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men – Everyone Who Pretended to Like Me Is Gone – Star Time, 2002 인디의 품에서 부활한 뉴요커들의 지성적 사운드 실험 인터폴(Interpol), 프렌치 킥스(French Kicks), 라디오 4(Radio 4), 워크멘(Walkmen), 내츄럴 히스토리(The Natural History) 등 뉴욕시에 근거지를 둔 신진 밴드들에서는 미국 인디 록 밴드들의 거친 태도와 촌뜨기 정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메트로폴리탄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기성 록의 관습에서 탈피한 보다 실험적인 사운드를 창출해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의 이면에는 언더그라운드의 예술적 자양분이 풍부한 뉴욕의 문화적 환경과 공부 깨나 했던 학생들다운 지적 허세도 작용했겠지만, 저항과 쾌락작용이라는 록의 일차원적 수단논리를 뛰어넘어 미학적 첨단을 추구했던 선배 포스트 펑크 밴드들의 진지한 태도가 강하게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국의 록 음악보다 고급스런 외피를 두르고 있는 영국 모던 록 스타일을 빌어 미국 대도시의 우울하고 답답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는데, 영국 평단의 호응은 이러한 차원에서 해석 가능할 것이다. 특히, 워크멘의 정규 데뷔 앨범인 [Everyone Who Pretended to Like Me Is Gone]은 뉴욕 인디 씬이 토해낸 최근의 결과물 중 단연 돋보이는 역작이다. 사실 이들을 신인급으로 보기는 곤란하다. 멤버들 중 각각 키보드와 기타, 드럼을 맡고 있는 월터 마틴(Walter Martin), 폴 머룬(Paul Maroon), 매트 배릭(Matt Barick)은 로컬 씬에서 꽤 명성이 높았던 팀인 조나단 파이어 이터(Jonathan Fire*Eater, 이하 파이어 이터) 출신이며, 보컬인 해밀턴 리싸우저(Hamilton Leithhauser)와 베이시스트 피터 바우어(Peter Bauer)는 르코이(The Recoys)에서 활동하다 결합한 인물들이다. 이 중 파이어 이터는 워크멘의 전신격으로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이들은 1997년에 드림웍스(Dream Works) 레이블을 통해 데뷔 앨범 [Wolf Songs for Lambs]를 발표하고 평단의 주목을 끌어낸 바 있는데, [NME]와 같은 외지는 ‘스트록스가 스트록스이기 전 스트록스였던 밴드’라는 말로 회고하고 있다. 파이어 이터는 상업적 실패와 메이저 레이블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1998년에 해체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담과 실패의 경험이 워크멘의 자주적 작업방식과 자유분방한 사운드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즉 월터 등은 팀 해체 후 남은 돈을 털어 자신들만의 작업실을 만들고 동료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뉴욕시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아날로그 스튜디오 마르카타 레코딩(Marcata Recording)은 워크멘 사운드의 산실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서 작업하는 밴드 중에는 워크멘과 절친한 동료들인 프렌치 킥스(French Kicks)나 내츄럴 히스토리(The Natural History)와 같이 비교적 익숙한 이름들도 발견된다. 워크멘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포그스(The Pogues), 큐어(The Cure), 브욕(Bjork), 스미쓰(The Smiths),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닐 영(Neil Young), 유투(U2)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이는 색다른 밴드가 출현하면 음악적 근본을 따져보기 위해 응당 뒤따르는 비교작업일 뿐 이들 영향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었는지는 사실 불분명하다. 다만,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식의 불길한(atmospheric) 무드와 영국 포스트 펑크 밴드들의 사운드 색채를 언급한다면 비교적 무리 없는 유비(analogy)로 볼 수 있겠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 워크멘의 사운드가 앞서 열거한 뉴욕 출신 동료들보다 두드러진 부분은 유려한 선율과 건반 연주의 전면화라 할 수 있다. 프렌치 킥스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거라지 록과 브릿팝 스타일에 치우쳐 있어 다소 진부하고, 어둡고 무거운 인터폴은 조이 디비전의 그림자가 성가신 데 비해 이들은 비교적 참신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실험적이면서도 고급스런 록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또 과도한 오버드라이브나 거친 질감을 배제한 기타 라인과 실험적이고 섬세한 건반 연주의 조합은 너무 멋을 부린다 싶을 정도로 세련된 느낌을 전해준다. 가장 독특한 점은 악기들이 따로 노는 듯 혼란스럽게 들린다는 것인데, 마치 아방가르드 피아니스트, 싸이키델릭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 헤비 메탈 그룹의 드러머, 술 취한 소울 가수가 모여 협연하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다소 도발적인 매트의 드럼은 “Roll Down the Line”과 같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무드에서조차 솔로 연주를 하는 듯 강한 비트를 뿜어내고 있다. 두 번째 트랙인 “Wake Up”은 맑은 피아노 소리와 힘이 넘치는 드럼, 필요한 부분에만 날카롭게 간섭하는 기타 연주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워크멘 사운드로 꼽을 만하다. 보컬인 해밀턴은 발음을 정확히 하지 않고 웅얼거리거나 늘어지는 연음을 구사하고 있는데, 인터폴의 폴 뱅크스처럼 어둡지는 않지만 조금은 나태하고 퇴폐적으로 들린다. 열정을 거세한 보노의 목소리와 잠에서 막 깬 로버트 플랜트의 목소리를 섞어 놓으면 이렇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한편, “French Vacation”은 귀를 사로잡는 기타 딜레이 소리로 시작해 웅얼거리는 리버브의 향연으로 끝을 맺는 이펙트 실험작이며, “That’s the Punch Line”은 피터의 간결한 베이스 훅과 폴의 기타 트레몰로 주법이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곡이다. 마지막으로 앨범의 백미인 “Rue the Day”는 비교적 친숙한 멜로디와 실험적 연주가 조화를 이룬 곡으로서 CD가 튀는 듯한 인트로를 지나 강약과 속도를 조절하는 구성력이 일품이다. 특히, 중반부 이후 월터의 건반 연주가 창출하는 아련한 드론 노이즈에 속사포와 같이 신경질적으로 두드려대는 드럼 비트가 어울리는 부분은 부조화가 조성하는 강렬한 긴장과 아름다움의 극한을 경험하게 한다. 인디 록 밴드가 메이저의 맛을 본 후 다시 배고픈 작업실로 회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상업적 록 시장이 그 만큼 신물나는 바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들 5명의 20대 뉴요커들은 인디의 품에서만 자신들이 고집하는 음악을 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 같다. ‘Everyone Who Pretended to Like Me Is Gone’이라는 앨범 제목은 이전 밴드에서의 실패 경험과 고독감을 드러내는데, 이제 ‘좋아하는 체 하던 모든 이들은 떠나갔지만’ 더욱 충성도 높은 팬들이 많아질 가능성을 위안으로 삼아도 될 듯 하다. 이들의 회한(rue)이 우리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되는 것이 조금은 역설적이지만 말이다. 20021124 | 장육 evol62@hanmail.net 9/10 사족 : 밴드명을 보고 충분히 감이 오겠지만, 멤버들은 소니(SONY) 社의 제소를 걱정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별 다른 잡음이 없는데, 워크맨이라는 제품이 이미 보통명사화 되고 사양길로 접어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대중적 관심을 못 받는 인디 밴드의 편리하면서도 서글픈(?) 장점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수록곡 1. They’re Winning 2. Wake Up 3. Everyone Who Pretended to Like Me Is Gone 4. Revenge Wears No Wristwatch 5. The Blizzard of ’96 6. French Vacation 7. Stop Talking 8. We’ve Been Had 9. Roll Down the Line 10. That’s the Punch Line 11. It Should Take a While 12. Rue the Day 13. I’m Never Bored 관련 글 Interpol [Turn On The Bright Lights] 리뷰 – vol.4/no.22 [20021116] 관련 사이트 Walkmen 공식 사이트 http://www.marcata.net/walkmen Marcata Recording 사이트 http://www.marcat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