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6105057-def_xDef Leppard – X – Universal, 2002

 

 

한 노장밴드의 자기순례

1990년대 데프 레퍼드(Def Leppard)의 행보는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씬의 상황은 급박하게 그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고, 1980년대 ‘영광의 밴드’들은 어설픈 ‘시류에의 영합’ 아니면 ‘극단적인 형식에의 집착’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그런 1990년대 초반에 발매한 데프 레퍼드의 정규 5집 앨범 [Adrenalize](1992)는 우려와는 달리 또 한 번 거대한 성공을 밴드에게 선사했다. 그러나 하락의 조짐은 [Retro Active](1993)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발매한 베스트 앨범 [Vault: Def Leppard’s Greatest Hits]는 예상과는 달리 플래티넘(100만장 판매)을 기록하는데 만족해야 했으며, 이러한 ‘몰락의 예감’ 속에 발매된 [Slang](1996)은 새로운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시도가 그리 성공적으로 나타나지 못한 졸작이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꽤 길었던 공백을 뒤로하고 발표한 [Euphoria](1999)는 이런 고난의 1990년대를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는(혹은 1980년대 팝의 희미한 부활 조짐에 고무돼서인지), ‘과거로의 회귀’를 표방한 앨범이었다. 하지만 밴드의 골수 팬들이야 이 음반에 어떤 환호를 보냈건 간에, 어느덧 데프 레퍼드라는 밴드 자체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X](2002)을 처음 들으면서, 이 의미심장한 음반명과 앨범의 사운드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으리란 억측이 생겼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일단, 앨범의 타이틀인 ‘X'(ten)은 이 음반이 밴드의 10번째 앨범이란 의미이다. 이는 정규음반이 아니었던 [Retro Active]나 [Vault: Def Leppard’s Greatest Hits]까지 포함해서 10번째란 얘기가 되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앨범과 편집 음반마저 이렇게 리스트에 수록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 드러머가 사고로 팔이 잘려나갔을 때도 재기할 때까지 기다려줬었지’ 하는 새삼스런 덕담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쨌든 [X]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밴드의 역사를 관통하는 사운드의 다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강도 높은 팝 질감’이라고 하겠다.

앨범의 첫 곡이자 첫 싱글인 “Now”는 이들의 골수 팬들이 반색할 만한 전성기 시절 데프 레퍼드의 사운드를 들려주고, 이런 분위기는 “You’re So Beautiful”과 “Four Letter Word”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실망스러웠던 [Slang]의 사이키델릭 성향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점도 한 번쯤 살펴볼 만하다(“Everyday”, “Torn To Shreds”).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팝 질감에 묻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사운드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 점이 있다면 “Cry”에서 느껴지는 이전과는 다른 간결한 방식의 연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트윈 기타 체제에서 나온 곡치고는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팝적인 사운드가 나온 이유를 들자면 새로운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기용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겠는데, “Unbelievable”은 백 스트리트 보이스(Back Street Boys)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t Spears)의 프로듀서였던 맥스 마틴(Max Martin)과의 공동 작곡이고, “Long Long Way To Go”에는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프로듀서인 웨인 헥터(Wayne Hector)가 참여했다고 한다(그 외에도 ‘Now’, ‘You’re So Beautiful’, ‘Everyday’는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Just Push Play](2001)를 작업했던 마티 프레드릭슨(Marti Frederiksen)과의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팝 프로듀서들의 참여로 인한 사운드의 전반적인 ‘팝송화’가 데프 레퍼드의 변화 조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이름들이 데프 레퍼드의 음악을 젊어 보이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간간이 들리는 힙합 비트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통해), [X]은 1990년대 데프 레퍼드가 발표했던 그 어떤 앨범들보다도 이전의 데프 레퍼드와 닮아있다(혹은 1990년대의 모습까지 포함해서). 새로운 조력자들이 그 유명세를 생각하기에 앞서, 얼마나 ‘도식적인’ 팝송을 만들어왔는가 생각해 보면, 밴드의 의도가 ‘새로움’보다는 ‘안정적인’ 사운드를 뽑아내는데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된다.

확실히 [X]의 사운드는 표면적으로 가벼워지고 세련돼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한 사운드의 포장 안에는 20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굳어진, 어쩔 수 없는 ‘데프 레퍼드 표’ 사운드가 들어있다. 그리고 여기에 혁신이나 발전이란 말을 붙일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되올라가기 시작했고, 바로 이 점에 조그만 ‘성숙’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제 겨우 40대일 뿐인 이들이 이렇듯 벌써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씬의 급박함에 원망이 생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데프 레퍼드는 더 이상 ‘유행의 최전방’에 놓일 수 없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익숙한 사운드를 통해 아직 자신들을 잊지 않아 준 팬들과 소통해 나가려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절대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감동적’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20021012 | 김태서 uralalah@paran.com

6/10

수록곡
1. Now
2. Unbelievable
3. You’re So Beautiful
4. Everyday
5. Long Long Way To Go
6. Four Letter Word
7. Torn To Shreds
8. Love Don’t Lie
9. Gravity
10. Cry
11. Girl Like You
12. Let Me Be The One
13. Scar
14. Kiss The Day

관련 사이트
Official Def Leppard Homepage
http://www.defleppar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