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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형이 나한테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 앞에서 자기만 아는 밴드 이름을 주억거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형이 알아들을 만한 밴드를 이야기하느라고 고심했다.

“어…. (어물어물) 비틀스라고 할까….”
“비틀즈? 나도 들어봤는데. ‘Yesterday(어제)’가 제일 좋은 노래 아냐?”

난 한 마디도 못 했다. 만약 내가 “Because(왜냐면)”나 “While My Guitar Gentle Weeps(내 기타가 신사적으로 울 때)” 같은 것을 들이대었다면 형은 상당히 머쓱해 할 것 같았다. 문화권력이 어쩌구 하지 않아도 술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아는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어대는 – 음악 매니아들이여, 반성하라! – 작태를 무척 혐오하던 터다.

어쨌거나 하루끼의 소설 [상실의 시대] 이후로 문학에서부터, 록이건, 팝이건, 만화건, 뭐건 간에 문화적 취향은 자아의 감성에 있어서 동족확인을 위한 꼬리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몇 번씩 읽는 녀석이라면 내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니가 비틀즈의 어떤 넘버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나와 이야기가 될 만한 녀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형은 나와 혈족을 공유하면서도 동종에 속하는 인물은 아닌 모양이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록이라는 것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내 또래의 인간들은 거의가 본조비(Bon Jovi)를 들었고, 그 다음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로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서울에서는 너바나(Nirvana)의 얼터너티브가 유행한 모양인데, 지방은 좀 늦은 편이었다. 좌우간 메탈리카(Metallica) 이후부터는 어떤 기타리스트가 가장 빠르다는 소리를 지껄이며 더 파워있고 더 속도감있고, 더 장대한 음악을 찾아다니는 수순이었다. 나는 여기에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로 좀 삐끗했다. 대학 들어와서 그만 얼터너티브에 물들었다. 그리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만 통기타를 배워버린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좀 더 소프트한 것, 좀 더 소박한 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 비틀스를 재발견해버렸다. 지금도 생각하노니, 음악을 단지 귀가 아니라 손으로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아름다운 멜로디나 리프, 혹은 코드진행을 따라 쳐보았을 때 자기 손끝에서 퍼져나가는 울림이라니! 비틀즈 뿐 아니라 카펜터즈(Carpenters), 비치 보이스(Beach Boys) 같은 것들도 재발견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단, 우리 형은 김광석이나 들국화 류는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대학 동아리 방에서 기타를 퉁기며 ‘긴 하루 지나 저 언덕 저편에~ ‘하고 악을 쓰다가는 “어때, 이 노래 좋지?”하고 묻곤 하는 것이다. “왜 저 사람은 비틀스나 카펜터즈는 좋아할 수 없는 거지?” 의아해진다.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심연이라도 놓여 있는 걸까? 한국 포크와 외국 팝 사이에는? 생각해보니, 대학에서 한국 포크는 민중가요의 곁가지로 전수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민중가요 노래책을 뒤적이며 코드를 따라쳐보며 통기타를 배웠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에 나는 팝에 빠지면서 민중가요를, 그 기능적인 요소를 인정하되 내 심미세계로부터 암묵적으로 추방해버렸다. 하지만 형은 그 세계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형의 유일한 음악적 양식으로 정착했다. 그것이 우리 둘의 꼬리표가 달라진 이유다.

…..그리고 형에게 알려지면 심히 민망하고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 있다. 나는 책과 인터넷의 평론들을 읽으며, 그 담론들의 영향을 받으며 내 취향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조직화하고, 변화시켜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비정상적인 것은 나다. 물론 내가 뭘 잘못한 것은 아니다. 취향이라는 것이 그렇게 순수한 영역은 아니잖는가. 그렇더라도…… “너는 역시 음악 하나 듣는데도 담론의 눈치를 살피는, 소심하고 나약한 지식인 나부랑이에 불과해.” 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국의 음악담론이 선호하는 취향을 따라 나의 취향도 변화한 것 같다. 그래, 나는 본래부터 이런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내가 취할 수 있는 비평이나 정보들을 취합해서, 뒤늦게 문화자본을 쌓아온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 대해서 남몰래 자부심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이는 결코 자랑은 아니다. 형에게 “Yesterday(어제)”를 뺀 ‘비틀스’나 “Pale Blue Eyes(창백하고 파란 눈알들)”를 뺀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아, [접속]에 나온 그 노래 말이지?) 같은 것을 감히 추천할 수가 없다. 하기사, 아는 어떤 선배의 비틀즈 가사 번안에 의하면, 엄마 메리는 똑똑한 척 하며 속삭였다고 한다.

“내비둬(Let It Be)”

그래 내비두련다. “내비둬~ 내비두어어~ 내비둬어~ 내비둬~…..”

“……. 응… ‘Yesterday’.. 좋지이~”

형을 위해서 “Yesterday”를, 나를 위해서 “Because”를 꼽는다. 상품은 뭘까.  | 깜악귀 kkamakgu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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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공식 사이트 http://www.beat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