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1044207-0422vincentgalloVincent Gallo – When – Warp, 2001

 

 

헐렁한 오선지를 입은 ‘자아(自我)의 목소리’

1998년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Buffalo ’66]을 기억한다면 빌리 브라운(Billy Brown)역의 빈센트 갈로(Vincent Gallo)란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빈센트 갈로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이었던 [Buffalo ’66]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와 성격이 투영된 작품이었다. [Buffalo ’66] 사운드트랙은 킹 크림슨 같은 아트 록부터 본작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자작 곡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지만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곡들로 이뤄진 앨범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고 [Buffalo ’66]에서 드러난 – 애정을 갈구하지만 상처로 인해 어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게 된 삭막한 내면의 – 정서는 우리의 손에 [When]이란 앨범으로 다시금 실현되고 있다.

뉴욕주의 버팔로에서 태어난 빈센트 갈로는 버팔로에서 몇몇 무명밴드를 거치며 프로토 펑크(proto-punk) 스타일의 음악을 했다. 비록 그가 뉴욕시로 간 이후 [CBGB] 같은 곳에서 연주하기도 했지만 작은 성공도 잠시뿐이었고 밴드는 어떤 녹음도 남기지 못한 채 해산하게 된다. 오히려 그가 주목을 끌게 된 이유는 음악이 아니었다. 그가 뮤직 비디오에서 감독 겸 주연을 도맡으면서 시작된 영화배우로써의 경력덕분이다. 1993년을 기점으로 갈로는 일년에 두 편 정도씩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며 성격파 배우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는데, 이 당시에 쌓은 영화계나 각 분야의 인맥은 그의 감독 데뷔작 [Buffalo ’66]을 제작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아울러 [Buffalo ’66]의 사운드트랙도 영화 못지 않게 호평을 받은 덕분에, 와프(Warp) 레이블에서 그의 홈 레코딩(home recording)으로 이뤄진 데모 테이프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음반을 살펴보자.

음반 [When]은 ‘음습한’ 유려함을 뿜어낸다. 잘 배열되고 편집된 앨범의 ‘통일성’은 이 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부유하는 음의 텍스처와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특성을 드러내는 “I Wrote This Song For The Girl Paris Hotel”, “My Beautiful White Dog”, “A Picture of Her”부터, 일렉트릭 기타, 퍼커션, 드럼이 맞물린 연주와 나직하게 읊조리는 보컬이 세공 된 느낌을 갖도록 해주는 “When”, “Was”에 이르기까지. 이런 특성들은 편중되지 않고 적절히 수록곡마다 녹아든다.

잘 배열된 유려함을 가진 이 음반은 스타일에선 묘한 간극에 위치한다. 음의 텍스처가 있지만 메뉴팩처링은 아니며 아트 록으로 간주하기에는 미니멀하다. 느릿한 비트감은 포착되니 뭉뚱그리기 쉬운 트립 합에 속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스타일의 모호함은 불분명한 느낌을 청자에게 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음반이 나른한 인상을 준다는 특질과 맞물리면 이 말은 지루하게 들린다는 말도 된다. 포스트 록을 연상시키는 음의 텍스처들과 유려하지만 미니멀한 악곡 구성에 이르면 고개가 끄덕일 만도 하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음반의 진정한 매력은 ‘목소리’다. 빈센트 갈로는 노래를 잘 하려 하진 않지만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한다. 그것은 너무도 강렬해서 “Yes, I’m Lonely”는 연주가 단순히 ‘반주’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Honey Bunny”가 최고조에 오르면 연주도 ‘불필요’하게 된다. 오직 절정을 빛낼 수 있는 것은 ‘목소리’ 뿐이다.

목소리에 매혹되면 가사가 궁금해진다. 그렇지만 빈센트 갈로는 노래에 의미를 강하게 두지 않는다. “Laura”에서는 로라가 돌아와 같이 행복한 장소를 찾기를 염원하는 단편적인 내용으로 일관하며, “Apple Girl”은 연인에게 바치는 자장가로만 들린다.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는 음반에서 자주 매혹적인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가사에 의미를 두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음반이 지향하는 바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향점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무드(mood)’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청자의 상념이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완결되지 않는 곡의 진행으로 인해) 미궁에 빠지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청자의 상념이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그의 ‘목소리’이다. 감정이 실린 목소리의 힘은 생각이 닿지 않는 기억 저편의 ‘무엇’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자아(自我)’이다. 자아를 일깨워 ‘혼돈’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 빈센트 갈로가 [When]에서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 점은 음반을 계속 듣다보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Buffalo ’66]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빌리 브라운이 강박적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과 음반에서 갈로가 같은 가사를 되풀이해서 읊조리는 것까지 비교하게 되니 어쩌면 이 음반이 사운드트랙으로 더 어울릴 것 같다. 20021106 | 배찬재 focuface@hanmail.net

8/10

뱀다리: 빈센트 갈로가 무명 시절 뉴욕시에서 활동했던 밴드에는 낙서 화가(graffiti artist)로 유명한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도 있었다고 한다.

수록곡
1. I Wrote This Song For The Girl Paris Hotel
2. When
3. My Beautiful White Dog
4. Was
5. Honey Bunny
6. Laura
7. Cracks
8. Apple Girl
9. Yes, I’m Lonely
10. A Picture Of Her

관련 사이트
Vincent Gallo의 공식 사이트
http://www.vincentgall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