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9095400-0420review_suhyuseok서유석 – 선녀/나는 너를(신중현 작편곡집) – 유니버어살(KLS 57), 1972

 

 

서유석과 ‘(신중현과) 더 맨(The Man)’

모던 포크와 싸이키델릭의 만남은 ‘본토’에선 자연스러웠을지 몰라도, 1970년대 초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그에 따르면 당시 ‘통기타/포크’와 ‘그룹 사운드/싸이키’가 서로 음악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성공적인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틀린 얘긴 아니지만, 그렇다고 둘 사이의 선을 긋는데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두 부류는 공연 무대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고 친밀한 교분도 쌓아나갔으니까. 이는 양자가 청년 음악문화의 주역이었던 걸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 기수들의 실질적인 음악적 돌연변이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서유석의 5집이자 ‘신중현 작편곡집’인 [선녀/나는 너를]은 예외적으로 다가오는 음반이다. 앞서 얘기했던 그 시절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겐 ‘올 것이 온 것’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상상하기 힘든 작업이(었으)니까.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포크라니…’하고 놀랄 사람들은 그가 처음 기타에 입문한 게 어쿠스틱 기타였고, 이후에도 종종 어쿠스틱 기타로 연습했으며, 양희은, 윤형주, 트윈 폴리오, 쉐그린, 조영남, 최영희 등에게 곡을 주었다는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1960년대 말 [푸른 사과] OST에서 포크 가수들과 작업한 바 있다는 사실도. 그래도 서유석의 ‘신중현 작품집’이 어색하다면, 같은 시기에 양희은의 ‘신중현 작품집’도 만들어졌다는 정보를 추가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신중현은 어떻게 포크 가수들에게 곡을 주고 레코딩을 하게 된 것일까. 오래 거론할 얘기는 아니지만, 이 대목에서 킹 레코드 사장인 킹박의 존재와 그의 수완을 상기할 수밖에 없다. 킹박은 1971년경부터 ‘왕성하게’ 포크 음반을 만들었고(양희은, 서유석 등의 정규 음반들), 앞서 얘기한 ‘신중현 작곡 / 포크 가수 노래’의 짝패는 모두 그가 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중현도 포크 가수와 작업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렇다면 서유석의 [선녀/나는 너를]을 듣기 전에 두 가지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포크와 싸이키델릭의 화학적 결합, 그리고 서유석의 비판적 사회의식의 반영 여부가 그것이다. 그런데 서유석의 [선녀/나는 너를]의 뒤 표지를 살펴보면 이 음반이 온전한 ‘신중현 작편곡집’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LP의 A면을 보면 신중현이 작편곡과 연주를 책임진 신중현 작편곡집이 맞지만, B면은 다른 작곡가의 곡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이는 양희은의 ‘신중현 작편곡집’ 음반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좀 당황스러울지 모르지만, 먼저 B면에 담긴 곡들을 보자. 서수남 작곡의 “사랑이란 무엇일까”와 “그대 가슴에 꽃을 달며”는 각각 3박자 왈츠와 4박자의 흥겨운 포크 넘버이고, 서유석의 자작곡인 “나들이”는 김민기 노래 중 흙 내음 나는 스타일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한편 “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면”과 “마지막 노래”는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내밀한 기타 연주와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노래가 여운을 남기는 포크 넘버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크레딧을 보면 ‘조동진 작사 작곡’이란 문구를 만나게 된다. 조동진 스타일이 이때 이미 무르익었다는 판단과 서유석과 조동진의 궁합이 썩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B면의 포크 사운드는 신중현이 관여한 A면에서 180도 달라진다. 우리가 알고 있고, 또 B면에서 확인한 서유석의 노래와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A면에서는 애초의 기대가 충족될까. 통기타의 단촐한 반주에 컬컬한 음색으로 “철날 때도 됐지”의 비판적 시각, “아름다운 사람”의 서정성, “타박네”와 “진주낭군”의 토속성을 소박하게 담아내는 서유석의 개성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음반 A면 첫 곡이자 이 음반의 대표곡인 “선녀”를 들어보면 명확해진다. 바이올린, 첼로 세션과 (신중현의 음악이론 스승인 이교숙의) 하프 연주가 범상치 않은 도입부는 곡 전체로 변주·확산되며 신비감을 자아낸다. 바이올린과 하프 소리가 천상에서 선녀가 비상하는 듯한 환영을 펼친다면, 첼로와 베이스 기타의 낮은 울림과 서유석의 보컬은 지상의 인간의 운명을 되새기는 듯하다. “선녀”의 알싸한 느낌은 특히 후반부 2분 여간 지속되는 후주(後奏) 부분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교숙의 하프는 끊임없이 고음과 저음을 몽환적으로 오가고, 스트링 세션과 이태현의 베이스 기타는 반복적으로 진행되며, 손학래의 오보에와 신중현의 와와 기타 연주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며 출렁이고, 서유석의 스캣은 구음처럼 섬뜩한 느낌을 주면서 소리의 공기를 가르며 난다. 퍼즈 기타도, ‘싸이키’ 풍 오르간 연주도 없지만 충분히 환각적이다. 단, 이때의 환각은 대마초를 피우며 무념의 저 세계로 넘어가는 즉흥 연주가 아니라, 계산적으로 배치되고 절제된 연주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곡이 ‘싸이키’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적이란 느낌을 받았다면 그 때문이다. 이어지는 곡 “허수아비”부터는 익숙한 ‘신중현식 소울 싸이키’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과하지 않은 소울/훵크 리듬에 ‘싸이키’ 풍 오르간, 스트링 세션, 오보에가 가미된 “허수아비”는 전형적이다. 하지만 이 곡 역시 느낌은 다소 다른데, 앞서 말했듯 환각적이면서도 잘 짜여져 있어 프로그레시브 록을 연상시킨다.

결과적으로 A면은 신중현이 작편곡한 곡을 더 맨이 반주하고, 서유석이 노래한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게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리드 보컬이자 음반의 간판이 서유석이란 포크 가수라는 점이 다를 뿐, 이는 마치 신중현이 김정미, 박인수 같은 신중현 사단 가수의 앨범을 만들어준 사례들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어쿠스틱 기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포크 성향의 곡도 찾기 힘들다. 장현의 목소리로 잘 알려진 “나는 너를”의 오리지날 버전은 오히려 장현 버전보다 덜 포크적이다. 따라서 A면은 서유석(포크)과 신중현(싸이키)의 전면적 결합이란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서유석이 이 음반을 만들면서 신중현과 갈등을 겪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A면에서 서유석의 개성은 보컬 외에는 신중현의 사운드에 묻혀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A면의 가장 상큼한 트랙이자 그나마 서유석의 색채가 묻어 나오는 노래일 “우리 사랑하네”는 묘한 느낌을 준다. 포크 편곡이었다면 분명 경쾌했을 이 곡은(특히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하는 서유석의 여흥구 부분은) 발랄하다기보다 기이한 느낌을 남긴다.

음반의 일관성이나 컨셉트를 중시한다면 이 음반의 A면과 B면의 이질적 구성은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다. 또 서유석과 신중현의 만남에서 ‘싸이키 포크’라는 새로운 음악적 전망을 기대했다면, 해답이 아니라 미제(未濟)의 아쉬움을 얻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킹박이 제작자로서 좀더 여유를 두고 ‘싸이키+포크’의 시너지를 기획하고 밀어붙이든지, 아니면 신중현이 좀더 적극적으로 ‘싸이키 포크’의 방향성을 가지고 작편곡과 연주를 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음반은 음악의 방향은 기대와 달라도 음악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신중현식 ‘소울 싸이키’는 서유석과 만나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지평을 열었고, 서유석은 한편으로 포크의 숨결에 깊이를 더하면서(조동진의 곡) 다른 한편으로 ‘소울 싸이키’의 새 숨결을 내면화했다(A면). 동기와 구성은 기묘하지만,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내뿜는 고갱이를 담고 있는 걸작 음반이다. 20021017 |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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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선녀
2. 허수아비
3. 우리 사랑하네
4. 나는 너를
5. 우리 마을에
Side B
1. 사랑이란 무엇일까
2. 나들이
3. 긴 다리 위에 석양이 걸릴 때면
4. 마지막 노래
5. 그대 가슴에 꽃을 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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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ooki.com/whan/200104/w20010410202116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서유석(下)
http://www.hankooki.com/whan/200104/w20010418182619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