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07053228-lastchance라스트 챤스 – 폭발적인 사운드(화이트 크리스마스) – 오아시스, 1970(추정)

 

 

성탄전야의 싸이키델릭 고고 여행

라스트 찬스는 이른바 ‘박영걸 사단’의 첫 타자로 알려져 있다. 박영걸은 1970년대 중반 신중현과 엽전들의 매니저를 맡는 등 1970년대 그룹 사운드의 매니지먼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1976년 경에는 노만기획을 창립하여 ‘토털 매니지먼트형 기획사’의 원형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1967~8년 경 경북 왜관의 기지촌에 있던 파라다이스 클럽에 괜찮은 그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박영걸이 이곳을 찾아가면서 전설이 시작된다. 그곳에 1967년 경 김태일(기타), 나원탁(세컨 기타), 곽효성(베이스), 이순남(드럼), 김태화(보컬)로 결성된 5인조 그룹이었고, 이들 모두 1950~1952년 생이니 15~17살부터 활동을 시작한 셈이다. 이들은 파주로 이사하여 ‘라스트 찬스’라는 클럽에 출연시키면서 이름을 라스트찬스로 바꾸었다. 이곳에서 매일 새벽 잠을 깨워 러닝과 발성 연습을 시키고, 때로는 기합까지 주고 음악적 방향도 결정해 주면서 ‘스파르타식’으로 키웠다는 또하나의 전설이 전해진다. 이런 훈련 과정에서 멤버는 7명으로 늘어났고, 미 8군에서의 활동을 벗어나 1970년에는 명동의 음악 살롱 실버타운 출연을 계기로 일반 무대에도 진출하게 됐다. 1970년 제 2회 플레이보이배 전국 보컬 그룹 경연대회에서 2등상을 차지하고 이듬해 대회에서는 1등을 차지하는 등 상복도 많았다.

음악적인 면 외에 이들을 정말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장발이었다. 이들이 TV에 나오고서 몇 달 후에 ‘단발령’이 시행됐고 이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이들의 사진이 실렸을 정도였다. 이들은 긴 머리를 이용한 무대 매너로 유명했는데, 특히 김태화의 역동적이고 ‘발광적’인 매너는 또하나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그때 음악 살롱이나 고고 클럽을 드나들던 사람들 가운데 이들의 음악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비주얼’만큼은 생생히 기억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 음반도 이때 나왔다고 추정된다. ‘정규 음반’이라기보다는 ‘캐롤 음반’이다. 당시 캐롤 음반을 낼 정도면 인기있던 그룹인데 왜 정규 음반을 한 장도 내지 못했는지는 지금도 이유가 궁금하다. LP의 뒷면을 보니 16분 짜리 한 곡만 있다. 순간 이 음반은 ‘싸이키델릭 음반’이고, 이런 음반의 백미는 뒷면에 있으니까 우선 뒷면을 턴테이블에 걸고 들어본다. 박력있는 베이스의 리듬 연주 위에 징글벨의 멜로디가 놓인다. 조금 맥빠지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징글벨 멜로디가 다 끝나자마자 그루브있는 리듬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급변한다. 그리고는 베이스 솔로가 나온다. 의외라는 생각이 스친다. 보통 이런 곡들에선 베이스와 드럼은 짧은 절을 반복하고 기타나 색서폰이 맘대로 활개를 치는데, 베이스가 가장 먼저 솔로 연주를 펼친다. 연주 솜씨도 일품이다. 더불어 베이스 소리가 다른 음반들과 비교해 이렇게 크고 선명하게 녹음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2분여의 베이스 솔로가 끝나면 곧바로 키보드가 연주 실력을 뽐낸다. 퍼커션은 마치 오지에서 의식을 치르는 듯 묘한 긴장감과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곧이어 기타 솔로가 이어지며 신경은 극도로 곤두선다. 색서폰, 드럼, 퍼커션의 솔로까지 모든 악기가 다 기교를 선보이며, 10여분이 조금 넘는 별천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징글벨 멜로디가 한번 나오며 대곡은 끝이 난다.

이 트랙에서 모든 악기들이 비슷한 시간 동안 솔로를 펼친다. 신중현이나 김홍탁이 이끌던 그룹들에서 리더를 맡은 인물의 기타 솔로가 많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당시의 ‘싸이키 사운드’의 관습과 달리 ‘민주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밴드 내부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다기보다는 지휘자가 밴드 외부에 있다는 사정으로 추측된다. ‘진짜 지휘자’에 대해서는 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 음반 역시 (후기) 키 보이스, 히 화이브, 트리퍼스처럼 ‘김희갑 작품집’이지만 김희갑의 입김은 크게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음반의 흥행을 위해서는 인기 작곡가의 이름이 필요했다는 당시 음반산업계의 사정으로 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앞면에 수록된 곡들과 비교해서 이야기를 더 해보자. 오른쪽 스피커에서는 드럼과 베이스, 색서폰이, 왼쪽 스피커에서는 기타와 키보드가 각각 배치된 사운드다.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믹싱이 원시적’이라고 말할 사람이 많겠지만 스테레오 녹음이 도입되던 단계라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나름대로 입체적 효과를 주기 위해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모든 곡의 구성은 동일하다. “도입부 → 기타 혹은 색스폰 멜로디 → 도입부 → 다른 악기 멜로디 → 도입부”로 구성되어 평범하게 캐롤 송을 연주할 뿐 ‘록 음악’으로서 특징은 별로 없다. 앞서 언급한 “징글벨”만 잼 연주를 통해 밴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 곡에서 싸이키델릭 록, 하드 록, 재즈, 소울 등의 영향이 포괄적으로 느껴진다. 한편 두 번째 트랙 “노엘”에서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스타일의 초기 훵크의 리듬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약간의 재즈풍의 느낌 속에 들뜬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들으면 이 그룹이 ‘정규 음반에서 뭔가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성기를 내달리는 것 같았던 이 그룹은 1971년 이후에 김태화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5인조로 재편된다. 그 후의 활동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1975년 한 신문에 등장한 라스트 찬스의 라인업은 한춘근(드럼), 곽효성(베이스), 유현상(보컬), 노승준(올갠), 김석규(기타)로서 초기의 멤버는 보이지 않는다. 당시 이들은 명동의 코스모스, 가자가자 등에 출연했고 대표곡으로 “구름아”, “그리운 그대 모습”이 있다고 하지만, 이런 곡들도 음반화된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라스트 찬스의 전설은 이렇게 ‘기록(recording)’이 부실한 채 전설로만 남아 있다.

P.S.
1. 초기 멤버 가운데 드러머 이순남은 1978년 데뷔 음반을 발표하는 벗님들에서 이치현과 함께 활동하는데, 벗님들 역시 당시 박영걸이 운영하던 노만기획 소속이었다. 한편 김태화는 1980년대 초 솔로 가수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다.
2. 이들 중 김석규가 한국의 기타리스트를 논할 때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점이 라스트 챤스와 연관된 또 다른 전설이다. 참고로 김석규는 송창식의 세션 밴드인 석기시대에 가입하여 송창식의 [나의 키타 이야기](서라벌, 1978년)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3. 유현상은 1976년 신병하가 이끈 사계절의 정규 음반(서라벌, 1976)에 이름을 등장시키며. 최이철이 이끈 사랑과 평화의 비정규 음반(태양음반, 1982)에도 참여한 뒤 이런 경력을 토대로 ‘헤비 메탈 밴드’ 백두산을 만든다.

수록곡
Side A
1. 화이트 크리스마스
2. 노엘
3. 고요한 밤
4. 이별의 노래

Side B
1. 징글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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