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21113814-beck-seaBeck – Sea Change – Universal, 2002

 

 

Many Strings And A Microphone

벡(Beck)의 4집 앨범 [Sea Change](2002)를 듣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정규작 사이사이 발매했던 [One Foot In The Grave](1994)나 [Mutations](1998)와 같은, 포크 사운드가 전면으로 나서는 앨범이라는 점이다(‘두 대의 턴테이블과 한 개의 마이크'(two turntables & a microphone)에서 턴테이블은 그 자취를 감춰 버렸다). 하지만 [Sea Change]는 위 두 앨범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비단 정규작과 비정규작이라는 분류의 차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앨범 발매와 함께 진행중인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와의 투어 일정이 주는 인상은 심상치 않다. 벡 스스로가 [Sea Change]를 ‘앨범이 아닌 플레이밍 립스와의 투어 내용으로 이해해 달라’는 주문을 할만큼, 음반 자체보다도 이후의 여러 확장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을 [One Foot In The Grave], [Mutations]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하지만 투어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므로 리뷰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앨범에 국한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앨범의 첫 트랙 “The Golden Age”부터 변화의 조짐은 역력하다. 벡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려 깊은 목소리를 들려주고, 역시나 한 번에 알아차릴 만한 나이젤 갓리치(Nigel Godrich, 라디오헤드(Radiohead)의 [O.K. Computer](1997)와 [Mutation]의 프로듀서)의 -“No Surprises”를 연상시키는 실로폰 소리와 함께- 공간감을 최대한 살린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Paper Tiger”는 또 한 번의 놀라움을 선사한다. 다소 불편한 베이스 라인과 블루스 기타 선율, 그리고 사이키델릭 시절의 비틀스(The Beatles)를 연상시키는 장중하면서도 몽환적인 현악세션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벡의 음악에 선사한다.

특히 “Paper Tiger”에서 사용된 현악의 적극적인 도입은 눈여겨볼 만하다. 실연의 상처를 표현한 “Lonesome Tears”나 “Round The Bend” 등에서도 사용된 현악세션은 벡에게 있어 첫 시도라 할 만한데, 이를 통해 청자에게 강렬한 공감각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 듯하다. 특히 위의 세 곡이 앨범을 통해 거의 최고조에 이른 감정을 전달한다는데 있어(“Sunday Sun” 정도를 포함해서), 앞으로 발표될 그의 음악에서 현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소품인 듯한 “Lost Cause”나 “It’s All In Your Mind”, “Already Dead”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덜 한 것은 아니다. 이런 곡들은 포크라는 기존 틀에서 그 범위를 확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앨범 내의 완급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앨범의 백미를 뽑는다면 (싱글 커트용으로도 손색없을)”Sunday Sun”을 들 수 있겠는데, 다소 평이한 전반부를 지나며 각종 노이즈와 악기들의 어지러운 혼합으로 마무리되는 이 곡에서 ‘벡이 아직 예전의 재치를 잃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드라마틱한 감상을 전달한다. 예전의 벡을 생각할 때 갖고 있던 ‘무덤덤한’ 보컬이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날려버릴 만큼 그는 정성을 다해 노래하고 있고, 사운드 역시 몇몇 ‘튀는’ 곡에도 불구하고 돌출 되는 부분보다는 최대한의 일관된 흐름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Sea Change]는 ‘무드’를 타는 음반이다.

벡의 음악은 (정규음반인 [Mellow Gold](1994)와 [Odelay](1997), [Midnite Vultures](1999)만을 놓고 생각해 볼 때)온갖 싸구려 사운드의 ‘잡탕’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Sea Change]의 경우, 이러한 장르 혼합의 재기 발랄함 대신 포크 사운드에 대한 진지하고 고전적인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벡이 ‘사운드 메이킹’이 아닌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마치 이전의 작업이 음의 꼴라쥬 같다면, [Sea Change]는 차분한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확실히 벡은 음악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접근방식을 시도하고 있다(이것이 누군가의 말처럼 ‘고리타분함’으로의 방향선회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한 가지 지워지는 않는 걱정이 있다. 벡이 그토록 뛰어날 수 있었던 원인은, 그 음악의 완성도나 독창성 이외에도 언제나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가진’, 전문적인 ‘연예인 자질’에 있었다. 그런데 벡 자신도 인정하듯 [Sea Change]에 엔터테이너 벡은 존재하지 않는다. 벡의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신실하고 직접적인 감상을 전달하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이 앨범은 청자를 신경 쓰지 않고(혹은 무시하고) 있다. 이전 그의 작업이 판이한 여러 음악적 재료들을 어떻게든 벡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대중적으로 녹여낸 것이라면, [Sea Change]는 포크라는 단일 요소를 역시나 벡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생경한 무언가로 변이 시킨다.

좀 더 확신을 갖고 얘기하자면, [Sea Change]는 벡의 지독히 자의식 강한 ‘아티스트 선언’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변화는 ‘모 아니면 도’의 판이한 결과를 부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이미 극단으로 갈리는 앨범에 대한 평가가 이를 증명한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10점 만점을 주며 환호를 보냈고, 뉴욕 매거진(New York Magazine)은 혹평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어째서 굳이 이런 어려운 선택을 감행한 마당에, ‘다음 앨범에선 엔터테이너 벡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가 들리는지 의문이다. 혹시 [Sea Change]의 상업적인 실패 가능성을 계산하고 미리 깔아둔 일종의 자기 변명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Sea Change]가 세기의 명반인지, 아니면 그저 자의식에 가득 찬 허세뿐인 앨범인지에 대해서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 비겁한 말이지만 이런 거창한 음악적 변화를 한 번에 속단하기란, 앨범을 만든 당사자에게나 이를 평가하는 사람에게나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을 줄 알았던 벡이. 다시금 무척이나 놀랍고 흥미로운 앨범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벡 스타일의 ‘완성본’으로가 아닌 여전한 ‘현재진행형’ 작업으로서 [Sea Change]는 (여전히 그를 둘러싼 논란들과 함께)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음반이다. 아직까지 벡을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20021018 | 김태서 uralalah@paran.com

8/10

수록곡
1. The Golden Age
2. Paper Tiger
3. Guess I’m Doing Fine
4. Lonesome Tears
5. Lost Cause
6. End Of The Day
7. It’s All In Your Mind
8. Round The Bend
9. Already Dead
10. Sunday Sun
11. Little One
12. Side Of The Road

관련 글
Beck [Midnite Vultures] 리뷰 – vol.2/no.1 [20000101]

관련 사이트
Beck 공식 홈페이지
http://www.bec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