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20015306-0420review_iloveyou트윈 훠리오/펄 시스터즈(외) –  I Love You(김인배 작편곡집) – 지구(JLS 120329), 19690823

 

 

‘포크’와 ‘록’이 한 배를 타고 ‘악단장’이 노를 젓다

벌써 6년도 더 된 일인가보다. [이다]라는 부정기 간행물을 준비하느라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때였는데, ’70년대 대마초 사건’에 관한 어떤 글을 기획하다가 신중현 선생을 만날 기회가 생겨서 그와 아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어 보았던 게 기억난다. 그 때 그에게 물어본 질문 중에 “록 하는 사람들과 포크 하는 사람들이 자주 어울렸나요?”하는 질문도 끼어 있었다. 이 질문을 하게 된 배경에는, 그보다 더 이전에, 소설 쓰는 이모 선생께서 “포크 하는 사람들이 록 하는 사람들을 약간 무시했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어서였다.

과연 신중현과 김민기가 어울려 다녔을까? 그런 의문을 품었던 것은 90년대 중반의 어떤 지적 상황과도 관련이 없지 않다. 한 마디로 록이라는 장르에 저항정신 비스무리한 걸 심으려고 하던 때였으므로 만일 (이미 ‘저항정신’이 있는 것으로 정초된) 김민기로 대표되는 ‘포크’와 (저항정신 보다는 약간은 ‘고고장’ 쪽인) 록이 한 배를 타고 가는 처지였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뭔가 답을 내는 일이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치적인 해답은 1970년대의 신문을 읽던 과정에서 드러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당시의 ‘유신정부’가 그 답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유신정권은 한 쪽은 ‘사상의 불온성’을, 다른 한쪽은 ‘퇴폐풍조 조성’을 이유로 둘 모두에게 철퇴를 가했다. 결국 둘은 그렇게 서로를 맞대고 있었던 것이다. 대마초 사건은 그 둘이 하나라는 걸 보여주는 역설적인 사건이었다.

어쨌든 신중현 선생은 뭔가 ‘불온성’을 캐내고 싶어하는 나의 질문에 너무도 쉽고 본질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그는 “원래 통기타 치다가 보면 전기 기타도 잡게 되고 그런 거예요. 또 전기 기타 치다가 통기타도 치고.” 그러면서 “우리 집에 창식이가(송창식을 말함) 얼마나 자주 놀다 갔는데, 아휴, 걔들도 얼마나…” 그만하자. 뭐 이 비슷한 후일담들을 이어 꺼내놓았고 이야기는 어디론가 흘러 흘러갔고 이젠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통기타 치다가 보면 전기 기타도 잡게 된다’는 말은 아마 잊혀지기가 쉽지 않을 말인 것 같은 게, 왜냐면 그 말은 로큰롤의 발생에 관한 내가 들은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지적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머리가 길어졌으나 그것은 순전히 내가 리뷰해야 하는 음반 탓이다. [I Love You(김인배 작편곡집)]이라 되어 있는 이 음반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우리 음악사에서 ‘포크와 록의 관계’를 따져야 할 것 같아서였다. 어쨌든 이 음반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두 그룹, 펄 시스터즈와 트윈 훠리오(당시 표기 그대로 쓰겠다)를 한 음반에 묶은 흔치 않은 앨범이다. 언뜻 한 음반에 묶이기 힘든 것 같은 이질적인 그 둘을 ‘김인배’라는 작곡가의 이름이 하나로 묶고 있다. 거기에 박연숙과 봉봉 사중창단이 지원사격하고 있다. 일종의 작곡가에 의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나 할까. 요새 힙합 같으면 마치 팀벌랜드가 ‘피처링’의 개념으로 미시 엘리엇이나 지뉴와인 같은 유명한 래퍼/힙합 뮤지션들을 끌어들여 앨범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인배’라는 이름은 전면으로 나서 있지 않고 ‘펄 시스터즈+트윈 훠리오’와 함께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묶어 놓으면 음반회사는 일단 안심을 한다. 기본적으로 장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어거지로라도 이렇게 묶어 놓은 앨범이 나오게 되는 이유는 음악적인 것도 고려되긴 했겠지만 역시 그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삼각형을 이루는 세 꼭지점 중에 대중적인 견인력의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꼭지점은 역시 펄 시스터즈였나보다. 앨범 커버를 보면 마치 데칼코마니를 한 듯 대칭으로 서 있는 펄 시스터즈 두 자매의 시원한 포즈가 전면에 나와 있고 트윈 훠리오는 이상하게 언급조차 없다. 뒷면에는 물론 트윈 훠리오의 이름이 중요하게 취급되었겠지만 말이다. 일단 이미지로는 펄 시스터즈로 밀어붙이자는 판단을 한 걸 보면 앨범 제작자들이 모두 남자였을까. 후훗.

앨범에는 펄 시스터즈가 세 곡, 트윈 훠리오가 여섯 곡, 그리고 박연숙이 두 곡, 봉봉 사중창단이 한 곡을 부르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번안 곡이 많다는 것. 펄 시스터즈가 부른, 앨범의 첫 곡이자 타이틀 곡인 “I Love You”부터가 번안곡이다. 사운드로 미루어 편곡자는 아마도 좀비즈(Zombies)의 원곡을 그대로 참고한 것 같다. 트윈 훠리오도 에벌리 브라더스의 “Crying In The Rain”과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등 여러 곡의 번안곡을 싣고 있다. 밥 딜런의 노래를 트윈 훠리오 식으로 부르는 게 참 재미있다. 원곡의 그 거친 맛을 어쩌면 그렇게 부드럽게 삭이는지! 이런 걸 보면 트윈 훠리오의 노래 스타일도 굉장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을 들어보면, 사운드는 대강 두 대목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당시 신중현이 도입하여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사이키델릭’한 밴드 사운드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트윈 훠리오의 통기타 사운드다. 앞쪽 사운드는 김인배가 ‘작편곡’했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뒤쪽 사운드는 김인배의 사운드라기보다는 그냥 트윈 훠리오의 사운드로 더 들린다. 단, 이색적인 것은 트윈 훠리오가 펄 시스터즈가 부른 “떠나야할 그 사람”이다. 스트링이 깔리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반주로 트윈 훠리오가 소울풀한 창법을 구사하여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특이하다. (이 곡은 ‘김인배 편곡’으로 되어 있지만, 신중현이 관여한 “푸른 사과”의 O.S.T. 버전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트윈 훠리오가 이런 식의 ‘연합 앨범’에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포크 사운드가 한대수가 조금 있다가 보여준 ‘자기토로’적인 사운드와 성질이 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대수 식의 ‘자기토로의 시학’을 일종의 포크의 작가주의 쯤으로 여길 때, 한대수는 직접적으로 밥 딜런의 자식이다. 그러나 트윈 훠리오는 그런 자기토로의 작가주의와는 일정하게 거리를 둔 듀오였다. 차라리 이들은 브라더스 포나 에벌리 브라더스 류의, 애조 띤 사랑 노래를 위주로 한 민요조의 포크 사운드에서 많은 것을 빌어 오고 있다. 만일 보다 철저한 작가주의가 이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었다면, 이런 식의 모음집에 안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그러니까 1970년대 중반 이후 포크와 록의 약간의 분화가 나타난다. 김영동, 김민기 등이 벌인 포크 운동의 한 가지는 ‘우리 노래 살리기’ 비슷한 데가 있었다. 그래서 로큰롤이나 번안 포크를 한 편으로는 지양하자는 태도가 나름으로 의미 있게 제기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이 앨범이 나온 1969년에는 아직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포크가 나름의 분기점을 찾기 이전이다. 또한 이 앨범은 당시 무교동에 있던 ‘세시봉’이라는 음악 감상실로 대표되던 대학생 문화와(여기서 활약하던 이상벽은 대학생 DJ로 이름을 떨쳤고, 트윈 훠리오의 윤형주는 연세대 의대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미8군 클럽에서 시작된 ‘나이트클럽 문화’가 어떤 식으로든 서로 결합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금은 어색한 동거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포크와 록이 기본적으로 ‘통기타 치다가 전기기타도 잡게 되는’,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의 연장선상에 있는 장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동거’가 보여주는 본질적인 어떤 것이 있다. 이 음반은 내가 보기에 ‘포크와 록’을 하는 사람들이 한 배를 저어가던 뮤지션이라는 걸 알려주는 증거의 하나로 보인다. 20021019 | 성기완 creole@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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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I Love You – 펄 시스터즈
2. 하얀 손수건 – 트윈 훠리오
3. 밤의 Melody – 펄 시스터즈
4. 욕망의 Blues – 펄 시스터즈
5. Blowin’ in The Wind – 트윈 훠리오
Side B
1. 당신은 떠나가고 – 박연숙
2. Lost Love – 트윈 훠리오
3. To Know Is To Love You – 트윈 훠리오
4. 세월은 흐르고 – 박연숙
5. Crying In The Rain – 트윈 훠리오
6. 비가 와도 – 트윈 훠리오
7. 떠나야 할 그 사람 – 트윈 훠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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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펄 시스터즈 바이오그래피(上)
http://www.hankooki.com/whan/200110/w20011024182905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펄 시스터즈 바이오그래피(下)
http://www.hankooki.com/whan/200111/w20011101112610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남성 포크듀오 ‘트윈폴리오’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25194836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송창식(上)
http://www.hankooki.com/whan/200201/w20020130192413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송창식(下)
http://www.hankooki.com/whan/200202/w20020206191038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