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23060209-0422songchangsik74송창식 – 맨 처음 고백/손을 잡고 걸어요 – 대도(SDO 0045), 19741230

 

 

음악적 모색이 초래한 포크의 내적 균열

송창식은 한국 음악계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나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 등의 노래를 번안해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트윈 폴리오 시대를 뒤로 하고 솔로 데뷔 곡 “창 밖에는 비 오고요”를 발표한 순간부터 그는 한국 아니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음악세계의 소유자가 되었다. 편의상 계속 ‘포크 가수’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이미 이 때부터 그의 음악은 포크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포크라고 부르더라도 그것은 당시 그의 많은 동료들이 추종하던 밥 딜런(Bob Dylan)이나 사이먼 & 가펑클(Simon & Garfunkel) 류의 포크와는 질적으로 다른 ‘송창식 류 포크’였다. “딩동댕 지난 여름'”이나 “꽃보다 귀한 여인” 등 일련의 히트곡들에서 발견되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멜로디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한 송창식만의 것이다. 그가 창출한 이러한 음악세계는 소위 ‘아름다운 노래’에 관한 당대의 통상적 관념을 철저히 거스르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의 작품들에 대해 ‘노래같지도 않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애플에서 오리엔트로 소속사를 옮겨 첫번째로 발표한 이 음반은 송창식에게 있어서는 통산 네번째 독집 앨범이다. 데뷔작부터 이미 자신의 음악세계를 선명히 드러낸 음악인이라면 네번째 앨범 정도에서는 어느 정도의 음악적 완성을 기대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기대를 여지 없이 배반한 채 여기서도 지속적인 모색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송창식 팬들을 항상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30년 이상 음악생활을 해 오면서 수많은 앨범을 내놓았지만 그 중 ‘송창식 음악의 결정판’ 또는 ‘송창식 최고의 명반’이라고 할만한 음반은 좀처럼 골라내기가 어렵다. 몇몇 트랙에서는 대단히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지만 나머지 트랙들에서는 평범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 송창식 음반의 일반적 특징이다. 이는 그의 작업이 대부분 현재 진행형의 양상을 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그의 앨범들은 특정 단계의 완결로서의 최종 보고서가 아니라 영원한 과도기로서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피리부는 사나이”나 “왜 불러” 시기의 음악도, 현재까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담배가게 아가씨”나 “참새의 하루” 같은 음악도 그에게는 결코 종착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앨범의 과도기적 성격은 수록곡들의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앨범에 수록된 열 곡은 각기 다른 열 개의 스타일에 입각해서 만들어져 있다. 포크가 있는가 하면 록이 있고 팝이 있는가 하면 트로트가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스타일은 한데 융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제각기 고립되어 앨범을 단편화/분절화시켜 버린다. 송창식은 이 앨범을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적 장르를 실험함으로써 뭔가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앨범의 이러한 내용적 특성을 전적으로 송창식의 탓(?)으로만 돌리는 데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 앨범의 제작을 담당한 나현구라는 인물을 변수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당시 오리엔트 프로덕션을 통해 발매된 모든 음반의 제작에 전권을 휘두른 그가 이 앨범의 선곡과 곡 배열에 관여하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앨범에 수록된 곡 대부분이 송창식 자신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현구가 지닌 선곡의 폭은 어디까지나 송창식이 가져온 작품들로 제한되었을 수 밖에 없다. 이 점에서 이 앨범은 궁극적으로 송창식 개인의 작품집이다. 이 앨범의 다소 혼란스러운 내용은 기본적으로 당시 송창식의 머리 속에 존재하던 음악적 혼란의 일단을 표현하고 있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완성도에 있어서는 문제가 다분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무려 네 개의 히트곡을 배출함으로써 ‘가수 송창식’의 인기를 더욱 단단한 지반 위에 올려 놓았다. “맨 처음 고백”, “한걸음만”, “새는” 그리고 “한번쯤”이 이 앨범에 실린 히트곡들의 목록이다. “맨 처음 고백”은 1950년대 미국 팝송, 구체적으로 플래터스(The Platters)나 코스터스(The Coasters) 풍의 두왑 발라드다. 실제로 노래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강근식의 전기기타 멜로디는 ‘두비두왑’이나 ‘범범범’ 같은 코러스로 대체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세션 그룹 동방의 빛이 만들어내는 상큼하고 현대적인 사운드와 정박으로 부르기 보다는 음의 길이를 늘였다 줄였다함으로써 미묘한 변화를 주는 송창식의 보컬은 이 곡을 단순한 복고주의의 함정으로부터 건져낸다. 이 곡에 이어지는 “한걸음만”은 당시 한창 유행하던 소프트 록 성향의 노래다. 장르의 특성상 단순하고 평이하게 만들어진 이 곡은 드나듦을 정확히 통제하는 동방의 빛의 절제된 연주가 특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잠시 전면에 등장하는 이호준의 오르간과 곡의 여백을 차분히 메우는 강근식의 청명한 기타는 송창식의 따뜻한 보컬과 어우러져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어느 아티스트든 최고의 곡을 선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송창식처럼 음악적으로 다채로운 뮤지션의 경우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속한다. 그러나 록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 선택은 어느 정도 자명하다. “새는”! 비단 송창식 최고의 곡일 뿐 아니라 한국 록 역사상 최고의 곡 중 하나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듣는 이에 따라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도 하고 싸이키델릭 록이라고도 하는 이 작품은 한마디로 동방의 빛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훌륭한 밴드인가를 과시하는 일종의 시연회와도 같은 작품이다. 특히 송창식의 보컬파트가 끝난 뒤 강근식의 피킹 하모닉스를 신호로 플루트와 신디사이저 그리고 기타가 차례로 가세하는 일대 잼의 향연은 한국 음악사에 보기 드문 명장면이다. 그러나, 아뿔싸!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손에 땀을 쥐기 시작할 무렵 곡은 그만 성급하게 막을 내리고 만다. 엔딩이 페이드 아웃처리된 것으로 보아 이들의 실제 연주는 앨범에 실린 부분 이후에도 한참 더 진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가장 긴 4분 20여초의 러닝타임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이 곡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두 배는 되었어야 했다. 혹시라도 이 세션의 마스터테입이 발견되어 이 연주를 온전한 형태로 들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기쁜 일은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부질없는 백일몽에 불과할 뿐이다.

“새는”의 뒤를 잇는 트랙은 그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트로트 넘버 “한번쯤”이다. 아니 어쩌면 이 곡은 트로트의 패러디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이 곡은 트로트이면서도 트로트가 아닌 것이다. 전주와 간주에서 두박자 리듬에 실려나오는 기타 멜로디는 누가 들어도 명백한 트로트 선율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리듬은 트로트가 아니라 경쾌한 폴카 리듬이며 그것 마저도 베이스 연주자 조원익의 손 끝에서 곧 재즈적인 것으로 분할되어 버리고 만다. 송창식의 보컬도 꺾고 뒤집는 전형적인 트로트 보컬기법을 철저히 무시한 채 자기만의 음색과 발성으로 그대로 가고 있다. 그 결과 이 곡은 한편으로는 노골적인 트로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트로트 특유의 옛스러움이 탈각된 새롭고 신선한 느낌의 음악으로 들려온다. 이 곡은 이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곡이며 송창식의 음악인생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 곡의 성공을 기점으로 그는 본격적으로 트로트 답사에 착수하여 “피리부는 사나이”와 “왜 불러” 등의 성과물을 만들어냈고 이 곡들을 통해 드디어 한국 최고의 인기가수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 앨범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앨범의 말미에 실린 다른 작곡가들의 곡이다. 그 하나는 김민기가 만든 “강변에서”고 다른 하나는 조동진의 작품 “바람부는 길”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 밑바닥 인생들이 겪는 고단한 삶을 그린 김민기의 “강변에서”는 송창식의 걸출한 보컬을 통해 단순한 노래에서 하나의 드라마로까지 승화된다. ‘늘어진 어깨마다~’에서는 유난히 힘 빠진 목소리로, ‘시커먼 연기가~’에서는 혐오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는 가사에 담긴 모든 감성적 가능성을 세밀하게 탐구해서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의 이러한 접근이 특히 빛을 발하는 곳은 노래의 막바지에 나오는 ‘아이야 불 밝혀라’라는 부분이다. 그는 이 대목의 가사를 즉흥적으로 ‘야 이 놈아 불 밝혀라’로 바꿔 부르는데, 이는 공장에 출근했다 돌아오지 않는 딸에 대한 노모의 걱정과 근심 그리고 초조를 매우 실감나게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처럼 탁월한 표현능력에도 불구하고 송창식의 “강변에서”는 크게 보아 실패한 시도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그의 표현은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미시관리(micro management)의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이러한 실패는 아름다운 실패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시도는 성패 여부를 떠나 충분히 흥미롭고 가치있는 것이다. 누구든 이 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송창식의 버전을 반드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강변에서”가 아름다운 실패라면 “바람부는 길”은 철저한 실패라고 해야할 것 같다. 조동진의 음악은 외면상의 단순함 때문에 언뜻 쉬워보이지만 실상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 단순함이다. 송창식은 기본적으로 감정이 풍부한 목소리를 지닌 가수다. 감정을 최대한 덜어낼수록 진가가 나타나는 조동진의 음악을 소화하기에는 처음부터 그리 적절한 가수가 아닌 것이다. 송창식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이 곡에서는 되도록 목소리에 감정을 싣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원작자의 텅 빈 목소리에 도달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서 장식음을 붙여넣는 강근식의 기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다. 차라리 전혀 다른 접근을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조동진의 버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준거점으로 삼을만한 버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원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조동진은 뒤늦은 음반데뷔를 했고 이 곡은 그의 데뷔 앨범에 원작자의 목소리로 녹음되어 새롭게 실려있다. 지금에 와서 비교해 봐도 이 곡의 맛을 내는 데는 역시 조동진의 목소리를 따를 자가 없는 것 같다.

이 앨범은 1970년대 초를 세차게 몰아쳤던 포크 붐의 말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어떤 점에서는 포크 붐의 종말을 상징 또는 예언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송창식이 여기서 트로트에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의 매우 중요한 방증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포크와 트로트의 조우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1974년이라는 시점을 경과하면서 포크는 더 이상 초창기와 같은 장르의 순수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한편으로는 포크를 만들고 노래하는 이들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함으로써 포크 특유의 나이브한 낭만주의가 근거를 잃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포크 외적 음악 요소들이 포크 내부로 유입됨으로써 포크의 정체성은 그 내부에서 파열될 지경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로트는 포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마지노선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바로 그 위험한 뇌관을 건드려버렸다. 대마초 사건만 없었다면 포크의 태평성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포크는 어차피 내리막 길을 걷고 있었고, 트로트로 전향(?)한 송창식은 대마초 사건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가수왕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을 해봐도 사태가 그리 근본적으로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20021128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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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맨 처음 고백
2. 한 걸음만
3. 밤눈
4. 향수
5. 축가
Side B
1. 손을 잡고 걸어요
2. 새는
3. 한번쯤
4. 강변에서
5. 바람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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