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08081654-low-trustLow – Trust – Kranky, 2002

 

 

깊은 소리, 오랜 여운

전작 [Things We Lost In The Fire](2001)로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이끌어낸 로우의 신보가 발매되었다. 새 음반에 대한 반응이 이전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은데, 그것은 아마도 이번 음반에서 로우가 빚어낸 사운드의 질감과 방향성에 대한 반응에 달린 듯 하다. 간단히 말하면 두텁고 어두워졌으며 상대적으로 ‘로킹(rocking)’해졌다. 로우의 음반이 연출해내던 빈 듯한 공간감과 그 안에 흐르던 단아한(혹은 지루한) 악곡을 즐겼던 이들이라면 선택을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이를테면 피치포크의 평자가 로우의 새 음반에 불만을 표시한 것은, 그가 판단하기에 과잉 프로듀스된(over-produced) 사운드로 인해 로우가 갖고 있는 여백의 미가 실종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다(매력적인 곡이 없다는 것 또한 그의 불만이었다). 스티브 알비니에 이어 사운드 프로듀싱을 담당한 채드 블레이크(Tchad Blake)는 로우의 미니멀한 악곡에 다채로운 이펙트와 악기들을 배치함으로써 ‘소리의 벽’을 쌓는다. 따라서 음반은 로우의 전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공간감이 감소한 대신 로우의 다른 면, 즉 어두움과 긴장(tension)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럼으로써 다소 ‘헤비’해지고 ‘로킹’해졌다. 사실 로우는 언제나 이것들을 드러내왔지만 그것이 이번 음반에서만큼 ‘화려하게’ 표현된 적은 없었다. 이 시도가 마음에 드느냐 아니냐에 따라 음반의 평가는 갈릴 것이고, 나는 전자이다.

첫곡 “(That’s How You Sing) Amazing Grace”는 음반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음산한 휘파람과 더불어 채찍으로 물위를 내려치듯 철썩거리는 에코 걸린 드럼과 다운튜닝된 베이스가 장중하게 가라앉는 동안 미미 파커(Mimi Parker)의 ‘천상적(ethereal)’ 보컬은 무심히 날아오르려 하고 그 사이를 앨런 스파호크(Alan Sparhawk)의 어두운 목소리가 두려울 것 없다는 듯 지나간다. 점진적 침전과 나른한 상승이 빚어내는 은밀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7분 남짓한 시간동안 듣는 이를 꼼짝없이 옥죈다. 로우의 곡치고는 이례적으로 퍼즈 톤의 강력한 기타가 주도하는 ‘선창과 후창(call-and-response)’ 구조의 록 넘버 “Canada”가 오프닝의 암울함을 떨치고자 애쓰지만 “Candy Girl”에서 분위기는 또다시 침몰한다. 단순한 가사(“Candy Girl / You sing that song so well”)를 주문처럼 반복하는 동안 동굴이 숨쉬는 듯한 효과음이 섬뜩하게 울부짖으면서 음반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만큼 깊은 심연을 드러낸다. 전반부의 세 곡이 주는 중압감은 실로 인상적이며, 이로 인한 파장은 음반 전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중반 이후의 트랙들은 상대적으로 평온하다. 짧은 휴식같은 “Time Is The Diamond”와 “Tonight”을 거친 뒤 나타나는 “I Am The Lamb”는 반복적으로 싱코페이션을 쥐어뜯는 기타와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피아노, 흐릿한 코러스로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일순 격렬하게 꿈틀거리지만 공포감마저 주었던 도입부에 비하면 느긋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Christmas](1997)에 실린) “Just Like Christmas”의 속편같은 “Last Snowstorm Of The Year”, 모과이(Mogwai)처럼 들리는 “John Prine”, 사랑스런 소품인 “La La La Song”과 “Point Of Disgust”는 로우 특유의 검소한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단정하고 아름다운 곡들이다. 마지막 곡인 “Shots & Ladders”에서 다시 초반의 음산한 기운이 고개를 들지만 이미 중화된 두려움은 경건함에 가까운 감정으로 선회하며 끝을 맺는다.

다 듣고 나면 (한번 더 돌려듣기 전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 음반이 남긴 여운을 곱씹게 된다. 생각해 보면 로우의 음반은 언제나 이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곤 했다. 그렇다면 이 음반 역시 로우의 음반인 것이다. 음습하고 아름다우며 오랜 여운을 갖는. 20021203 | 최민우 eidos4@freechal.com

8/10

수록곡
1. (That’s How You Sing) Amazing Grace
2. Canada
3. Candy Girl
4. Time Is The Diamond
5. Tonight
6. I Am The Lamb
7. In The Drugs
8. Last Snowstorm Of The Year
9. John Prine
10. Little Argument With Myself
11. La La La Song
12. Point Of Disgust
13. Shots & Lad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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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 [Things We Lost in the Fire] 리뷰 – vol.3/no.5 [20010301]

관련 사이트
로우 공식 사이트
http://www.chairkick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