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07062049-0419keybrothers_gogo키 브라더스 – GoGo춤을 춥시다/별이 빛나는 밤에 – 유니버어살(KLS 12), 1971

 

 

록의 감성과 라틴 그루브로 일궈낸 그룹사운드 전성시대의 한 정점

1970년대를 맞아 오리지날 멤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키 보이스(Key Boys)가 “바닷가의 추억”과 “해변으로 가요”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주류 밴드로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키 보이스의 오리지날 멤버들은 어떤 상태였을까. 키 보이스를 탈퇴한 후 김홍탁은 1960년대 후반부터 히 파이브(He 5)의 리더로서 밴드를 이끌었고 1970년의 초입에는 6인조 히 식스(He 6)로 체제를 정비하여 음악적인 면에서나 인기 면에서 모두 최고의 그룹사운드 활동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끼가 넘치던 키 보이스 출신의 드러머 윤항기는? 그는 키 보이스 탈퇴 후, 키 보이스가 미8군 무대에 설 때의 밴드명이던 락앤키(Lock & Key)란 이름을 그대로 딴 공연단을 만들어 월남 위문공연을 나서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월남에서 돌아온 후, 윤항기는 (후기)키 보이스와 김홍탁의 활약에 자극받은 듯 1970년 말 새로운 그룹사운드를 조직한다. 이름은 키 브라더스(Key Brothers).

히 파이브/히 식스란 새로운 이름으로 키 보이스란 명칭과 ‘상징적으로’ 절연한 김홍탁과 달리, 윤항기는 자신이 결성한 밴드를 락앤키(월남 위문공연단), 키 브라더스로 연이어 이름지음으로써 외관상으로든 아니든 키 보이스 시절의 후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것은 마치 오리지날 멤버가 하나도 없는 후기 키 보이스에 대해 정통성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그런 정황은 키 브라더스의 데뷔 앨범인 [GoGo춤을 춥시다 /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음반 커버에도 드러난다. 초판 커버에는 키 브라더스란 밴드명이 들어갈 자리에 ‘키보이스 특선집’, ‘락앤키보이스’란 이름이 대신하고 있다(키 보이스란 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감안한 음반사의 얄팍한 전략 때문이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GoGo춤을 춥시다 / 별이 빛나는 밤에] 음반 커버에서 키 보이스의 상업적 가치에 기댄 문구만을 본다면, 나무에 집중한 나머지 숲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비단 이 음반이 인기를 끌면서 재판을 찍을 때 문제의 그 문구 역시 자연스럽게 ‘키 브라더스’란 본래 이름으로 대체되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문구 대체는 이미 음반에 담긴 사진들에 예견되어 있기 때문이다. 커버 사진의 배경이 된 오리엔탈 호텔의 닐바나는 당시 최고의 고고클럽이었는데, 동그랗고 조그만 사진들이 보여주듯 키 브라더스는 음반 발매 이전에 이미 분방한 연주와 스테이지 매너로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앞 뒤 커버에 실린 사진 중 두 컷은 모두 정장차림에 머리에 넥타이를 두른 모습과 사물(四物)을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검붉은 톤의 커버 사진이 당시 싸이키 조명 아래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그룹사운드와 그에 맞춰 플로어를 가득 메우며 춤추거나 술 마시는 청년들로 뜨거웠던 고고클럽의 모습을 생생히 담은 중요한 문화적 기록이라는 걸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새삼스러운 언급일 것이다.

일반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단 다섯 곡만을 담고 있는 이 음반에서 네 곡이 커버곡(한 곡은 번안곡)인데, “커피 한잔”, “봄비”, “님은 먼 곳에”는 신중현의 (그때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곡을 커버한 경우이고, “고고춤을 춥시다”는 산타나(Santana)의 곡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번안곡을 만들어 연주한 경우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봄비”, “님은 먼 곳에”처럼 느린 템포와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은 곡들과 달리, “커피 한잔”과 “고고춤을 춥시다”는 앞서 말한 고고클럽의 열기와 키 브라더스의 활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트랙들이다. “봄비”와 “님은 먼 곳에” 커버 버전이 한두 부분의 인상적인 부분을 제외하곤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무난하고 진득한 연주인 반면, “커피 한잔”과 “고고춤을 춥시다”는 싸이키델릭 록과 산타나 식 라틴 그루브가 활력 넘치게 결합된 뛰어난 연주이다. 그 두 곡은 아예 ‘닐바나 실황 녹음’을 담은 게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편곡이 이채롭고 즉흥적인 접근법도 뛰어나다. 오리지날 곡들이 원래 템포가 있는 곡이니까 별 거 있겠냐는 예상은 매우 섣부른 것이다.

“커피 한잔”은 다른 어떤 버전들과 비교해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데, 노래가 나오지 않는 중반부와 후반부의 연주가 들려주는 작렬하는 드럼 및 퍼커션과 단말마적인 여흥구에 가까운 보컬은 충격적이다. 이 곡에서 ‘여기가 아니라 그 곳의’ 토속적인 느낌과 라틴 리듬을 느꼈다면, 기타 악보집에 나오는 ‘고고 리듬’이란 말은 무시해도 좋다. “커피 한잔”이 노래보다 오리지날을 압도하는 편곡과 연주로 놀라움을 준다면, B면을 여는 번안곡 “고고춤을 춥시다”는 그 강도를 더한다. 앞서 산타나의 영향이 이례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고고춤을 춥시다”의 원곡이 바로 산타나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1969)에 수록된 “Evil Ways”와 탑 40 싱글 “Jingo”이기 때문이다. “Evil Ways”로 시작해서 “Jingo”를 거쳐 다시 “Evil Ways”로 마무리되는 10여분의 긴 시간동안 키 브라더스는 신들린 듯 연주한다. “커피 한잔”과 마찬가지로 노래보다는 연주 위주의 곡인데, 2분 여부터 일정한 리프가 반복되는 가운데 즉흥적인 맛을 살려 진행되는 연주는 산타나의 원본에 비추어 손색이 없다. 특히 5분 여부터 흘러나오는 신민요 “처녀총각”(“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은 민요와의 실험적인 결합 운운하는 걸 부끄럽게 만들만큼 자연스럽다. 라틴의 그루브와 미국의 록이 교배된 원곡은 기왕의 키 브라더스 식 연주에다 민요와 서양음악의 혼종인 신민요와 다시 한번 섞이면서 경탄스런 ‘이본(異本)’으로 거듭난다.

20021007062049-0419keybrothers_gogo_2사진은 음반 뒷 커버에 있는 것으로 이들의 재기발랄한 공연 모습을 보여준다.

라이브의 질감이 살아 있는 이런 곡들은 당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고고클럽의 ‘싸이키’ 열기와 라틴 록(과 브라스 록)의 열기가 대단했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물론 당시 그런 열기에서 떨어져 있던 사람이라도 키 브라더스는 인기 그룹사운드의 반열에 올랐는데, 그 이유는 물론 히트곡 “별이 빛나는 밤에” 때문이었다. 윤항기의 감미로운 저음의 노래와 어쿠스틱 기타가 밀애를 나누듯 주고받으며 잔잔하게 흐르는 인트로와 앞부분은 당시 여타의 이지 리스닝 스타일(그때 말로 ‘팝 계열’)의 곡들과 비교해도 출중하며, 이어 출렁이는 키보드와 색서폰과 드럼이 가세하면서 나오는 ‘이제는 유성처럼 사라져버린 별밤의 사랑(의 맹세)’를 그린 중후반부는 낭만적이고 절절하다. A-B-B’-C-B로 진행되는 노래 형식 자체보다는 전반적으로 서서히 감정이 고양되어 마지막에 절정에 이르는 점증적인 곡 구조가 관습적이지만 익숙한 호소력을 준다. 이 곡으로 키 브라더스는 고고클럽을 넘어서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획득하게 되었고, 드럼을 쳤던 키 보이스 시절과 달리 리드 보컬이자 리더를 맡은 윤항기는 ‘키 보이스 출신’이란 이력과 ‘윤복희의 오빠’라는 후광에 기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음반은 1970년대 들어서 새로운(그리고 강력한) 트렌드로서 급격히 부상한 고고클럽과 고고춤의 청년 음악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낸 시사적인 스냅사진첩이자, 윤항기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의 존재를 비로소 제대로 알린 작품이다. 창작곡은 한 곡에 불과하지만 (외국곡 커버 역시 하나로 제한하고 신중현의 곡을 3곡 커버하면서) 한국화한 싸이키델릭과 라틴 록과 소울의 숨결을 잘 담아낸 수작이다. 요컨대, 그룹사운드의 르네상스 시대,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20020827 | 이용우 garuda_in_tho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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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1. 윤항기의 허스키한 음색은 히 식스의 최헌의 음색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윤항기가 한참 선배이지만, 그 당시 허스키한 음색에 있어서만은 용호상박이었을 듯하다.
2. 이 음반은 신중현의 곡이 3개 삽입되었는데 신중현의 관여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채롭다. 대개 ‘신중현 작편곡집’의 형태를 띄거나(또는 띄고) 신중현이 직접 편곡과 연주를 담당한 경우가 일반적이었던 데 비해, 이 음반은 신중현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는 이 음반이 ‘윤항기 작편곡집’이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의 과감한 편곡은 윤항기의 뚝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수록곡
Side A
1. 별이 빛나는 밤에
2. 커피 한잔
3. 봄비
Side B
1. 고고춤을 춥시다
2. 님은 먼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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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추억의 LP 여행: 키 브라더스
http://www.hankooki.com/whan/200108/w20010803113956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