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화이브 – Merry Christmas 사이키데릭 사운드 – 유니버어살(THL80), 1969 히 화이브 – Merry Christmas 사이키데릭 사운드 김홍탁(리드 기타), 한웅(세컨드 기타/보컬), 조용남(베이스, 보컬), 유영춘(보컬), 김용호(드럼) [Merry Christmas 사이키데릭 사운드](1969)는 대체로 희귀판 대접을 받는 한국 록 관련 LP 중에서도 ‘초특급’으로 대접받는다. 150만원에 거래되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다. 이유는 아무래도 이 음반이 연말연시를 맞아 정해진 기간 중에 반짝 대목을 노리고 발매된 ‘기획 상품’이라, 정규 음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량으로 찍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을 아무나 쉽게 낼 수 없는 상황을 볼 때(대체로 인기 스타들의 전유물이거나 여러 아티스트들의 합작품인 경우가 허다하다), 당시 히 화이브의 인기랄까 위상이 얼마나 상당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비록 그 발매 목적이 ‘뻔한’ 음반이지만, 그렇다고 이 음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는 곤란하다. 막상 음반을 들으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때면 흘러나오는 뻔한 노래들이 ‘싸이키델릭’하면서도 ‘하드’한 록 사운드로 완벽하게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뮤지션 자신의 스타일이 손상받지 않으면서 캐롤의 분위기도 흥겹게 재현되는 경우는 감히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A Christmas Gift For You](1963)에 비유하고 싶어질 정도다. 음반 전체는 드럼, 베이스, 기타의 합주 위에서 김홍탁이 투명한 톤의 기타로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파티 록’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끼’를 참지 못하고 분출하는 순간이 있다. “붉은 코 순록”에서 퍼즈와 디스토션이 섞인 기타 솔로가 그 발단을 이루더니, 드디어 “징글 벨”에서는 절정을 이룬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간판격인 이 노래가 12분 20여초의 대곡으로 둔갑한 이유는 곡 중반부부터 돌연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의 “In-A-Gadda-Da-Vida”의 무거운 리프를 중심으로 한 즉흥 연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곡에서 등장하는 김용호의 긴 시간 동안의 육중한 드럼 솔로는, 지금까지 한국 록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일거에 날릴 만큼 충격적이다. 아마도 크리스마스 캐롤과 헤비 싸이키델릭 록이 이런 식으로 조우하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아울러 이 음반의 특성은 원작 노래들의 대부분이 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보컬이 없는 연주곡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이다(“징글 벨” 후반부에서 샤우트 창법의 스캣이 잠시 나오기는 한다). 이는 캐롤곡이 아닌 창작곡 “메아리”(김희갑 곡)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밴드에 리드 보컬 유영춘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고, 한웅도 만만찮은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등 히 화이브가 ‘보컬 그룹’으로서의 면모가 각별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특이한 점이다. 그렇지만 이 점은 히 화이브의 이름으로 발표된 다른 음반들과 구분되는 특징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름 아니라 히 화이브의 다른 음반들은 김인배, 김희갑, 정민섭 등 직업적 작편곡가들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고, 그 결과 밴드의 색깔이 다소 숨겨졌던 반면 이 음반만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즉, 별도의 지휘자 없이 밴드 스스로 라이브로 연주한 것이고, 장소만 생음악 살롱에서 레코딩 스튜디오로 옮겨졌을 뿐이다.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강하게 영향받은 하드 록을 주로 연주했다’는 소문과는 달리 음반에서는 팝과 소울의 다채로운 스타일의 연주한 것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사람도 이들이 무대에서 어떤 음악을 연주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왜 하필 크리스마스 음반에서 이런 사운드를 선보인 것일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에게는 ‘당시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유일하게 야간 통행금지가 없었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날밤 까고 놀았다’고 설명해 줄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Merry Christmas 사이키데릭 사운드]는 어떠한 상황과 여건에서도 오랜 연주생활로 다져진 재능있는 그룹의 존재감은 쉽게 사그러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기능할 것이다. 20021006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0/10 P.S. 이 음반의 커버는 두 종(혹은 그 이상)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설악산이 그려진 커버는 196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의 초청을 받아 수학여행에 동행하여 연주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1학년에 재학중이던 김민기도 있었는데, 그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히 화이브는 히트곡 “초원”은 물론 연주했지만 그 외에는 “In-A-Gadda-Da-Vida”를 비롯하여 ‘센 것’들을 연주했고 “그 당시 히 화이브는 정말 대단한 존재였다”다고 한다. 단, ‘사석’에서의 대화 중에 나온 말이다. 수록곡 Side A 1. 고요한 밤(Silent Night) 2.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3. 산타 크로스가 오신다(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 4. 메아리 5. 크리스마스 종(Silver Bells) Side B 1. 붉은 코 순록(Red Nose Reindeer) 2. 징글 벨(Jingle Bell) 3. 송년가(Auld Lang Syne) 관련 글 소울 앤 싸이키 폭발: 한국 그룹사운드의 잊혀진 황금기의 시작 1969-71 (下) – vol.4/no.19 [20021001] 한국 록의 거장 신중현 인터뷰 – vol.4/no.19 [20021001] 히 식스 [초원의 사랑/프라우드 메리] – vol.4/no.19 [20021001] 히 식스 [물새의 노래/초원의 빛] – vol.4/no.19 [20021001] 신중현과 퀘션스 [신중현의 In-A-Kadda-Da-Vida] – vol.4/no.19 [20021001] 데블스 [추억의 길/연인의 속삭임] – vol.4/no.19 [20021001]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춤을] – vol.4/no.19 [20021001] 키 브라더스 [GoGo춤을 춥시다/별이 빛나는 밤에] – vol.4/no.19 [20021001] 키 브라더스 [목이 메여(정기선 편곡집)] – vol.4/no.19 [20021001] 골든 그레입스 [즐거운 고고 파티(신중현 사운드 3)] – vol.4/no.19 [20021001] 록 기타리스트의 선구자 김홍탁과의 대화 – vol.4/no.18 [20020916] 양미란/히 화이브 [양미란과 히 화이브의 Soul Sound(정민섭 작곡집)] 리뷰 – vol.4/no.18 [20020916] 히 화이브/쥰 시스터즈 [Hey Jude / Come Back(김인배 편곡집)] 리뷰 – vol.4/no.18 [20020916] 히 화이브/이승재 [그 언제일까/눈동자] 리뷰 – vol.4/no.18 [20020916] 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HE 5·HE 6(上)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12130917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HE 5·HE 6(下)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19201904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