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 고무신 – 신세계/힛트, 1975(재발매: 도레미, 1999) 자조와 자존, 그리고 한국적이면서 국제적인… “이 음반은 1975년에 발표된 한대수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라고 소개하면 너무 덤덤한 소개일 것이다. 일단 철조망에 고무신 한 짝이 덜렁 걸려 있는 표지 사진이 무언가 심상치 않다. ‘고무신’이 1960년대까지 ‘주부’들을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라면, 이 음반의 표지는 신중현의 ‘엽전들’이라는 밴드 이름만큼이나 한국적이고 자조적이다. 물론 한대수가 고무신이 주부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그건 나의 상상이다. 하지만 이 음반이 한국적이고 자조적인 만큼 국제적이고 자존적(自尊的)인 것은 분명하다(자존적이라는 표현은 한대수식 단어 만들기이므로 교열은 검열이다). “고무신”은 이런 자기비하가 체질화되었던 사람의 ‘해방가’다. 사운드는 온갖 음악이 뒤섞여 있고 가사는 의미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 / 베이스 들어오고 / 기타도 좀 울고 / 장구 때려”라고 사투리로 발성하면서 시작되는 대사는 그 뒤 본격적으로 노래에 들어가서도 마치 랩을 하듯 자유분방하게 진행된다. 얼핏 듣기에는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의 편곡과 유사하고 창법 역시 많은 말을 주절대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파격적인 점에서는 “고무신”이 오히려 한 발 앞선다(하긴 이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세션을 맡은 무지개 사운드와 잠시 맞춰보았다는 사실도 이 곡의 즉흥적 쾌락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다. 앨범의 또하나의 백미는 “여치의 죽음”이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에 수록된 연주곡 “여치의 죽음”은 엽전들의 “해랑사를 너는 나”(신중현과 엽전들 제 1집(지구레코드, 1974) 수록)와 더불어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의미심장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엿먹이기’다. 그건 저항을 운운하기 이전에 어떤 본능의 작용이다. 한대수와 신중현의 업적에 대한 비교는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게 나을 것 같다. “여치의 죽음”을 들으면 라비 샹카(Ravi Shankar)의 시타(sitar)연주를 듣는 듯한 묘한 조성과 튜닝은 아마도 ‘알고 나면 매우 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걸 생각해 낸다는 것은 놀랍기 그지없는 것이다. 거기에 유복성의 퍼커션과 한대수가 즐겨 연주하는 톱의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싸이키델릭’하면서 ‘아방가르드’한 소리의 향연이 전개된다. ‘오리엔털’한 무드라고 말하는 것은 사족일 뿐이고 ‘한국이 동양이지 그럼 서양이냐?’라고 반문하고 싶다. ‘오버’해서 해석한다면, ‘개미’만을 원하던 박정희 정권에 대해 ‘여치의 죽음’을 웅변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여치나 베짱이나 그게 그거’라는 배짱이 필요한 해석이다. 나머지 여섯 곡은 차분한 ‘통기타 포크’다. 거기에 첼로를 중심으로 한 현악 편곡은 우아함을 더해 주고, 1집 때의 임용환에 이어 기타 세션을 맡은 이정선의 기타 연주도 섬세하다. 상투적으로 흐르기 쉬운 편곡이지만 “오면 오고”와 “오늘 오후” 같은 곡에서의 발랄함, “그대는 내 마음 아는가”와 “아들아 내 아들아”에서의 침울함, “자유의 길”에서의 체념과 달관 등 꽤 다양한 정서가 표현되고 있다. 물론 작곡의 힘이 밑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트랙으로 일제시대에 유행했던 “희망가”는 자작곡이 아니더라도 한대수 특유의 처절함과 비장함을 자아낸다. 한대수의 음악은 ‘기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새삼스러운 진리를 일깨워 준다. 그 점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이 신선한 이유일 것이다. 과거의 모든 음반들이 CD로 재발매된 아티스트인 것도 이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단, 그가 이 음반을 복각하게 된 계기가 1997년 경 일본의 한 공연기획자가 그를 초대해서 다시 무대에 서게 한 사건이라는 점은 참 부끄럽다. 그래서 CD로 재발매된 음반은 [1975 고무신/1997 후쿠오카](도레미, DRMCD 1548)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두 장짜리 CD이고 ‘사진시집’이 부클렛 형태로 들어 있다. 20021108 | 신현준 homey@orgio.net 0/10 수록곡 1. 오면 오고 2. 오늘 오후 3. 그대는 내 마음 아는가 4. 아들아 내 아들아 5. 자유의 길 6. 고무신 7. 여치의 죽음 8. 희망가 관련 글 한대수 인터뷰 – vol.4/no.23 [20021201] [다큐멘터리 한대수]: 한반도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반대기(半代記)에 대한 감상문 – vol.4/no.21 [20021101] 한대수 [멀고 먼 길] 리뷰 – vol.4/no.20 [20021016] 한대수 [Masterpiece] 리뷰 – vol.2/no.12 [20000616] 한대수 [Eternal Sorrow] 리뷰 – vol.2/no.24 [20001216] 한대수 [고민] 리뷰 – vol.4/no.22 [20021116] 관련 사이트 한대수 공식 사이트 http://hahndaes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