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02년 10월 15일 오후 1시
장소: (종종 그렇듯) 홍대 모처

이미 리뷰가 나온 상황이니 긴 말은 필요없을 것이다. 얼마 전 첫 번째 정규음반 [Funk!]를 낸 불독맨션과 인터뷰를 가졌다. 밴드 측에서는 이한철(어쿠스틱 기타, 보컬), 서창석(기타), 조정범(드럼)이 인터뷰에 응했다. 이한철의 대답이 많지만 실질적으로는 밴드 전체의 대답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st Floor: 맨션 터잡기

20021108080637-bulldog1[weiv]: 앨범 내신 거 축하드립니다. [Debut EP](2000) 이후 2년이 걸렸는데, 그동안의 활동은?
이한철: 주로 공연이었어요. 앨범 녹음기간은 4개월(2002년 5월∼8월) 정도 걸렸고요. 곡도 6개월 전에 써놓은 것도 있고, 녹음 전날 만든 것도 있고…

[weiv]: 앨범을 낸 곳이 (이한철이 운영하는 인디 레이블인) 튜브앰프가 아니라 (긱스, 롤러코스터 등이 소속되어 있던) 아인 미디어인데, 그쪽과는 어떤 경로로 이어졌나요.
이한철: 안정일 씨라고 예전에 제가 솔로활동 할때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 계신데 지금 이쪽 실장님으로 계세요. 그분과의 친분으로 예전에 안면은 텄지요. 앨범 제작 당시는 저와 멤버들 모두 우리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몇 군데 얘기해 봤는데 이쪽 레이블 색깔이 우리와 맞는 것 같고… 메이저라고는 하지만 ‘메이저’ 식의… 그러니까 TV 같은 데 무작정 나간다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거든요.

[weiv]: 녹음은 어디서 어떻게?
이한철: 주로 녹음한 곳은 이오엔터 스튜디오였지만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어요. 아는 스튜디오 가서 곡 녹음당 얼마다 하는 식으로 제작했거든요.
서창석: 녹음 중에 밥도 먹고 오락도 하고…(^^)

[weiv]: 작업 환경은 괜찮으셨나요?
이한철: [Debut EP]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죠… 그건 우리 작업실에서 아날로그 릴 테이프 써가면서 한 거니까. 그게 가끔 녹음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아무리 연주를 잘 해도 안되는 거죠.

[weiv]: 제작 중에 음반사의 ‘간섭’ 같은 건 없었나요?
서창석: 네.
이한철: 간섭이 너무 없어서 허전할 정도였어요(^^). 음반의 내용물은 우리끼리 다 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2nd Floor: 맨션 짓기

[weiv]: 앨범을 들을 때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이 ‘복고풍 훵크’입니다. 제작 당시 주된 의도 같은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지요.
이한철: “Funk” 같은 곡은 (1970년대 사운드라기보다는) 팝적인 방향으로 갔는데 아마 악기 때문에 복고적으로 들리는 것 같아요. 옛날 소리나는 오르간이나 브라스 같은 것도 썼으니까… 앨범을 만들면서 중시한 것은 전반적인 ‘기분’이에요. 어떤 부분은 밝게, 어떤 부분은 이보다 좀 더 어둡게. 특정한 스타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건조하고 신나는 느낌의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컬러보다는 흑백으로.

[weiv]: 막상 제가 듣기엔 음반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것 같거든요.
이한철: 예전 우리 음악 들으시던 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TV에 나오는 댄스 가요를 듣다가 우리 음악 들으시면 또 소박하다고 하시더라구요.

[weiv]: “Funk”와 “Destiny” 같은 곡은 좀 더 ‘거칠게’ 편곡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이한철: 저도 “Funk” 같은 곡은 거칠게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의도적으로 제가 통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나가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의도한 대로 가는 건 밴드로서는 재미가 없고, 혼자 맘대로 할 수 있다면 밴드 할 필요도 없겠지요.

[weiv]: 브라스/스트링 어레인지는 서창석 씨가 맡았는데, 혹시 정규교육을 받으신 적이 있나요?
서창석: 제가 예전 나왔거든요. 거기 다닐 때 수업 받은 것도 있고 평소에 관심도 있고 해서 이번에 맡게 되었어요.

[weiv]: 앨범 작업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리듬과 편곡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모던 록’에서도 리듬에 신경을 쓰신 것 같고 편곡도 ‘퓨전 스타일’을 살리는데 역점을 두신 것 같은데, 작업중에 특별히 신경쓰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한철: 곡을 들으면 가사가 많이 들리는 곡이 있죠. 또는 멜로디가 잘 들리는 곡도, 리듬이 눈에 띄는 곡도 있는데, 이번 앨범에는 그것이 고르게 분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적당히 멜로디도 들리고 리듬도 들리고… 말씀하신 게 정확해요. 작업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weiv]: 이건 이한철씨께 드리는 질문인데, 솔로 2집의 “Animal” 에서는 펑크와 레게가 번갈아 나오고 “안되는 건 안돼”의 리믹스 트랙에서는 콩가 리듬이 나옵니다. 혹시 예전부터 ‘월드’에 관심이 있었나요?
이한철: 그때는… 그게 그냥 특이한 리듬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크게 관심도 없었고, 지금도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조금씩 같은 리듬을 갖고 ‘발전’을 시켜나가는 것 같아요. 솔로 시절에 펑크와 레게를 붙여보았다면 지퍼 시절의 “빠빠빠” 같은 곡은 스트레이트한 록에 레게를 연결하는 식으로… 그리고 지금 앨범에서는 그때보다는 월드 리듬을 좀 더 말랑말랑한 방식으로 사용해보기도 하고.

[weiv]: 이것도 이한철씨께 드리는 질문인데… 이한철씨 곡을 듣다 보면 데뷔 초 하나기획과 관계를 맺었을 때 영향받은 듯한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서정적이고 맑은 느낌과 퓨전 스타일의 편곡 같은 것들. 예전에 참여하신 리아나 이규호의 음반도 그랬고 이번 음반 역시도 하나기획의 음악과 알게 모르게 맥이 닿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한철: 제 곡의 서정성… 사실 제가 곡을 만들면서 하나기획 형들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어요. 물론 필순 누나의 이 음반([너의 외로움이 날 부를 때])을 굉장히 많이 들었고, 편곡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음악적으로 영향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많이 교류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제가 못 느끼는 무의식적인 것을 지적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weiv]: 보이스 디렉팅은 조정범씨가 맡았는데, 정확히 어떤 일인가요(^^;)
조정범: 그건 이를테면… 노래를 할 때 100%가 자기 능력이라면 그걸 120% 정도 뽑아낼 수 있게 보조해주는 거에요. 자기가 스튜디오 안에서 부르는 건 객관적으로 평가가 안되니까… 저같은 경우는 이번에 앨범을 만들면서, 전문적으로 한 거라기보다는 밴드 사이에서 일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맡은 건데… 그런 식이에요. 한철이가 안에서 노래하면 이건 괜찮다, 이건 좀 밝게 나가보자, 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weiv]: 다른 앨범에서도 그런 작업을 해보셨나요?
조정범: [Debut EP] 때도 했었어요. 팀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을 많이 해요. 그때부터 습관이 된 거라서… 하다못해 앨범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것도 다 나눠서 했거든요. 그게 밴드답다는 생각을 해요.
이한철: [Debut EP] 크레딧에 잘못된 거 있어요. 정범이가 믹싱을 안 했는데 했다고 돼 있어요.
서창석: 믹싱에 간섭은 했어요(^^).

[weiv]: 전자음 쪽을 넣어보시려는 생각은 없었는지? 이한철씨 예전 음반이나 [Debut EP]에도 일렉트로니카가 실려 있는데요.
이한철: 공연 때도 테크노 뮤지션들과 공연을 많이 했어요. 일렉트로니카 쪽에서도 훵키나 소울 쪽의 리듬과 곡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근데 이번 앨범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컬러보다는 흑백의 느낌에 가까운 음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weiv]: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Buenos Aires”와 후반부의 세 곡입니다. 작업하면서 특별히 공을 들였거나 힘들었던 트랙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이한철: “Buenos Aires”는 실은 그냥 막 만들고 막 녹음한 거에요(^^). 하지만 음악적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던 곡이었어요. 중간에 이것저것 덧붙인다거나, 그런 것들. 마지막의 세 곡은 말씀대로 공을 많이 들였고요.

[weiv]: “Room #101”, “Room #102” 같은 식으로 스타일을 나누려 하신 것 같은데 정확히 나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는 듯 합니다. 어떤 의도였습니까.
조정범: 사실 곡을 배치할 때 그걸 넣는 걸 염두에 두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한철: 다른 인터뷰에선 그냥 멤버들이 집들이하는 기분으로 하나씩 들어오는 것처럼 만들었다는 식으로만 얘기했는데…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앨범의 수록곡 거의 대부분이 빠른 곡들이에요. 느린 곡이 없고. 배치상 중간에 느린 곡이 좀 있었더라면 앨범을 듣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구성’이 생기겠지요. 이번엔 신나고 재미있는 음악을 해보고 싶어서 전반적으로 미디엄 템포 이상으로 만들었는데 계속 그러면 또 지겨워질까봐 그 안에서도 템포를 조금 늦췄다가 빠르게 했다가… 그런 의미에서 앨범을 그렇게 구분한 겁니다.

[weiv]: “Room #101″에서 들어가는 소리가 샤워하는 소리 맞죠?
서창석: 네.
이한철: 빗소리로 듣는 사람도 많더라…

[weiv]: 다음 곡이 “Apology 사과”라서 그런 건지도(^^)
멤버들: 아…(^^)

3rd Floor: 맨션에 살기

20021108080637-bulldog5[weiv]: 멤버들은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 홍보 자료에 보면 클럽에서 결성 제의를 받고 ‘즉석에서’ 모인 거라는 식으로 나와 있는데…
조정범: 그게 맞아요. 처음부터 음반 낼 생각은 없었고,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들이라 한 번 모여 연주도 해 보고, 되면 음반도 내 보자는 식이었어요. 마침 그때 한철이가 지퍼 끝내고 개인적으로 쉬고 있던 시기였는데, SH 클럽에서 공연 제의가 들어왔거든요. 처음엔 우리 곡이 없어서 한철이 1, 2집에서 주로 연주하고 급하게 만든 것도 있고… 그건 한번하고 말았어요(^^;). 막상 하다 보니 성격도 잘 맞고 서로 배려도 잘 하고, 길다면 긴데… 4년이니까.
이한철: 처음 공연(1999년 8월) 때는 라디오헤드나 쿨라셰이커, 뉴욕 스타일의 하드코어도 해 보고 그랬어요. 그때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런 스타일들을.

[weiv]: 지퍼 음반에도 그런 곡이 한 곡 있죠? “증오”라고… 랩 메틀 스타일의…
이한철: 네. 밴드 시작할 때는 제 분위기로 많이 갔으니까. 그러다 남을 건 남고, 없어질 건 없어지고, 다른 멤버들의 음악적 취향도 보태지고 해서 지금의 스타일이 된 거죠.

[weiv]: 개인적으로는 앨범을 처음보다는 두세 번 들었을 때 감이 오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입니다. 곡이 소비되는 주기가 워낙 빨라서요.
조정범: 앨범 작업하면서 저희는 사실 ‘대중적’인 음반을 만들려고 했어요. 하지만 또 ‘너무’ 대중적으로 나간다면 쉽게 잊혀질 것 같아서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잡으려 신경 쓰면서 앨범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앨범은) 주기 같은 것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이한철: 월드컵 때문에 이번 10월에 가수들 앨범이 갑자기 많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말을 주변에서도 듣고 그랬는데, 그런 건 신경 안써도 될 것 같았어요. 어차피 저희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런 것에 상관 않으실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앨범을 통해 우리만의 독특한 위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밴드들과 구분될 수 있는 위치. 제가 흑인처럼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좀 더 말랑말랑한 곡을 잘 할 수 있고, 멤버들은 또 말랑말랑한 것보다는 훵키한 음악을 더 잘 할 수 있고. 멤버들과 같이 모여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어떤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다가 나온 것이 훵키한 리듬과 매끈한 편곡 같은, 그런 결과물이고요.

[weiv]: 불독 맨션의 음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까. 노파심일지도 모르지만 밴드가 강조하는 것이 ‘춤추기 좋은 음악’인데 막상 이런 음반이 울려퍼질 수 있는 곳이 많지가 않은 것 같아서요. 나이트는 댄스가, 관광버스는 트롯이 잡은 상황에서…
이한철: 적당한 매체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매니아’를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게다가 인터넷이 있으니까… 사실 우리가 매체에 많이 나가서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그에 비하면 앨범이 꽤 팔리더라구요.

[weiv]: 활동계획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어떤 장기적인 비전이나 음악적인 목표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이한철: 지금까지 온 것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온 것 같아요. 음악적인 변화 같은 것도. 앞으로 음반이 나온다면 좀 더 바뀔지도 모르고. 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지금 이런 식으로 계속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어떤 변화가 있긴 하겠지만. 이를테면 다음 앨범 같은 경우는 곡수가 적고 러닝 타임이 짧은, 전체가 (컨셉트 음반처럼) 한 곡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앨범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 보고 그래요. 하지만 우선은 11월에 공연이 있고, 앞으로도 공연에 주력할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우린 앨범보다 라이브가 낫다는 소리를 더 많이 하니.(^^) 밴드인 이상 라이브가 최우선이죠.
서창석: 우리끼리 얘기할 때는 싱글 시장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단 말을 많이 해요. 다음 앨범을 내기 전까지 우리가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알릴 수 있게.

[weiv]: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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