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Lennon | John Lennon/Plastic Ono Band | EMI, 1970

John Lennon | John Lennon/Plastic Ono Band | EMI, 1970

 

단꿈에서 깨어난 자의 허무

나무그늘 밑에서의 한가로운 오후. 이것이 존 레논(John Lennon)이 그렇게도 갈구하던 행복이란 말인가? 앨범 표지의 평화로운 광경은 쫓기듯 살아온 비틀스(The Beatles) 시절을 뒤로하고 드디어 안락한 삶을 영위하게 된 존 레논과 오노 요코(Yoko Ono) 커플의 행복한 나날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표지 그림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단지 오해에 불과할 뿐이다. 이 그림이 나타내는 것은 목가적인 낭만이나 여유로운 평화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이다.

1970년대를 맞아 레논은 지난 10여년 간의 꿈과 환상에서 깨어나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잘 알겠지만 그곳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무엇보다도 바깥 세상의 즐거운 꿈에서 깨어난 아침이다. 화려하게 채색된 도시를 마음껏 배회하다 느닷없이 되돌아온 국방색의 현실은 누구에게나 순간적인 절망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앨범은 비틀스 해산 직후 존 레논이 첫 번째로 내놓은 솔로앨범이다. 꿈과 현실 사이의 극적인 대조가 가장 예민하게 감지된 순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레논은 비틀스 시절의 [Revolver] 앨범에서부터 가시화된 그의 개인적이고 자기고백적인 성향을 더욱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다. 갑자기 찾아온 현실의 충격이 그를 정신적 벼랑 끝의 상황에까지 몰아붙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앨범에서 그는 자신의 생각, 심리상태, 성장과정 등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낱낱히 밝힌다. 당연히 이 앨범을 관통하는 분위기는 짙은 허무주의다.

그는 한 때 자신이 의지했던 정치, 종교, 예술 등 세상의 모든 가치로부터 등을 돌려버린다(“I Found Out”, “Isolation”, “Well Well Well”, “God”). 이러한 허무주의는 자신을 떠나버린 부모(“Mother”, “My Mummy’s Dead”)와 고통스러운 어린시절의 기억들(“Working Class Hero”, “Remember”)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인 허무에도 불구하고 결코 죽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Love”, “Hold On”). 그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며 이유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우리 두 사람 뿐(“Look At Me”)’이라는 그의 결론은 충격과 고통에 휩싸인 바로 그 순간에 내려진 경솔하고 과장된 판단 이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이 앨범은 듣기에 그다지 유쾌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음악적으로도 그가 비틀스 시절에 만든 “Across The Universe”나 “Happiness Is A Warm Gun” 같은 천사표 멜로디는 오직 “Love” 하나 정도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여기서 스스로를 발가벗기고 자신의 인간적 결함마저도 서슴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혹자는 이것을 ‘위대한 예술가의 용기있는 발언’으로 격찬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노출증 환자의 정신적 포르노그래피’로 격하시킬 여지도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식의 평가는 레논보다는 ‘토크쇼형 노래’로 인기를 끄는 그의 후예들에게 더욱 적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Rating: 8/10

 

수록곡
1. Mother
2. Hold On
3. I Found Out
4. Working Class Hero
5. Isolation
6. Remember
7. Love
8. Well, Well, Well
9. Look at Me
10. God
11. My Mummy’s Dead
12. Power to the People
13. Do the 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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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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