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29021513-yoon곤충소년윤키 – Old Habits – Slowseoul, 2002

 

 

이 리뷰는 실패한 리뷰다

사실 이런 음악에 대해 쓰는 건 두렵기조차 하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일렉트로니카라고 할텐데(맞는 말인지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런 건 ‘분석(또는 비평)을 거부하는 음악’이라 생각하고 싶다. 분석을 불허하는 음악을 리뷰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하나? 이럴 땐 이른바 ‘정성일 문체’를 구사하는 수밖에 없다(절대 나쁜 뜻은 아님에 유의 바란다). 하지만 나는 정성일보다는 강한섭이나 김영진 쪽을 지향하고 있다고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에, 영 이 음반에 대해 끄적거리기가 불편해진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예전에 [weiv]에 올라간, 곤충소년(/스님)윤키의 다른 음반에 대한 리뷰들을 체크해 본다. 하지만 역시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평소에 ‘객관적’인 평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리뷰어 두 분 모두, 전례 없이 ‘주관적’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인용’이 두드러지는 게 특징이기도 하다. 어떤 리뷰에서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또 한 리뷰에서는 스즈키 세이준(鈴木淸順)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또한 이 두 인물이 문화사에 있어서 기묘한 독창성에 있어 선두를 달리는 분들인 것으로 보아, 윤키 또한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수는 있다. 비록 마르셸 뒤샹이 추구한 ‘레디메이드(ready-made)’의 개념이나, 스즈키 세이준이 설파한 “낙오자들은 사회를 향해 독을 내뿜는다”는 명제를 윤키의 음악에 곧이곧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지 의심은 조금 들지만. 어떤 비평의 대상을 두고 다른 분야의 개념을 끌어오게 만드는 상황은, 개인적으로 달갑지 않다. 그건 텍스트 내부의 ‘완결성’ 면에서 실패하고 만 것이라는 걸(또는 평자가 완결성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물론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의 ‘대화 이론’을 들이대며 이런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곤충소년윤키의 새 음반 [Old Habits](2002)에 대한 이야기가 채 나오기도 전에 벌써부터 글이 관념적으로 흐르는 것으로 보아, 정신을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음반은 윤키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설명’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이다. 윤키의 전작들이 ‘키치 정신’을 바탕으로 각종 사운드 꼴라주(특히 염불이나 TV 외화 더빙)를 무차별적으로 구사했는데 비해, [Old Habits]는 비교적 ‘연주’에 충실한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윤키의 ‘보컬’도 있다. 그게 비록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흥얼거림에 지나지 않더라도. 음악 스타일도 레게, 보싸 노바, 폴카 등 주로 ‘춤곡’을 추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가볍게 몸을 흔들기는 좋다. 사용 악기 또한 멜로디카, 크로마 하프, 리코더, 일렉트론 오르간 등 ‘어쿠스틱’한 면이 두드러진다. 마치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에어(Air)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음악 스타일이나 악기들을 써먹었다고 해서, 윤키의 노래가 ‘자연스럽게’ 들리지는 않는다. 부자연스럽고 인공적인 면은 여전하다. 이는 단지 지난 음반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윤키가 할 수 없이 택한 방법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테크닉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윤키 음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의식, 즉 ‘의미없음’ 또는 ‘무의식의 흐름’의 무작위적 표현은 여전히 일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관된 작품 세계를 추구해나가는 윤키를 ‘작가’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아마 그렇게 칭해도 좋을 것이다. 이럴 때면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흔히 갖다대는 비평적 잣대, 즉 “이 음악은 세계적 수준인가”를 다시 한번 들이밀어야 한다. 이 음반은 ‘세계 수준’인가? 흠, 그런 것 같다. 이 음반을 들으며 영미의 유수한 뮤지션이 연상되어 떠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독창성’과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한국적’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이 음반의 보컬이나 부클릿에 적힌 언어를 보면 온통 외국어이고, ‘한국인의 정서’를 느낄 여지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재 윤키가 캐나다에 이민 가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 하나, “이 음반은 음악적으로 성공작인가, 실패작인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에서 그만 막히고 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weiv] 리뷰의 중요 요소인 ‘별점’은 주지 않을 수 없기에, 평소 ‘가장 무난하다’고 여기는 7점을 매겨본다. 리뷰에 빠져서는 안될 핵심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실패했으므로, 이 글은 결과적으로 쓰잘데기 없는 리뷰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이 글을 쓴 리뷰어의 무능력과 무책임함과도 연관이 깊다. 이 글을 읽고 웨이버들이 윤키의 음반을 살 의미를 잃어버렸다 해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하긴, 이 음반은 파는 곳도 몇 군데 없다. 20020922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7/10

수록곡
1. Golden Mean Man
2. Slowly We Rot
3. Ray Barbee Practicing Taekwondo
4. My Missile
5. Home Coming Bastard (Original)
6. Riverside Boys
7. Graveyard Of Pizzas
8. Clockwork Sun Vomits
9. Yoga With A Corpse
10. B-Boy Plays Chess (Windmill On The Chess Board)
11. Water Proof Knee
12. Miami Dolphins Anthem
13. Rooftop Of The Month Awards
14. Home Coming Bastard (Live At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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