)’까지…: 장필순과의 인터뷰 – vol.5/no.14 [20030716] 배리어스 아티스트 [캠퍼스의 소리] 리뷰 – vol.5/no.14 [20030716] 배리어스 아티스트 [우리 노래 전시회 II] 리뷰 – vol.5/no.14 [20030716] 소리두울 [눈이 오는 날/아침 햇살] 리뷰 – vol.5/no.14 [20030716] 장필순 1집 [어느새/내 작은 가슴속에] 리뷰 – vol.5/no.14 [20030716] 장필순 2집 [외로운 사람/꿈] 리뷰 – vol.5/no.14 [20030716] 장필순 3집 [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 리뷰 – vol.5/no.14 [20030716] 장필순 4집 [하루] 리뷰 – vol.5/no.14 [20030716] 장필순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리뷰 – vol.5/no.14 [20030716] 장필순 6집 [Soony 6] 리뷰 – vol.4/no.23 [20021201] 오석준·장필순·박정운 [내 가슴에 아직도 비가 오는데 / 또 하루를 돌아보며] 리뷰 – vol.5/no.14 [20030716] 관련 사이트 장필순 팬 사이트 http://jangpillsoon.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