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 4집 앨범 [Head Music](1999)의 발매 이후 팬들의 눈에 비친 스웨이드(Suede)의 모습은 다소 위태로워 보였다. 1994년 오리지널 기타리스트인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와의 매우 비우호적인 결별 이후, 19세 홍안의 가타리스트 리차드 옥스(Richard Oakes)와 (이런 표현이 상당히 민망하긴 하지만)꽃미남 키보디스트 닐 코들링(Neil Codling)을 영입하여 발표한 [Coming Up](1996)의 국제적인 히트로 인해 밴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고 긍정적인 흐름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듀서 스티브 오스본(Steve Osborne, 유투(U2)와 뉴 오더(New Order), 그리고 플라시보(Placebo)의 음반에 참여했던 인물)을 영입하며 야심만만하게 사운드스케이프의 확장을 노렸던 [Head Music]은 ‘과잉 제작’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고, (비록 앨범 차트에 1위로 데뷔하긴 했지만)판매고 면에서도 그리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것이 스웨이드가 겪은 첫 번째 시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련은 밴드에게나 팬들에게나 좀 더 심각한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간 수려한 외모로 밴드의 새로운 이미지 형성에 큰 기여를 했고(스웨이드가 어째서 ‘미남 밴드’란 말인가!), 음악적인 공헌도에 있어서도 결코 비중이 낮지 않았던 닐 코들링의 (우호적인) 탈퇴가 그것이다(보컬리스트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의 차세대 작곡 파트너로 요란하게 선전되던 리차드 옥스보다도, 의외로 [Head Music]에선 닐 코들링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싱글 비-사이드(b-side)를 통해 보컬/기타리스트로의 영역 확장까지 이루었고). 아마 [Suede](1993)나 [Dog Man Star](1994) 같은 초기 앨범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드디어 스웨이드가 아이돌 밴드라는 오명을 벗겠군’이라며 기뻐할지도 모르고, [Coming Up] 이후에 이들의 팬이 된 경우라면 ‘이제 우린 누구를 보고 환호성을 질러야 하지’하는 탄식을 뱉을 수도 있을텐데, 둘 중에 어느 의견이 더 타당한가는 제쳐두고라도 그 만큼 포스트-버틀러(post-Butler) 스웨이드를 이루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브렛 앤더슨이 밴드의 주도권을 모두 쥐고 있다는 점은 새삼 말 할 필요도 없으니) 닐 코들링의 탈퇴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런 사태를 겪으며 스웨이드는 역시 베테랑다운 사후처리 과정을 보여줬다. 스트레인지러브(Strangelove)의 해산 이후 이들의 라이브 연주와 몇몇 곡들에 아이디어를 제공해오던 알렉스 리(Alex Lee)의 재빠른 영입을 통해 밴드는 몸을 추슬렀고, 때 이른 입 방정을 막기 위해 신곡 “Simon”이 포함된 베스트 성격의 DVD [Lost In TV](2001)를 발매하며 불안한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이런 다사다난했던 [Head Music] 이후 3년 반만의 정규 5집 앨범 [A New Morning](2002)이 스웨이드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리란 사실은, 그리 대단한 선견지명도 아닐 것이다. 일단, [A New Morning]의 스웨이드는 훨씬 가볍고, 긍정적이고, 무엇보다도 평범해졌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차분한 발라드 곡 사이로 전작의 “She’s In Fashion” 류의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팝송과, [Beautiful Ones]의 싱글 비-사이드 곡 “Young Men”을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단조 선율의 곡들이 포진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싱글 “Positivity”는 제목 그대로 더 이상 그럴 수 있을까싶을 만큼 명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브렛 앤더슨은 더 이상 자극적인 비음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하지 않고 있으며(나이가 들어서인지 고음역을 기피하는 듯한데, 오히려 브렛 앤더슨의 진정한 매력은 이런 차분한 중저음대의 보컬에 있지 않나 싶다), 리차드 옥스의 기타도 예전의 그 소란스러움과는 확연히 다른 차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Obsessions”나 “Streetlife”는 그나마 기존의 스웨이드와 가장 근접해 있다. 하지만 “Obsessions”의 반복되는 드럼 비트와 “Streetlife”의 강렬한 단조 선율 역시 이전의 도발적인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앨범 전반에 걸친 사려 깊고 정적인 발라드 곡들은 이들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드디어 삶에 대해 관조의 자세를 갖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점은 “Lost In TV”나 “Astrogirl”, “Untitled…Morning”같은, 상대적으로 싱글커트를 고려한 트랙보다는 단순함의 미덕을 최대한 살린 “Lonely Girls”나 “When The Rain Falls”같은 소품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When The Rain Falls” 후반부, 읊조리는 듯한 브렛 앤더슨의 보컬을 들어 보라). [A New Morning]은 가장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정서에 기댄 음반이다(브렛 앤더슨은 이 음반이 최초로 약물에 영향을 받지 않은 앨범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렇듯 평범하게 변한 스웨이드의 음악을 팬들이 과연 ‘인정’해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스웨이드가 얼마나 극성맞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인정’이란 말이 절대 과장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스웨이드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이기는 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지만, ‘바라지 않았던’ 변화이기도 하다. 물론 밴드의 음악적인 방향성의 변화가 팬들의 눈치를 살피며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스웨이드의 변화는 기존 특징들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축소’와 ‘생략’을 통해 일어난 듯하고, 바로 이러한 ‘스웨이드적인 특질의 거세’란 부분에 있어 이들의 행보가 상당히 불안정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금은 너그러운 자세로 [A New Morning]을 평가한다면, 이미 보여줄 만한 모든 것을 보여준(간단히 말해서 ‘할만큼 한’) 스웨이드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더 내놓아라’라고 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보편적인 의미의 팝 레코드로서, 앨범은 간결하고 귀를 끌 만한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이 점은 분명 [A New Morning]의 장점이다. 하지만 아직 이들이 보여줄 ‘무언가’가 더 있는 밴드이길 바라는 팬이라면, 솔직히 [A New Mornong]이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던 앨범 차트 24위 데뷔라는 참혹한 성적을 보면) 분명 팬들은 이번 스웨이드의 행보가 만족스럽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A New Morning]의 평범하지만 성숙한 팝송 사운드를 통해, 스웨이드가 상당히 훌륭한 성인음악을 들려주리란 기대 또한 아직은 멈출 수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이 [A New Morning]은 아니다. 20021020 | 김태서 uralalah@paran.com 5/10 * 사족 : 다시는 함께 작업하지 않겠다던 맥알몬트(McAlmont)와의 성공적인 재결합을 이루어낸 버나드 버틀러는,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브렛 앤더슨(혹은 스웨이드)과의 재결합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비추었다고 한다. 스웨이드 시절은 기억도 하기 싫다던 그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태도 변화가 걱정 반, 기대 반, 앞으로의 스웨이드의 행보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록곡 1. Positivity 2. Obsessions 3. Lonely Girls 4. Lost In TV 5. Beautiful Loser 6. Streetlife 7. Astrogirl 8. Untitled…Morning 9. One Hit To The Body 10. When The Rain Falls 11. You Belong To Me (Bonus Track) 관련 글 Suede [Head Music] 리뷰 – vol.1/no.2 [19990901] 관련 영상 “Positivity” 관련 사이트 Sony Music 내 Suede 공식 페이지 http://uk.sonymusic.co.uk/suede/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