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8125202-0419he_6_vol1히 식스 – 초원의 사랑/프라우드 메리 – 그랜드레코드(코스모스 시리즈), 1970

 

 

히 식스 – 초원의 사랑/프라우드 메리 – 그랜드레코드(코스모스 시리즈), 1970

멤버: 김홍탁(리드 기타), 조용남 (베이스, 보컬), 이영덕(리드 보컬, 피아노), 김용중(1st 기타, 보컬), 권용남(드럼), 유상윤(오르간, 플룻, 섹소폰)

히 식스(He 6)는 히 화이브(He 5)에서 멤버가 한 명 추가된 그룹이 아니라 (전기) 키 보이스부터 발전적으로 진화를 이룬 그룹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이같은 ‘발전적 진화’에서 히 식스라는 단계는 기타 연주자이자 그룹의 리더인 김홍탁의 음악적 경력의 절정을 이룬다. 히 화이브의 주축이었던 한웅과 유영춘이 그룹을 탈퇴한 뒤 그룹의 멤버를 보강한 히 식스는 온전히 김홍탁의 음악 세계를 구현하는 밴드가 될 수 있었다. 키 보이스 시절에는 비틀스(The Beatles)의 영향을 받은 1960년대 초중반의 팝을, 히 화이브 시절에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로부터 영향받아 강력하고 에너지 넘치는 록 사운드를 시도했던 김홍탁은 히 식스 시절에는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의 영향을 추가하고 그 외 다양한 영향을 흡수하여 연주인으로서 완숙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울러 그는 ‘한국적인 것’과 ‘서양의’ 록 사운드의 유기적인 결합도 동시에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히 식스는 생음악 살롱을 풍미했던 (영미) 록 음악의 커버곡과 더불어 한국인이라면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창작곡으로 최고의 인기그룹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히 식스 제1집 – 초원의 사랑/프라우드 메리]는 히 식스의 본질, 즉 생음악 ‘살롱’의 인기 그룹임과 동시에 ‘한국적 록’을 고민하는 아티스트의 의식이 드러난 음반이다. A면은 창작곡으로, B면은 리메이크/커버(또는 번안곡)로 채워진 구성이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B면의 커버곡들은 당시 라이브 무대에서 곧잘 연주했던 레퍼토리들로 채워졌다. 커버곡들의 범위는 상당히 폭이 넓어, C.C.R, 산타나(Santana) 등 1970년대 초의 영미에서 인기있던 록 밴드들의 곡은 물론, 뮤지컬 [헤어(Hair)]의 수록곡인 “Aquarius(Let the Sun Shine)”, 그리고 “Na Na Hey Hey Kiss Him Goodbye” 같은 인기 팝송 등이 망라되어 있다. 비록 커버곡들이지만, 연주력과 해석력은 상당히 탁월하여 오리지널과 비교해도 수준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물론 히 식스의 기량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사례지만, 또한 그 당시 그룹사운드들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 음반이 이전과 비해 발전한 점은 창작곡과 한국 구전민요로 이루어진 A면이다. 이 곡들은 록 음악이 ‘외제(外製)’라는 인식이 강할 때 ‘국산(國産)’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나아가 편견 없이 듣는다면 ‘국산품을 애용하고’ 싶은 마음도 들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든 곡들이다. 단조의 “초원의 사랑”은 히 화이브 시절의 “초원”과 히 식스의 5집에 수록될 “초원의 빛” 사이에 있는 이른바 ‘초원 시리즈’의 하나로서 유토피아에 대한 아스라한 갈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에 젖어있던 당시 대중음악계에서 이렇게 자연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곡에 대해 ‘1970년대 초에 발표되어 전후(戰後) 세대의 순수한 감정을 표현함과 동시에 대중음악의 전반적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데 기여한 곡들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는데 굳이 토를 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이 곡을 듣고 현악기의 편곡 등이 절충적이고 타협적이었다고 느끼는 까다로운 평자라면? 그런 사람이라도 다음 곡인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을 듣고는 만족할 것이다. 첫째 마디는 D와 C, 둘째 마디는 C와 B , 셋째 마디는 G와 F로 이루어진 리프가 나오다가 노래가 시작되면서 G 장조로 시작되는 구성은 ‘한국 록의 역사가 제대로 계승되었다면 가장 인상적인 인트로(전주)로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또한 주 선율에 (단) 7도 음정(F 음)이 사용되는 것은 지금도 인기가요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파격이며, 와와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기타의 배킹도 흥미롭다. 물론 ‘보컬 그룹’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보컬의 하모니가 매우 뛰어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히 식스가 록 그룹이면서도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리듬감이 강하면서 때로 ‘하드’하고 ‘헤비’한 사운드를 구사하면서도 이런 곡들에서 드러나는 (요즘 말로) ‘팝 감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곡을 반복해서 들으면 1970년대 후반에 등장한 어지간한 ‘캠퍼스 그룹 사운드’들의 노래와 연주는 시시하게 들릴 정도다.

이렇게 멜로디(및 화성)은 팝(혹은 가요)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연주는 록의 이디엄에 충실하다는 특징은 “울릉도 타령”과 “황성옛터”처럼 전통민요와 재래가요를 새롭게 편곡한 노래들에도 적용된다. ‘우리 것’을 록 사운드로 벼려내는 시도에 어설프다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특히 이 두 곡들 모두에서 김홍탁의 강렬하게 타오르는 감각적인 기타 솔로 연주는 대단한 감흥을 안겨준다. 당시 비슷한 실험을 하고 있던 신중현을 의식했던 것일까. 어쨌든 후일에 감상한다면 김홍탁과 히 식스의 연주는 신중현에 비해 ‘토속적’이고 진한 면은 덜하지만 그 대신 세련되고 화려하고 도회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히 식스 제1집 – 초원의 사랑/프라우드 메리]는 1970년대 초반 한국 그룹 사운드의 백화만방의 결정적 증거를 제공해주는 작품이다. 아런 평은 아마도 이 음반이 레코딩 과정에서 그룹이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 레코딩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 절정기가 3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책임과 이유가 누구에게 있든 간에. 20021007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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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Side A
1. 초원의 사랑
2.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3. 울릉도 타령
4. 무정한 사람
5. 황성옛터

Side B
1. 프라우드 메리
2. 그에게 이별의 키스를
3. 기분이 좋아
4. 어큐리스 렏더 선샤인 인
5. 이블 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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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HE 5·HE 6(上)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12130917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HE 5·HE 6(下)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19201904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