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란/히 화이브 – 양미란과 히 화이브의 Soul Sound(정민섭 작곡집) – 신세계(가 12255), 1970(초판은 1968년) 소울 가요. 가수-작곡가-그룹의 3위 일체의 공식 히 화이브(He 5)는 1968~9년 당시의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 – 김홍탁(기타, 키 보이스 출신), 한웅(리듬 기타, 여가수 장세정의 아들이고 포 가이스 출신), 김용호(드럼, 이 씨스터즈 멤버의 동생), 유영춘(보컬, 실버 코인스 출신), 조용남(베이스, 신중현과 조커스 출신)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슈퍼 그룹’이었다. 이들 모두 미8군 무대에서 빅 밴드나 패키지 쇼에서 연주자로서 경력을 쌓아 왔으며, 뛰어난 연주력을 가진 멤버들로 구성된 그룹을 만들고 싶어했다. 깁슨 기타(!)를 선물로 주면서 키 보이스 출신의 김홍탁을 스카웃한 것이 ‘다섯 사내들’ 탄생의 마지막 수순이었다. 나중에 합류한 김홍탁은 다른 멤버보다 연배나 경력이 많아서 밴드의 리더가 되었다. 이 앨범은 이제까지 알려진 것들 중 히 화이브의 최초의 레코딩으로 간주된다. 물론 이 앨범은 그룹의 독집이 아니며 앨범의 초점도 히 화이브보다는 (나머지 절반인) 양미란에게 맞추어져 있다. ‘경음악’을 제외한다면 양미란이 부른 곡이 히 화이브보다 많다. 음반 제목이 ‘록’이나 ‘싸이키델릭’이 아니라 ‘Soul Sound’인 것도 시사적이다. 이 음반에서 히 화이브의 사운드는 그리 강하지 않아서 ‘하드 록을 주로 연주했다’는 일반적인 평과도 조금 거리가 있다. 이런 여러 점을 고려해 볼 때 히 화이브가 ‘신예 인기 그룹’이었다고는 해도 가수, 작곡가, 연주인 사이에 묘한 위계 질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즉, 음반의 실질적 주인공은 히 화이브도, 양미란도 아니고 ‘작편곡자’인 정민섭이다. 물론 히 화이브는 이런 세력관계 속에서도 음반에 자기 색채를 드러낸다. (참고로 양미란과 정민섭은 부부가 되는데, 양미란은 이미 고인이다) 양미란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펄 시스터즈 못지 않게 멋지고 세련된 노래를 들려준다. 특히 첫 곡 “달콤하고 상냥하게”와 “짝사랑” 등에서 10대 소녀처럼 애교 있게 ‘그 이와의 사랑을 조르는’ 부분은 “그때 여러 남자들 홀렸겠다”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반면 “눈물의 기도”, “파란 장미” 등은 성인층을 무시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느린 템포의 곡이다. 한편 “꿈”은 ‘트위스트로부터 소울로의 이행’을 잘 보여주는 댄스곡이다. 음반 [양미란과 히 화이브의 Soul Sound(정민섭 작곡집)]의 뒷면 커버 하지만 보다 주목되는 것은 양미란의 노래보다는 블루지하고 무거운 톤의 기타를 중심으로 연주한 ‘록’ 사운드다. 히 화이브의 연주에서는 당시 다른 그룹에 없는 파워가 느껴진다. 이는 첫 트랙인 “달콤하고 상냥하게”의 ‘반주’에서도 드러난다. 퍼즈 톤의 기타 리프는 비슷한 시기 (후기) 키 보이스가 발표한 “해변으로 가요”의 전주보다는 덜 캐치(catchy)하지만 들을수록 깊은 맛을 느끼게 해 준다. 히 화이브의 진가는 ‘경음악'(‘연주곡’ 혹은 ‘기악곡’을 지칭하는 당시 용어)에서 드러난다. 특히 “흑점”에서 중반 이후 와와 이펙트를 이용한 장엄한 솔로, 그리고 “당신의 뜻이라면”에서 셔플 리듬 위에서 진행되는 기타 라인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그런데 노래를 반주할 때는 물론 ‘경음악’에서도 그룹 사운드와는 이질적인 편곡이 들어 있다. “흑점”에서는 현악의 편곡이, “당신의 뜻이라면”에서는 관악의 편곡이 들어 있다. ‘혁신’과 ‘관습’이 공존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히 화이브가 노래하고 연주한 곡들 대부분은 아직도 번안곡이다. 이 중에는 “외로운 태양” 같은 업 템포의 로킹(rocking)한 넘버도 있지만 “지금 어디에”, “사랑의 천사” 등은 부드럽고 달콤한 팝이고, 이런 정민섭의 ‘취향’은 그의 창작곡인 “초원”으로 이어진다. “초원”은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한웅의 매력적 보컬과 알싸한(?) 멜로디를 통해 히 화이브를 대표하는 곡으로 부상했다. 히 식스 시절까지 포함한다면 “초원의 사랑”, “초원의 빛”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초원 시리즈’의 출발을 이루는 곡이다. 결론적으로 당대의 신예 작곡가, 가수, 연주자(그룹)가 잘 만나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편곡자인 정민섭의 색채가 ‘록 그룹’ 히 화이브의 색깔을 가리고 있지만, 그걸 전부 가리지 못한다는 것도 드러난다. 이렇게 한국의 록 음악의 사료(史料)들은 완전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고 부분적으로 가리워지고 감추어진 채만 남아 있다. 아예 전부 가리워져 있다면 차라리 속이 편할 텐데 말이다. 20020909 | 송창훈 anarevol@nownuri.net 0/10 수록곡 Side A 1. 달콤하고 상냥하게 – 양미란 2. 짝사랑 – 양미란 3. 지금 어디에(Love Me Tender) – 히 화이브 4. 외로운 태양(영화 [태양은 외로워] 주제곡) – 히 화이브 5. 눈물의 기도 – 양미란 6. 흑점(경음악) Side B 7. 초원 – 히 화이브 8. 사랑의 천사(My Special Angel) – 히 화이브 9. 누굴 믿고 살란 말입니까(What Am I Living For) – 양미란 10. 파란 장미(영화 [가방은 든 여인] 주제곡) – 양미란 11. 꿈 – 양미란 12. 당신의 뜻이라면(경음악) 관련 글 소울 앤 싸이키 폭발: 한국 그룹사운드의 잊혀진 황금기의 시작 1969-71 (上) – vol.4/no.19 [20021001] 록 기타리스트의 선구자 김홍탁과의 대화 – vol.4/no.18 [20020916] 펄 시스터즈 [펄 시스터 특선집(님아/커피 한잔)] 리뷰 – vol.4/no.18 [20020916] 이정화(덩키스) [싫어/봄비] 리뷰 – vol.4/no.18 [20020916] 김추자 [늦기 전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리뷰 – vol.4/no.18 [20020916] 퀘션스 [여보세요_그대는 바보(신중현 작편곡집)] 리뷰 – vol.4/no.18 [20020916] 히 화이브/쥰 시스터즈 [Hey Jude / Come Back(김인배 편곡집)] 리뷰 – vol.4/no.18 [20020916] 히 화이브/이승재 [그 언제일까/눈동자] 리뷰 – vol.4/no.18 [20020916] 키 보이스 [Key Boys’ Soul & Psychedelic Sound] 리뷰 – vol.4/no.16 [20020816] 키 보이스 [보칼 No.1 키 보이스 특선 2집] 리뷰 – vol.4/no.16 [20020816] 관련 사이트 코너 뮤직: 한국 록과 포크 음악 사이트 http://www.conermusic.com 한국 록 음반 연구회 http://cafe.daum.net/add4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HE 5·HE 6 바이오그래피(上)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1213091761510.htm [주간한국] 최규성 기자의 HE 5·HE 6 바이오그래피(下) http://www.hankooki.com/whan/200107/w20010705193036615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