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04075816-0421us_bahamadiaBahamadia – BB Queen – Good Vibe, 2000

 

 

짧지만 빼어난 음악, 그 속에 담긴 포용과 여유

주류 시장과 무관하게, 상당수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진작부터 미 도처의 지역 언더그라운드 씬을 중심으로 활약해왔다. 물론 탁월한 라이밍의 엠씨들도 있고 화려한 테크닉의 디제이들도 있다. 이들은 때론 지역의 남성 뮤지션들과 경합을 벌이기도 하고 때론 함께 음악 작업을 하면서 로컬 힙합의 터줏대감 역할을 한다. 흑인 음악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필라델피아의 여성 엠씨 바하마디아(Bahamadia)도 그런 경우다. 그녀는 20년 가까이 남성들을 능가하는 라이머로서, 그리고 흑인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 디제이로서 필라델피아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이다.

바하마디아의 두 번째 앨범인 [BB Queen]은 겨우 7곡이 들어있는 EP 성격의 음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을 10장의 여성 힙합 음반 중 하나로 감히 선정한 것은 [BB Queen]이 언더그라운드 여성 힙합의 목소리를 비로소 미 전역에 각인시켜준 최초의 음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적 충실도야 말할 것도 없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역 블록 파티를 중심으로 디제잉과 엠씨잉 양쪽에 모두 두각을 나타냈던 이 여장부가 본격적인 음반 활동을 시작한 것은 갱스터(Gangstarr)의 구루(Guru)와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의 눈에 띠면서부터이다. 특히 1996년 디제이 프리미어의 지원 하에 발표된 정규 데뷔 앨범 [Kollage]는 갱스터 스타일의 비트와 로린 힐(Lauryn Hill)을 닮은 지적인 라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수작이었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사라진 데뷔 앨범 이후 4년간 두문불출하던 바하마디아는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미국 각지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실력파들을 규합해 결국 [BB Queen]을 새 천년에 내놓았다. 물론 그 사이에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언더그라운드 간판을 내건 힙합 뮤지션들이 상당수의 팬을 확보하게 되고 그들의 음반이 예상외의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상황을 고려하면, 바하마디아의 음반에 대한 평자들과 언더그라운드 힙합 팬들의 새로운 호기심과 관심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비록 여성 엠씨로서 필연적인 편견들을 감내해야 했지만, 전작을 능가하는 [BB Queen]의 진보된 사운드와 지적인 라임은 그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 앨범은 그녀의 후견인을 자처하던 디제이 프리미어의 도움 없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새롭게 프로듀서로 참여한 드웰르(Dwele)와 EQ, 그리고 마운틴 브라더스(Mountain Brothers)의 챱스(Chops) 등은 전작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사운드를 주조해냈다. 재즈에 영향받은 비트 일색에서 벗어나, 보다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리듬과 몽환적인 아우라로 바하마디아의 라임을 뒷받침한다. 가령 “Pep Talk”는 로니 사이즈(Roni Size)의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드럼앤베이스 사운드가 시종일관하는 트랙이고, “Beautiful Things”는 모치바(Morcheeba)를 닮은 트립합에 가깝다. 같은 레이블 소속의 슬럼 빌리지(Slum Village)가 참여한 “One-4-Teen(Funky For You)”는 제목처럼 고급스럽고 나긋나긋한 훵크 곡이다. 심지어 동향의 루츠(the Roots) 풍 재즈 힙합 곡인 “Commonwealth(Cheap Chicks)”나 “Philadelphia”도 루츠의 그것보다 훨씬 나른하고 몽롱한 분위기다. 가장 ‘힙합다운’ 곡은 디제이 레볼루션(DJ Revolution), 라스코(Rasco), 플래닛 아시아(Planet Asia) 등 언더그라운드 실력파들이 참여한 “Special Forces”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엠씨로서 바하마디아는 주류 시장의 젊은 여성 래퍼들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녀의 래핑은 빠르고 부드러우면서도 음산한 느낌의 플로우를 특징으로 하는데, 각 트랙마다 비트에 따라 속도와 강약을 자유롭게 조절한다. 덕분에 래핑과 비트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고 풍성한 사운드를 전달할 수 있다. 라임을 구성하는 솜씨 또한 탁월하다. 치열하게 선택된 지적인 단어들과 시적으로 구성된 문장들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당연히 섹슈얼리티나 물질주의적 욕구에 대한 관심은 추호도 없다. 가령, 연금으로 생활을 이어가면서 저가 물건을 파는 가게만 골라 쇼핑을 해야하는 흑인 여성들의 아픔을 무심한 듯, 하지만 희망적으로 묘사한 “Commonwealth(Cheap Chicks)”에서는 블랙 페미니즘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또한 “Beautiful Things”에서는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사소한 사물과 사건들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려 애쓰는데, 이 또한 흑인 여성들을 위한 그녀의 진득한 애정이 느껴지는 곡이다. 한편으로 “Special Forces”에서는 동료 언더그라운드 남성 힙합 뮤지션들에 대한 깊은 맹세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도 한다.

오랜 음악 활동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바하마디아의 여유는 [BB Queen]의 가장 큰 미덕이다. 언더그라운드 남성 힙합 뮤지션들과 이웃의 시스타(sista)들을 모두 포용하고자 하는 그녀의 담대함은, 창조적인 사운드와 빼어난 엠씨잉의 조화 속에 자연스레 표현된다. 결국, 당대 주류 여성 힙합에 질린 흑인 여성들과 실험적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빠져있는 남성들을 모두 포용한다는 점에서 [BB Queen]은 실로 ‘짧지만 굵직한’ 음반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껏 묻혀있던 지역 언더그라운드 여성 힙합 뮤지션들에 대한 뒤늦은 세간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앨범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말이다. 20021001 | 양재영 cocto@hotmail.com

8/10

수록곡
1. BB Queen’s Intro (feat. DJ Revolution)
2. Special Forces (feat. Planet Asia, Rasco, Chops & DJ Revolution)
3. Commonwealth (Cheap Chicks)
4. One-4-Teen (Funky For You) (feat. Slum Village)
5. Philadelphia (feat. Dwele)
6. Beautiful Things (feat. Dwele)
7. Pep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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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Rolling Stone]의 Bahamadia 페이지
http://www.rollingstone.com/artists/default.html?oid=6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