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20120451-0418he5_leeseungjae히 파이브/이승재 – 그 언제일까/눈동자 – 킹/유니버어살(K APPLE 가 14), 1970

 

 

김희갑의 ‘소울 가요’, 히 화이브의 싸이키델릭 사운드와 만나다

게이트 폴드(Gate Fold)라는 형태의 음반 자켓에는 앞 뒤로 히 화이브와 이승재의 모습이 실려있고, 음반 자켓을 열면 작곡자며 곡명, 가사 그리고, 작은 사진들이 몇 장 실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면의 히 화이브가 담긴 크고 작은 두 장의 사진 사이로 ‘쏠 싸이키데릭 싸운드’란 글씨가 보이고, 뒷면의 이승재 사진 위에는 붉은 바탕에 검은 글씨의 한자로 쓰인 ‘김희갑 작곡집’이 눈에 띈다.

이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은 이승재가 부른 “눈동자”다. “그날밤 이슬이 맺힌 / 눈동자, 그 눈동자…”로 시작하는 이 곡은 당시 목소리의 음색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별하기 힘들다는 평을 들으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곡이다. 이 곡을 통해 미 8군 무대의 밴드마스터이자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직업적 작곡가로 변신한 작곡가 김희갑은 히 화이브의 연주를 통해 자신이 길러낸 가수 이승재를 스타덤에 올리는데 성공한다.

한편 창작곡에 대한 열망으로 키 보이스를 떠나,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던 연주자들을 선발해 결성된 히 화이브로 자리를 옮긴 김홍탁은 이 음반을 통해 김희갑과 조우하며 비로소 마음껏 창작곡을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정민섭 작곡 “초원”의 히트로 이미 번안곡을 주로 하는 밴드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긴 했지만 그의 열망처럼 창작곡을 노래하고 연주하는 히 화이브라는 이미지를 남기기엔 전작들에서 창작곡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많은 창작곡을 연주했다고 해서, 이 음반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희갑의 곡이 비슷한 시기에 다른 그룹이 연주한 것(트리퍼스의 [트리퍼스 고고](1971)에는 “메아리”와 “그 언제일까”가 실려있다)과 비교해서 이 음반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히 화이브의 연주력, 다양한 보컬의 색채와 하모니 때문이다. 이는 어쿠스틱 기타의 청명한 울림과 보컬의 하모니가 잘 어우러진 비틀즈 풍의 팝 “메아리”에서부터, 이승재가 노래한 “눈동자”나 “그 마음” 등의 곡에서조차 느껴진다. 뒤에 송대관(!)이 불러 히트한 “정 주고 내가 우네”도 ‘트로트같은 멜로디를 트로트같지 않게’ 연주해 내고 있다.

하지만 ‘라이브 무대에서는 하드 록을 주로 연주했다’는 히 화이브의 실체는 여전히 가려져 있다. 물론 실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앞면의 2번째 수록곡 “꿈꾸는 사랑”이다. 퍼즈가 잔뜩 걸린 불길한 기타 솔로를 비집고 드럼의 둔탁한 사운드가 전주를 마무리지으면 한웅의 힘찬 목소리가 등장한다. “초원”에서 나직이 노래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뒤에 영 사운드의 보컬로 자리를 옮겨 갈 유영춘의 팝 컬러의 목소리가 등장하며, 멜로디와 하모니를 서로 바꾸어가며 노래한다. 다른 트랙에서 간주부의 솔로를 차지하던 현악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볼 때, 음악적 주도권을 밴드 내부로 옮겨 자신들의 진정한 실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음반을 통해 김희갑은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히 화이브를 배경으로 자신의 곡들을 대중적으로 빛나게 하는데 성공했으며, 김홍탁은 창작곡에 대한 열망을 해소함과 동시에 히 식스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 여정의 한 부분을 원만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음반의 부재인 ‘쏠 싸이키데릭 싸운드’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걸 더 파고 드는 골치아픈 일은 뒤로 미루고 일단은 ‘이승재의 소울풀한 창법과 히 화이브의 싸이키델릭한 기타 사운드의 결합’ 정도로 이해해 두자. 20020919 | 신효동 terror87@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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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음반을 마지막으로 히 화이브는 잠깐의 공백기를 갖고, 히 식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 구구한 추측이 있을 수 있겠으나, 표면적인 해산의 이유는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던 한웅의 갑작스런 미국 이민이었다. 당시 언론은 히 화이브의 해산이 몰고 올 진통을 트윈 폴리오(윤형주.송창식)의 의 해산과 비교하면서 전하고 있다.

수록곡
Side A
1. 그 언제일까 – He 5
2. 꿈꾸는 사람 – He 5
3. 메아리 – He 5
4. 정 주고 내가 우네 – He 5
5. 가고 싶은 고향 – He 5
6. Walk A Way(떠나주오) – 태원·리나 박
Side B
1 눈동자 – 이승재
2. 그 마음 – 이승재
3. 명동길 – 이승재
4. 사랑이 운다 – 이승재
5. 상처 – 이승재
6. Let It Be Me(오직 나만을 사랑해주) – 태원·리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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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HE 5·HE 6 바이오그래피(上)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12130917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HE 5·HE 6 바이오그래피(下)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05193036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