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16061352-bruceBruce Springsteen – The Rising – Columbia/Sony, 2002

 

 

화해의 메시지, 오해의 장벽

아무 생각 없이 이 음반을 들으면 미제(美製) 관습적 록 음악 이상의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사운드’로 음악을 듣는 요즘 세태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음반을 다 듣고 난 뒤 ‘Yes, he Can rock us’ 이상의 반응이 나오기는 힘들다. 혹시나 자신이 음악 생산자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감식가를 자처한다면 이런저런 프로듀싱에 관심을 기울일 소지가 없지는 않으나 혁신적인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다. 누군가 “당신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팬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면 [The River](1980)의 LP와 [The Ghost of Tom Joad](1995)의 CD는 지금도 가끔씩 꺼내 들어본 뒤 진한 감흥에 젖는다고 답변해야 할 것이다. ‘관습적 록’이라는 말에 다분히 비하의 감정이 들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래드 재즈(trad jazz)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트래드 록(trad rock)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이 앨범에 대해 왜 이렇게 말이 많을까.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커빌리, 소울, 고스펠, 두왑 등 마치 첫사랑같은 장르들의 영향을 느끼고 반가와할 수도 있겠다. 즉, 미국인이라면 언제나 어디서나 좋아할 만한 음악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Lonesome Day”에서의 허디 거디(hurdy-gurdy)나 “Into the Fire”의 도브로 기타 소리가 ‘포크’ 감성의 사람에게는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성을 가진 세대가 이미 저물어 가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E 스트리트 밴드(E Street Band)와의 18년만의 결합’이라든가 ‘스티브 밴 잰트(Steve Van Zandt)와 닐스 로프그랜(Nils Lofgren)이 가세했다’는 사실마저도 ‘이승철과 부활의 재결합’ 소식 정도의 충격파 이상은 전달되지 않는다.

사운드도 장르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처지에서 실마리는 앨범의 일곱 번째 트랙에서 발견된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이색적인 트랙인 “Worlds Apart”이다. ‘월드 뮤직’에 문외한이라면 이국적 느낌의 테크노-인더스트리얼 음향을 도입했다고 말할 것이며, (나처럼) 월드 뮤직에 막 입문하여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파키스탄의 카왈리(Qawwali)라고 단정지을 것이다. 그리고 카왈리가 이슬람 음악인 것은 맞지만, 근본주의자들과는 거리가 멀고 때로 탄압을 받는 수피(sufi) 종파의 음악이라는 점도 지적할 것이다. 물론 이 곡을 듣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어쨌거나 피터 개브리얼(Peter Gabriel)이 걸었던 길을 따라갈 것이라는 예상은 섣부른 것이다. 그의 선택은 상황적인 것이고, 그 상황이란 ‘9.11 테러 1주년 즈음’이라는 시점과 맞아 떨어진다.

일단 곡의 제목만 보더라도 그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kiss’, ‘touch’, ‘skin’, ‘heart’ 등의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단어와 ‘hope’, ‘faith’, ‘love’ 등의 추상적 단어가 교차되는 가사까지 들린다면 금상첨화겠다. 맞다. 언제나 그랬듯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혁신적 음악가이기 이전에 양심적 메신저이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앨범 타이틀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봉기하여 맞서 싸우자’라고 해석한 사람은 번짓수가 틀려도 많이 틀렸다. 그건 “Born in the U.S.A.”가 ‘미국의 제 2의 애국가’라고 단정하는 것이나 비슷하다. 9.11 테러에 대해 그는 ‘화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신실하고 진심으로. 이걸 두고 테러 희생자들을 소재로 하여 돈을 챙겨 보려고 한다는 식의 비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그렇지만 문제는 남는다. 이 앨범 역시 [Born in the U.S.A.]처럼 ‘오해’받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진심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오해가 더 광범하고 일반적이다. 그러니 [Rolling Stone]이 이 음반에 만점을 주고, AMG도 별 네 개 반을 준 것을 보고 ‘리뷰를 읽기도 전에 거부감부터 피력하는’ 사람을 달래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달랠 필요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남겠지만. 그래서 이 앨범을 듣고 ‘모든 장벽을 허무는 화해의 메시지’라고 결론짓고 싶지는 않다. 오해의 장벽은 아직 완강하니까. 20020913 | 신현준 homey@orgio.net

7/10

수록곡
1. Lonesome Day
2. Into The Fire
3. Waitin’ On A Sunny Day
4. Nothing Man
5. Countin’ On A Miracle
6. Empty Sky
7. Worlds Apart
8. Let’s Be Friends (Skin to Skin)
9. Further On (Up The Road)
10. The Fuse
11. Mary’s Place
12. You’re Missing
13. The Rising
14. Paradise
15. My City Of Ruins

관련 사이트
Bruce Springsteen 공식 사이트
http://www.brucespringsteen.net/
http://www.backstree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