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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With the Beatles | EMI/Capitol, 1964

 

로큰롤의 순수한 환희, 그 궁극의 모멘트

비틀스가 ‘스스로 곡을 만들어서 연주하는 밴드’라는 정체성을 확립시킨 최초의 존재라면, ‘다른 사람이 만든 곡을 커버하여 연주하는 밴드’라는 정체성을 가진 최후의 존재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이 앨범은 창작곡과 커버곡이 사이좋게 일곱곡씩 수록된 비틀스 초기의 기록(record)이고, 따라서 비틀스의 초기의 창작곡의 유형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 주는 텍스트임과 동시에 경력도 쌓고 돈도 벌기 위해 런던과 함부르그를 오가면서 투어(?)를 하던 시절 그들이 연주했던 레퍼토리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 창작곡의 경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와 작사·작곡의 협업이 잘 이루어졌다’든가, 커버곡의 경우 ‘오리지널을 그들의 색깔로 잘 소화해 냈다’느니 하는 평은 실례 이상이 아닐 것이다. 조지 해리슨이 최초로 작곡에 참여했다든가(“Don’t Bother Me”), 링고 스타가 드물게 보컬에 참여한 곡이 있다든가(“I Wanna Be Your Man”) 조지 해리슨도 커버곡에서 리드 보컬에 참여했다든가(“Devil in Her Heart”)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All My Loving”과 “Till There Was You”가 [에드 설리번 쇼]에서 연주한 곡이라는 점은 비틀스 고증학자들에게 맡겨둘 일이고, “Till There Was You”와 “Roll over Beethoven” 처럼 기타 솔로가 중요한 곡들에서 조지 해리슨 특유의 동작을 떠올리는 것도 비틀스를 당시에 경험하지 않았거나 다큐멘터리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너무나도 해사하게 미소지으면서 즐거워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이런 점이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에 의해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 이런 순수한 환희의 감정이 자기표현을 이루어낸 창작곡들 뿐만 아니라 시카고 리듬&블루스(“Roll over Beethoven”: 원곡은 척 베리(Chuck Berry)), 모타운 소울(“You’ve Really Got a Hold on Me”: 원곡은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처럼 비교적 존중받는 음악들뿐만 아니라 영락없는 순수 팝(“Please Mr. Postman”, “Devil in Her Heart”)를 연주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점은 그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기만 하다. 즉, “It Won’t Be Long”에서 나오는 그 넘치는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이고, 웬만한 사람이라면 비틀스의 곡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 “Little Child””의 유치할 정도의 단순함의 의도는 무엇일까라는 점은 궁금하기만 하다.

순수한 환희의 감정에 대해, “Money (That’s What I Want)”의 가사를 직역해서 ‘얘들이 돈을 좀 벌어서 즐거울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시 기성세대의 시각’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에서도 창작곡이 커버곡보다 훌륭하다’는 세간의 평가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은데 그것은 로큰롤이 ‘그저 모방을 해도 즐겁다’는 중독적 속성을 가진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걸 보면 비틀스의 창조와 혁신이란 것은 로큰롤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로큰롤의 뿌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기나긴 여행이었다. 로큰롤의 순수한 환희란 마치 기독교의 천년왕국처럼 언젠가는 재림하지만 현실에서는 달성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비틀스는 초기에는 록(로큰롤)이었지만 중기 이후 팝으로 변신했다’는 통속적 주장으로 이해하지 말기 바란다. 세상의 물질적 현실은 순수한 환희를 그대로 표현하면서 살아내기에는 지독히도 복잡하고 난해하고 부조리하다. 이후 이들이 현실에 맞서는 방법은 창조의 정념을 불사르는 것이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의 해사했던 미소를 사라지게 만든다. 맞다. 그래서 이 앨범은 창작곡에서 드러난 창조의 정념이 커버곡에서 드러난 재해석의 기쁨과 등가적이었던 비틀스 최후의 순간을 표상한다. 비틀스에 중독된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비틀스를 커버하는 것을 신성한 사명으로 생각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순간은 ‘역사적’이자 ‘역설적’이다. | 신현준 homey@orgio.net

 

Rating: 9/10

 

수록곡
1. It Won’t Be Long
2. All I’ve Got to Do
3. All My Loving
4. Don’t Bother Me
5. Little Child
6. Till There Was You
7. Please Mr. Postman
8. Roll over Beethoven
9. Hold Me Tight
10. You’ve Really Got a Hold on Me
11. I Wanna Be Your Man
12. Devil in Her Heart
13. Not a Second Time
14. Money (That’s What I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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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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