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21115131-filmreview-hahndaesoo[다큐멘터리 한대수]: 한반도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반대기(半代記)에 대한 감상문

프로듀서: 홍지용
감독: 이천우, 장지욱
제작: Cinewise film
상영시간: 80분

“저는 또 갑니다. 멍든 마음 손에 들고”. 최근 발표된 기록영화 [다큐멘터리 한대수]에서 한대수가 한 말이다. 그의 여덟 번째 앨범 [Eternal Sorrow]의 제작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하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글로 옮겨놓으면 그의 퍼스낼리티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름 아니라 저런 절망적인 발언 뒤에 그는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그 웃음은 실소도 아니고 파안대소다. 이럴 때 도큐멘터리 사운드트랙의 볼륨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영원한 청년의 영원한 슬픔’이라고 그가 표현한 속마음까지 헤아리기는 힘들지만…

한대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한겨레 21]이라는 지면에서는 불필요할 것이다. 그는 정말 특이한 존재다. 자신의 표현에 그는 “외계인”이다. 정말 외계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를 외계인 취급한다는 뜻이렸다. 어쨌든 그의 말이나 행동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장발에 우락부락해 보이는 얼굴, ‘나시’를 입거나 때로 웃옷을 벗은 모습, 왼손가락으로 담배를 물고 피우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기타를 연주할 때 발로 장단을 맞추고 상체를 흔드는 모습도 뻣뻣하게 서서 연주하는 보통 ‘통기타 가수들’과는 다르다. 아마도 한국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이혼한 첫 번째 부인 김명신과 지금의 부인 옥산나(Oxana)가 그와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가장 이상했을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이는 화법이나, 돈을 ‘화폐’로, 미디어를 ‘매개체’라고 부르는 특이한 단어 구사도 만만치 않다. 최근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양호하다”는 표현을 자주 했는데, 이 형용사가 어떤 기분 상태를 나타내는지 궁금하다면, “고무신”([고무신](1975) 수록)이 시작할 때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으로 “조와 조와 기분이 조와”라고 부르는 대목을 다시 들어 보기 바란다. 어쨌든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 어떻게 저런 순수한 영혼이 남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내가 만나 본 음악인들 가운데 ‘스타’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렇게 젊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외계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으랴…

다큐멘터리가 시작될 때 나오는 “여치의 죽음”([고무신](1975) 수록)의 괴상한 악기 연주도 ‘외계의 소리’처럼 심상치 않다(개인적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여치의 죽음”을 유신 정권의 긴급조치를 ‘엿먹이는’ 대표적인 두 곡으로 간주했다. 다른 한 곡은 신중현과 엽전들의 “해랑사를 너는 나”이다. 참고로 ‘저항’이 아니라 ‘엿먹이다’이고, ‘의도’가 아니라 ‘효과’다). 당시 대중음악의 조류에 대해 아는 척 하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인도의 시타 연주자 라비 샹카(Ravi Shankar)의 영향’ 운운하겠지만 한대수의 연주는 그런 ‘거장적인’ 연주가 아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대한의 실험을 단행하는 것이 그가 작품을 만드는 식이다. 이때 녹음했던 과정에 대해서는 ‘증언’ 말고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큐멘터리 중간 스튜디오에서 이 곡을 다시 녹음하는 장면에서 톱을 활로 연주하고 백자(白瓷) 모양의 호리병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어림짐작해 볼 뿐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영상 기록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너무 기뻤다. 정작 다큐멘터리 작품에 대한 설명이 늦었으니 간단히나마 소개해야겠다. [다큐멘터리 한대수]는 2000년 여름부터 2001년 겨울까지 한대수가 부산과 서울에 체류하면서 지내는 동안의 기록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2001년 영화진흥위원회 디지털 장편영화 배급지원작’이자 ‘2000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제작지원작’이라는 자막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공적 자금’도 조금 투입된 모양이다. 지원이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눈먼 돈’이 그래도 좋은 곳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힘들게 작업한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2000-2001년의 모습 뿐만 아니라 TV나 라디오를 비롯한 과거의 기록물들이 등장하기를 바랬지만 그건 좀 소홀했다. 아무래도 기록에 인색한 한국에서 과거의 자료들을 발굴해내기는 곤란한 모양이다. 그렇다곤 해도 1968년 이후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 낸 주요한 사건들의 체계적인 정리와 관련 정보들이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그것도 그리 흡족하지는 않았다. 영상이라는 매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었을까…

또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장면이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정작 음악가로서의 그의 면모에 대한 심층적인 장면은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나긴 공백기를 가졌지만 8종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의 변화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발언이 공식적 기록으로 남기를 바랬는데, 그런 기능은 다소 미흡해 보인다. 늘 앞서 갔던 음악인의 면모가 드러나기에는 협소한 공간인 ‘방송 출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면에 대해서도 비슷한 소감이 든다. 이미 진부한 소재가 되었겠지만 1970년대 정권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솜씨있게 처리되었어야 할 부분일 텐데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 시절 이야기를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미발표 데모 음반만 존재하는 “As Forever”의 연습 장면이라든가, 한국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그의 복잡한 소회를 담은 장면 등은 인상적으로 남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다큐멘터리 도중에 그가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거기서 한대수는 지하철역 계단에서 구걸하는 거지,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 노점을 만들고 장사하는 잡상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옥의 슬픔”에서 가출을 단행한 옥이가 보았던 “복잡한 사회 속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 옥이는 “사랑과 미움 속에 끓는 청년”도 보았다고 말했다. 지금 이런 청년은 어디 있을까. 50대 중반의 청년은 지금도 시집을 내고 새로운 음반을 제작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 글의 제목에 반대기(半代記)라는 이상한 단어를 집어넣었다. 아직은 그의 일대기에 대해 운운할 단계가 아니니까. 20021021

P.S. 한대수는 최근 한국에 머물면서 사진 시집 [침묵]과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그와 가진 3시간 반 동안의 장시간의 인터뷰 내용은 새로운 음반이 발표될 즈음 실릴 것이다. 한편 한대수가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그의 공식 홈페이지인 http://hahndaesoo.co.kr/music/live_clip.htm에서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다.

* 이 글은 [한겨레 21]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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