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al Scream – Evil Heat – Sony, 2002 As Good As It Gets 아는 친구중에 1~2년 전부터 프로디지(Prodigy)의 신보를 애타게 기다리는 녀석이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보가 정작 발매되었을 때 그 친구는 무지하게 실망할 것 같다는 섣부른 예측을 해 본다. 이는 프로디지를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일렉트로니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몇몇 스타급 아티스트들의 근래의 결과물의 대다수가 ‘꽝’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는 ‘솜씨’ 면에서 여전히 대단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처럼 ‘놀라움’이라는 감정보다는 ‘여전함’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굳이 새로움에 대한 강박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언더월드(Underworld)나 오비탈(Orbital)의 경우는 더하다.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비록 별점 네 개를 준 장본인이지만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다만 몇몇 이들에게 이 음반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런 까닭에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의 신보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음악을 들어보니 의외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거 아닌가…… 사실 이들의 전작들은 묘하게 사람 기운 빼듯이 길게 늘이면서 몽롱하게 만드는 것이 특기였는데, 이번 앨범은 모든 트랙들이 정말 ‘정형적’인 곡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서 이들의 장점을 몽환적인 그루브라고 생각할 때 이건 자신들만의 장점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 게다가 바비 길레스피(Bobby Gillespie)에게 ‘당신 제발 보컬만은…… 하지 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번 음반이 좀 무리수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래도 정형적인 틀을 꼭 뜨악하게 볼 건 없다. 이들의 음악이 그렇다고 ‘구린’ 정도까지 나아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아니 어쩌면 본바탕이 구린 놈들이었을지도 모른다. [Screamadelica](1991)에서 환기되는 소울과 훵크, [Vanishing Point](1997)의 “Burning Wheel”의 기타 연주에서 연상되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Interstellar Overdrive” 같은 부분들은 원래부터 이들이 1960년대 리바이벌에 더 관심이 가 있던 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게 한다. [Give Out But Don’t Give Up](1994)에서는 아예 이들을 ‘루츠 록’으로 분류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니. 그러한 색안경을 쓰고 보면 이들의 모든 출발점은 1960~70년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마치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젼(Jon Spencer Blues Explosion)의 곡을 리믹스한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Rise”나,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가 참여한 “The Lord Is My Shotgun” 같은 곡들에서 흠씬 뿜어나오는 블루스 냄새는 원래 그렇다 치고라도, “Autobahn 66” 같이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나 노이(Neu) 같은 밴드를 연상시키는(기타 연주는 마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Low]나 [Heroes]에 참여했을 당시의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같은) 곡들에게 그러한 혐의를 뒤집어 씌울 수도 있다. 오마주의 방향이 명백한 “Detroit” 같은 곡도 분명 ‘과거’의 것에 기대고 있음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출발점이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곡들은 “Miss Lucifer”와 같은 강력한 일렉트로닉 록 넘버들일 것이다. 혹은 “City”, “Skull X” 같은 곡들에서 이들과 1980~90년대 영국 인디 음악과의 연관성을 유추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바비 길레스피가 최초로 참여한 밴드인 지저스 앤 메리 체인(Jesus & Mary Chain)의 짐 라이드(Jim Reid)가 여기 참여한 것이 유달리 눈에 띄는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음반의 크레딧에는 영국 인디 음악의 스펙트럼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의 게리 마운필드(Gary Mounfield)는 이미 고정 멤버가 된 지 오래이고, [Screamadelica]를 탄생시킨 실질적인 공로자로 불리는 앤드루 웨더롤(Andrew Weatherall)뿐만 아니라 전작 [Xtrmntr](2000)부터 관여해 오던 케빈 실즈(Kevin Shields)의 무게감은 ‘최소한 기본은 하는’ 음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약간의 고민이 생긴다. 전작의 “Pills” 같은 곡에서의 힙합적 요소의 적극적 도입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탓인지 이번 앨범에서 흑인음악적 요소는 눈에 띄게 사라졌는데, 동시에 게리 마운필드의 베이스라인으로 부각되던 훵키한 그루브감 역시도 정형적인 틀 안에 갇히게 된다. “City”의 케빈 실즈의 기타 연주를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시절의 [Loveless](1991)에서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약간의 실망감을 표하거나, 혹은 [Xtrmntr]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사운드가 나온 것에 대한 불만감을 표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즉 이 음반은 지극히 안전한(혹은 안이한) 선택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1990년대 중반에 대거 등장한 일렉트로니카의 스타급 인사들의 실망스러운 신작들과 비교해 보면 이들에게는 아직 에너지가 느껴진다. 혹은 다른 이들에 대한 실망감 탓에 역으로 ‘긍정적으로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족: 영화 [As Good As It Gets](1997)는 국내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으나, 미국에서 처음 개봉되었을 당시 국내 잡지들이 소개한 번역제목은 “그래도 이게 최선이야” 였다. 20021014 | 김성균 niuuy@unitel.co.kr 8/10 수록곡 1. Deep Hit of Morning Sun 2. Miss Lucifer 3. Autobahn 66 4. Detroit 5. Rise 6. The Lord Is My Shotgun 7. City 8. Some Velvet Morning 9. Skull X 10. A Skanner Darkly 관련 사이트 프라이멀 스크림 공식 사이트 http://www.primalscrea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