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힙합의 제 목소리 찾기 (1) 여성 힙합,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흑인 여성 힙합을 이 짧은 지면에 모두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국내에서는 지금껏 여성 힙합 전반에 대한 소개나 진지한 문제제기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덕분에 스스로 힙하퍼라 칭하는 이들 조차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단지 주류 시장의 ‘마초’ 남성 래퍼들의 구색 맞추기 정도로 간주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여성 힙합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여성 힙합에 대한 제대로 된 개괄적인 소개와 진지한 논의가 절실해 보인다. 하지만 해야될 얘기들이 너무 많기에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이다. 주류 시장과 언더그라운드 씬을 활보하는 당대의 무수한 힙합 여걸들에 대해 장광설을 해댈 수는 없을 것이고, 하물며 힙합이 태동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20여 년에 걸친 연대기를 단번에 풀어놓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 글은 미국의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이 음악적 실천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주류 미디어를 비롯한 미국 사회의 지배 담론에 대응해 온 방식들을 간략하지만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미국 여성 힙합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선입견은, 미국 내 주류 사회와 문화 산업의 흑인 여성 힙합에 대한 지배적 담론을 고스란히 따른 것이다. 당연히 미국 여성 힙합에 대한 논의는 간략하나마 이러한 지배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함께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프로 아메리칸’으로서 처하게 되는 인종주의, ‘여성’으로서 겪는 성차별, 그리고 ‘하층 계급’ 출신으로서 겪어온 경제적 억압에 대해, 대부분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음악적 실천에 기초한 다양한 층위의 전략들을 통해 적응하거나 맞서게 된다. 특히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이면서 동시에 빈민 출신의 여성이라는 ‘삼중고’에 기반한 독특한 정체성은, 그들이 필연적으로 주류 미디어나 문화산업의 편견, 무지, 억압과 맞대응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사회 문화적, 정치 경제적 편견에 맞서는 열렬한 ‘여성 전사’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이는 단지 그들을 남성 중심의 힙합 공동체의 성적 도구로 묘사하는 것 못지 않게 극단적이며 위험하다. 사실 그들과 동료 아프로 아메리칸 남성 힙합 뮤지션들의 역설적인 관계, 그리고 백인 여성 중심의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그들의 미묘한 대응은,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과 그들 음악의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일면적으로 재단하기에 앞서, 그들이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통해 미국 주류 사회의 지배 담론과 구조적 불평등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여러 가지 전략들을 제대로 살펴보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 힙합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 여성 힙합의 힙합 공동체 내에서의 새로운 역할, 나아가 보다 큰 문화 정치적 가능성들을 타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1. 여성 힙합 vs. 남성 힙합 미국 주류 사회의 지배 담론에 의해 규정되는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의 극단적 형태로 나뉘어진다. 이는 국내 힙합 팬들이 지닌 여성 힙합 뮤지션들에 대한 이미지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첫 번째는, 미디어나 문화산업이 일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성차별주의(sexism)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전사’로 포장하고 마케팅하는 경우다. 물론 지난 20여 년간 상당수의 여성 래퍼들이 남성 중심의 힙합 시장에서 랩 가사 뿐 아니라 다양한 연계 활동을 통해 여성의 주체적 권력과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 래퍼들의 이러한 ‘안티 섹시스트(anti-sexist)’적인 면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남성 래퍼들을 성차별주의자(sexist)로 단일하게 재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주류 미디어에서 이렇게 여성 래퍼들과 남성 래퍼들을 일종의 상반되고 적대적인 관계로 묘사하면서, 결국 랩과 힙합의 ‘성 정치(sexual politics)’가 지닌 복합적이고 때론 모순적인 측면들은 필연적으로 간과하게 된다.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서던 랩 혹은 ‘섹스 랩’의 제왕 2 Live Crew 남성 래퍼를 섹시스트로 그리고 여성 래퍼를 페미니스트로 단순 규정하는 주류 담론에 대한 반증들은 미국 힙합의 지난 역사에서 쉽게 발견된다. 성차별주의에 맞서는 대표적인 여성 래퍼로 평가받아온 엠씨 라이트(MC Lyte), 퀸 라티파(Queen Latifah), 시스터 술자(Sister Souljah), 요요(Yo Yo) 등이 의외로 섹시스트 남성 래퍼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자제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을 전후한 시기, 투 라이브 크루(2 Live Crew)를 비롯한 서던 래퍼(Southern rapper)들의 여성 차별적인 랩과 원색적인 공연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전사로 평가받던 대부분 여성 래퍼들은 이들 남성 래퍼에 대해 주류 미디어를 통한 비판을 거부했었다. 사실 흑인 여성의 주체적 권위 확보를 위해 노력했던 그들은 분명 서던 랩의 선정성과 공격성에 대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주류 미디어와 지배 담론의 섹시스트 흑인 래퍼들에 대한 비판이 필연적으로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 일반을 공격하고 비하하는 인종주의로 연결되는 과정 또한 알고 있었다. 남성 흑인 래퍼들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이 지배 담론 속에서 재해석되고 재단되는 과정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있는 여성 래퍼들이 동료 남성 뮤지션들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를 삼갔던 것은 물론이다. 성 차별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인종적 동료일 수밖에 없는 남성 래퍼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흑인 여성 래퍼들의 고민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음악에서도 표현되듯이,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다양한 모순적 방식으로 사회 문화적 맥락에 따라 흑인 남성 래퍼들을 때론 비판하지만 때론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A Tribe Called Quest – Description Of A Fool |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s Of Rhythm (1990) 역으로, 흑인 남성 래퍼 모두가 성 차별주의자는 아니라는 점도 간단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여성의 권익을 강조하는 곡들로 호응을 얻고 있는 당대의 탈리브 퀠리(Talib Kweli) 같은 뮤지션 뿐 아니라, 심지어 투 라이브 크루를 중심으로 노골적인 성 표현과 여성 비하가 득세하던 시기에도 이미 상당수의 남성 힙합 뮤지션들이 이를 비판하고 급진적 흑인 여성 운동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나 드 라 소울(De La Soul) 같은 이들은 진보적인 여성 래퍼들과 다양한 연계 활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당시 주류 랩의 ‘마초’나 ‘핌프(pimp)’ 감성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곡들을 흔쾌히 연주했다. 가령 드 라 소울의 “Mille Pulled A Pistol On Santa”,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의 “Description Of A Fool”, “Date Rape” 같은 곡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닥터 드레(Dr. Dre)와 NWA의 남성 우월주의를 통렬하게 까발렸던 팀 독(Tim Dog)의 “Fuck Compton”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2. “힙합은 남성의 전유물이다?” 미국 사회의 지배 담론에서 강조되는 흑인 여성 힙합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는, 힙합 혹은 랩을 흑인 남성의 전유물로 가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이 경우 흑인 여성 힙합 뮤지션은 힙합 공동체에서 철저히 주변적 존재이거나 기껏해야 성적 상품화를 위한 대상에 불과하게 된다. 이는 페미니스트 여성 전사에 대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것으로, 주류 미디어의 여성 힙합 뮤지션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묘사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담론에 따르면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안티-페미니스트(anti-feminist)’적인 태도를 취해야하며, 결국 마초 남성 뮤지션들에게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여성 힙합에 대한 일방적 무시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남성 힙합 뮤지션들에 비해 현재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수적으로 절대 열세이다. 그나마도 주류 시장의 스타급 여성 뮤지션들은 대부분 몇몇 남성 중심 패거리에 기생하고 있다. 더욱이 모든 남성 래퍼들이 섹시스트가 아닌 것처럼 여성 래퍼들 역시 모두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오히려 직접적인 페미니스트의 태도를 취하는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을 남성의 전유물로 가정하는 것은 힙합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지속되어온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노고와 역할을 철저히 평가 절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낸시 게바라(Nancy Guevara)는 힙합 초창기인 1970년대 중, 후반에 이미 아프로 아메리칸과 라티노 여성들이 래퍼로서 그리고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브레이크 댄서로서 뉴욕 힙합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자신의 1996년 논문에서 설명하고 있다. 가령 1978년에 이미 레이디 비(Lady B)는 여성 래퍼로서 최초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힙합이 음악 산업의 대형 상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여성을 힙합에서 배제하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미디어와 문화산업은 1980년대 초반 1세대 힙합 스타들을 배출하던 시기에 이미 힙합을 대도시 게토 청년의 독점적인 문화인양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Salt-N-Pepa의 기념비적 데뷔앨범 [Hot, Cool And Vicious] (1986) 덕분에 한동안 힙합 공동체로부터 소외를 받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드디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음반 산업의 새로운 전략이든 아니든 간에, 특히 솔트앤페파(Salt-N-Peppa)의 데뷔앨범 [Hot, Cool And Vicious](1986)가 더블 플래티넘 음반이 되면서 여성 래퍼들의 메이저 음반시장 진출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미즈 멜로디(Ms. Melodie), 엠씨 레이디 디(MC Lady “D”) 등이 솔트앤페파의 뒤를 이을 즈음, 올드 스쿨의 또 다른 여걸 엠씨 라이트의 싱글 음반 “Paper Thin”(1988)은 라디오 방송 없이도 발매 후 6개월만에 12만 5천장을 팔아치우며 여성 래퍼들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뒤이어 솔트앤페파의 1990년 앨범 [Blacks’ Magic]의 첫 번째 싱글 “Expressions”가 발매 일주일만에 골드를 획득하면서 새로운 세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을 위한 물꼬를 완전히 텄다.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흑인 남성의 일방적 지배를 거부하고, 평등한 남녀관계와 흑인 여성의 목소리를 강조하는 노래들을 주로 발표하였다. 1990년대 이후 활약해온 힙합 여걸들의 이름은 아마 대부분의 힙합 팬들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폭시 브라운(Foxy Brown), 릴 킴(Lil’ Kim), 이브(Eve), 로린 힐(Lauryn Hill),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 같은 이들은 현재 미국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확고한 슈퍼스타들이다. 어디 그들뿐인가. 바하마디아(Bahamadia), 프린세스 슈퍼스타(Princess Superstar), 미스틱(Mystic) 같은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실력파 여성들 또한 점차 세를 넓히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이름은, 지배 담론의 지속적인 무시와 무지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힙합 공동체 내에서 그들의 은근한 비중과 역할을 암시한다. 3. ‘그녀들’의 목소리 그렇다면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음악과 랩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가? 사실, 앞서 언급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힙합 공동체 내에서의 적잖은 비중을 인정한다해도, 그들의 음악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제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의 여성 힙합 뮤지션들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비록 로린 힐이나 미스틱이 흑인 여성의 주체적 목소리를 대변할지언정, 폭시 브라운과 릴 킴부터 이브에 이르는 주류 시장의 흑인 여성 래퍼 대부분은 우리의 편견을 더욱 깊게 할뿐이다. 즉 그들이 남성 마초 래퍼들의 곁다리거나 노골적으로 포장된 성적 상품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면, 실제 흑인 여성 래퍼들이 무엇을 노래하며 그 노래들은 자신들의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 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 특히 랩 음악을 곰곰이 따지고 듣는다면 내용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분모로서 특정한 정치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그것이 노골적인 성에 대한 표현이든, 여성의 구체적인 사회 문화적 실천에 관한 얘기든 이 모든 것은 결국 ‘성 정치(sexual politics)’ 혹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투쟁의 문제로 해석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흑인 남성 래퍼들의 가사가 대부분 경찰에 대한 비판부터 흑인 정체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종 정치(racial politics)’의 문제와 연관된다고 본다면, 이러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대조적인 관심은 자못 흥미롭다. 결국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랩은 본인들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그리고 다양한 태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남녀간의 권력 배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게 된다. 때론 보다 적극적으로 성 권력 관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적 실천이 흑인 남성 힙합 뮤지션들과 적대적 위치 혹은 종속적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주장 혹은 문제제기가 오히려 힙합 뮤지션을 포함한 흑인 남성들과의 동등한 대화 과정을 매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1)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여성 힙합 뮤지션의 랩에서 가장 빈번한 소재이자 주제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남녀관계’다. 이때 여성 래퍼들은 자신의 노래 속에서 남성과의 이성애적 관계를 표현하는 여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다. 혹시 힙합 공동체의 남녀관계가 일방적이고 불평등할 뿐이라고 막연히 전제한다면, 아마 여성 래퍼들은 자신의 노래를 통해 주로 남성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하거나 혹은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 종속된 여성의 모습만을 보여줄 거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녀관계를 다루는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노래는 대부분 이러한 편견을 거부한다. 사실 (아프로 아메리칸) 흑인 여성 다수가 처한 복합적인 사회, 경제적 환경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남성에 대한 태도와 관계 맺기에 반영된다. 인종적 불평등과 열악한 경제적 현실에 맞서야 하는 그들의 생존전략은 마초적인 동료 남성들을 대하는 모습에도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이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여성 힙합 뮤지션의 랩이 흑인 여성의 현실에 대한 표본 구실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남녀관계를 다루는 대부분의 랩 속에는 묘한 긴장들이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동료 흑인 남성들의 마초적 행동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인종적 불평등을 공유하는 공동체 동료로서 그들에 대한 신뢰가 공존한다. 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파렴치한 언행과 통제에 상처받지만, 동시에 이를 피하고 완화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혜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남성을 유혹하는 특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 남성의 경제적 특권에 맞서는 전술을 취하기도 한다. Salt-N-Pepa – Tramp | Hot, Cold & VIcious (1988) 초기 힙합 클래식 중 하나인 엠씨 라이트의 “Paper Thin”이나 솔트앤페파의 “Tramp” 같은 곡은 남녀관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는 대표적인 사례다. 엠씨 라이트가 자신의 남자 친구의 진실하지 못하고 “백짓장처럼 얇은” 사랑을 통렬한 비판한다면, 솔트앤페파는 아내를 속여가며 여성들을 유혹하는 한심한 남성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물론 이 두 노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네네 체리(Neneh Cherry)의 “Buffalo Stance”, 마니 러브(Monie Love)의 “It’s A Shame”, 아이스 크림 티(Ice Cream Tee)의 “All Wrong” 등도 앞의 두 노래에 충분히 견줄만하다. 심지어 경제적 부를 앞세워 여성들을 갖고 놀려는 남성들을 교묘히 역이용하는 노래들도 있다. 아이스 제이(Ice Jay)의 “It’s A Girl Thang”, 니키 디(Nikki D)의 “Up The Ante For The Party” 등의 노래에서 표현된, 경제적 불평등에 기반한 일방적 남녀관계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여성 랩의 중요한 경향 중 하나다. 결국 상당수 여성 힙합 뮤지션들은 남녀관계를 다루면서 남성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연약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길 원하지 않는다. 대신, 가능하다면, 남녀관계를 여성 입장에서 이해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하고 젊은 흑인 여성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을 위해 전진하도록 강권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러한 곡들이 단지 남성에 대한 여성의 불평과 불만을 표현한 정도에 머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정당하고 직접적인 남성에 대한 비판으로 대접받기 보다, 단지 불평 가득한 ‘앙탈’로 의미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남성에 대한 공격과 비판만이 능사는 아니다. 최소한의 사적인 불만과 문제제기까지도 장차 성 권력관계의 전환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권력관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적이고 주관적인 경험 기술 뿐 아니라, 흑인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적 실천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 남성 (뮤지션들)과 직접적인 경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1980년대 후반 록산느 샨테(Roxanne Shante)의 “Roxanne’s Revenge”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곡은 표면적으로는 동료 여성을 비꼬아 크게 히트했던 U.T.F.O.의 곡 “Roxanne, Roxanne”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지만, 동시에 흑인 남성이 지배하던 힙합 공동체 나아가 게토 거리에서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계속) 20021001 | 양재영 cocto@hotmail.com * 참고 문헌 Guevara, Nancy. 1996. “Women Writin’ Rappin’ Breakin’,” in Droppin’ Science: Critical Essays on Rap Music and Hip Hop Culture, W. E. Perkins (ed.).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관련 글 Ain’t Nuthin’ But A She Thang: 여성 힙합의 제 목소리 찾기 (2) – vol.4/no.21 [20021101] Roxanne Shante [Greatest Hits] 리뷰 – vol.4/no.20 [20021016] MC Lyte [Lyte As A Rock] 리뷰 – vol.4/no.20 [20021016] Queen Latifah [All Hail The Queen] 리뷰 – vol.4/no.20 [20021016] Yo Yo [Make Way For The Motherlode] 리뷰 – vol.4/no.20 [20021016] Da Brat [Funkdafied] 리뷰 – vol.4/no.20 [20021016] Lil’ Kim [Hard Core] 리뷰 – vol.4/no.21 [20021101] Foxy Brown [Ill Na Na] 리뷰 – vol.4/no.21 [20021101] Eve [Ruff Ryders’ First Lady] 리뷰 – vol.4/no.21 [20021101] Bahamadia [BB Queen] 리뷰 – vol.4/no.21 [20021101] Mystic [Cuts For Luck and Scars For Freedom] 리뷰 – vol.4/no.21 [20021101] Lauryn Hill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리뷰 – vol.3/no.18 [20010916] Missy “Misdemeanour” Elliott [Supa Dupa Fly] 리뷰 – vo.3/no.18 [20010916] Missy “Misdemeanour” Elliott [Miss E… So Addictive] 리뷰 – vo.3/no.13 [20010701] Eve [Scorpion] 리뷰 – vol.3/no.10 [20010516] Hip Hop in New York, New York in Hip Hop – vol.1/no.3 [1999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