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그린 – 최신 앨범 Vol.1 사랑해요 당신을/동물농장(정성조 작편곡집) – 유니버살(KLS 14), 19710425 통기타 듀오, 록 편곡을 만나다 쉐그린은 이태원과 전언수로 구성된 듀오다. 통상 이들은 “동물농장”과 같은, 일명 ‘코믹 포크 송’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그룹 사운드’를 했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혹은 음악 매니아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것 같다. 이태원(리듬 기타)과 전언수(베이스)가 가담한 ‘더 셰그린’은 조동진(리드 기타), 황규현(보컬), 김철회(드럼)등, 후일에도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굵직한 인물들과 함께 미 8군 무대에서 비틀즈 스타일의 음악을 했다고 전해진다(특히 이태원은 오세은(영 바이블스)이나 이필원(미도파스)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는데, 이들을 포함해 이태원은 ‘엘레키’ 그룹 출신이 ‘통기타’ 포크로 전향(?)하는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후 1970년 초부터 이태원과 전언수가 듀엣으로 재출발한 것이 ‘쉐그린’인데, 그룹 사운드 시절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게 표기한 이름이 흥미롭다. ‘shagreen’라는 동일한 영어명을 쓰면서도 한글명을 달리 표기한 것은 당시 그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익숙함을 주면서도 그들의 전신이었던 그룹 사운드와는 차별적임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을까. 그룹의 한글 표기만 바꾼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1970년 11월 쉐그린과 김준의 ‘스플릿’ 음반에는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포크 넘버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최신 앨범 vol.1]에서는 단순하게 포크가 아닌 ‘록과 포크의 결합을 시도’하게 된다. 이때 어떤 부분이 ‘록’이라는 말일까. 분명한 것은 쉐그린이 그룹 사운드 출신이었다고 해도 이 음반이 그 시절(더 셰그린 시절)의 록 음악을 삽입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록’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우선 이 음반에 실린 열 곡 중 두 곡 정도를 제외하고 삽입된 드럼 비트 때문이다. 다시 말해 록 음악의 리듬을 전면에 부상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베이스 기타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는 통상적인 록 밴드의 사운드와도 다름을 말해준다. 12현 기타, 플루트를 비롯해, 현악기와 관악기 등의 다양한 악기가 삽입해 운용하는 것 역시 음악을 세련되게 만들어 주면서도 뭔가 수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악기들을 연주 혹은 편곡하고 곡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이는 음반의 부제가 말해주듯 정성조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재즈 연주자인 그가 록 음악에 손을 댔다는 말인가? 한 가지 단서는 그가 이후(대략 1972년경) ‘정성조와 메신저스’라는 일명 ‘브라스 록’을 연주했던 밴드에서 활동했다는 사실로부터 찾을 수 있다. 부언하면 재즈에 영향받은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한 점을 고려할 때, 그 직전의 시기에 록 음악의 편곡을 한 일이 이상하지는 않다. 또한, 재즈 음악인이면서도 이런 포크 혹은 포크 록 음악에 (그것도 기성의 전문 작편곡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그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이런 포크 록 관련 작업은 그에게 ‘부업’이자 ‘외출’ 정도가 되는 셈이다. 물론 그 시대가 요구한 사항도 있었다. 당시 1971-2년 경은 포크 음악이 주류로 부상하던 때였고 고로 젊은 음악인으로써 부업은 그러한 유행의 첨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했을지 모르겠다. 그는 1971년 봄 쉐그린의 본 음반을 발표한 후에도 그해 가을에는 김민기의 음반에서, 이듬해인 1972년에는 양희은의 음반 등 ‘문제작’들에서 연주를 도모한다. 그러나 이 두 음반에서는 작곡을 하지 않은 반면, 쉐그린의 이 음반에서는 작·편곡과 연주 모두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보인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그가 음악 프로듀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단행한 사례가 되는 것이다. 예상밖으로 이 음반에는 신중현의 곡이 두 트랙에 수록되어 있는데, 포크 음반으로는 낯설지 모르지만 당시 신중현이 여러 가수들을 통해 자신의 곡을 부르게 했던 빈번한 사례 중 하나였다고 볼 수도 있고, 정성조가 신중현과의 친분에 입각해 자연스럽게 그의 곡을 삽입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시 포크 씬 외부에서 포크 음악과 관계를 맺어온 두 인물, 신중현과 정성조가 우회적으로 만난 음반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정성조는 신중현의 곡 “봄비”와 “나뭇잎이 떨어져서”를 정성조식, 혹은 쉐그린식 노래로 바꿔놓았다. 특히 화성이 입혀진 목소리와 그 사이를 오가며 깔리는 사이키델릭한(?) 플루트의 수식이 인상적이며, 이따금 혼 섹션과 바이올린이 추가된다. 보컬 영역에서 볼 때 ‘소울·사이키 가요’에서 전형적이곤 했던 강한 바이브레이션이나 소울풀한 열창은 배제되어 있다. 이는 정성조가 작곡한 미드 템포의 “사랑해요 당신을”이나 다소 느린 “그리움”에도 해당된다. 먼저 첫 곡인 “사랑해요 당신을”을 들어 보자. 곡이 시작하자마자 들리는 여덟 마디의 챙챙거리는 기타 스트리밍 전주가 인상적인데, 리프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기억하기 쉬운 단순한 리듬으로 곡 분위기를 암시하는 효과를 주며 독특한 화성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곡 형식은 대강 여덟 마디씩 끊었을 때 ‘전주-A-B-C(브리지)’를 반복하는 형태인데, 크게 보아 A-B를 두 번씩 반복한 후 연결부로 C를 둔다. 플루트나 혼 섹션은 교대로 보컬과 함께 주선율을 연주하는데, B에서는 플루트가, C에서는 혼 섹션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스트링 섹션이 혼 섹션과 함께 연주되는 곡은 “그리움”인데, ‘못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이 곡은 A-A’-B-A'(역시 한 단위를 여덟 마디로 나누었을 때)를 반복하는 형식이 된다. 이 곡 역시 “사랑해요 당신을”처럼 B부터 관(현)악이 삽입되는데, B에서는 현악기들이 보컬 선율을 연주하며, A’에서는 처음엔 현악이, 다음에는 관악이 보컬 멜로디를 모방하며 빈 틈을 메워준다. 이 두 곡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개 정성조의 작품이 절과 후렴구를 반복하는 보통의 포크(혹은 찬송가)보다 더 다단한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통 쉐그린은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로 인식되었다. 그런 세간의 인식에 걸맞게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를 번안하여 불렀다. 편집음반 [71 킹 폭송 히트 앨범]에 창작곡이 아닌 이 두 번안곡을 수록한 사실을 봐도 이들에 대한 인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곡 모두 드럼 비트가 삽입된 포크 록 스타일이다. 조용한 노래를 선호한다고 했던 이태원의 취향이 반영된 듯한 곡은 플루트와 기타가 주도하는 “미련”, 3박자의 “별들의 이별(So Sad)”이 있고, 전언수적 분위기로 느껴지는 곡들은 ‘코믹 포크’ 송 계열의 “동물농장”과 “케세라 세라”가 있다. 1964년 아리랑 브라더스가 불렀던 노래를 리메이크한 “동물농장”의 경우 간단하게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한다. “케세라 세라” 역시 기타와 플롯의 단촐한 차림으로 도리스 데이(Doris Day)가 부른 것으로 유명한 “Que Sera, Sera”를 번안한 것이다. 이런 다양한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작편곡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편곡과 악기 사용이 일관된, 그리고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연출하는 몇 안 되는 ‘포크 록 음반’이 되었다. 그런데 쉐그린이 (작곡가 정성조의) 창작곡이 아닌, 사이먼 앤 가펑클 및 코믹 포크 송의 주자라는 측면이 더 강하게 부각되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포크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연관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정성조식(재즈적?) 터치의 창작곡 혹은 편곡 스타일이 이런 인식과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런 음악들이 결과적으로 포크도 재즈도 아닌 새로운(혹은 낯선) 영역의 음악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혹시 프로듀서 및 전문 연주자의 음악은 ‘프로페셔널’한데, 가수의 연주와 노래는 ‘아마추어’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던 것일까. 이상의 여러 간극들 때문인지 이와 같은 어법의 포크 록은 큰 대중적 반향을 일으킨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다양한 스타일의 포크 록을 창출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20021019 | 최지선 fust@dreamwiz.com 0/10 수록곡 Side A 1. 사랑해요 당신을 2. 그리움 3. 미련 4.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5.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 Side B 1. 동물농장 2. 별들의 이별(So Sad) 3. 나뭇잎이 떨어져서 4. 케세라 세라 5. 봄비 관련 글 그룹 사운드 출신들, ‘포크 싱어’들과 만나고 또 헤어지다(상): 1969-1972 – vol.4/no.20 [20021016] 포크의 ‘메신저’ 정성조와의 인터뷰 – vol.4/no.20 [20021016] 서유석 [선녀/나는 너를(신중현 작편곡집)] 리뷰 – vol.4/no.20 [20021016] 양희은 [당신의 꿈/나도 몰래(신중현 작편곡집)] 리뷰 – vol.4/no.20 [20021016] 한대수 [멀고 먼 길] 리뷰 – vol.4/no.20 [20021016] 양희은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 2집] 리뷰 – vol.4/no.20 [20021016] 김민기 [길 /아하 누가 그렇게] – vol.4/no.20 [20021016] 트윈 폴리오/펄 시스터즈 외 [아이 러브 유(I Love You)] 리뷰 – vol.4/no.20 [20021016] 관련 사이트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남성 포크듀오 쉐그린(上) http://www.hankooki.com/whan/200205/w20020516193122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남성 포크듀오 쉐그린(下) http://www.hankooki.com/whan/200205/w20020523113607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