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13041817-0418sweater_tube스웨터 – Staccato Green – 라디오 뮤직/드림비트, 2002

 

 

모든 청순함 속엔 먼지가 묻어있다

스웨터(Sweater)의 첫 번째 정규 음반 [Staccato Green]은, 어떻게 리뷰를 풀어나가야 할지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준다. 좋은 뜻에서는 ‘그만큼 쓸거리가 많은 음반’이고 좋지 않게 말하면 ‘뚜렷한 포인트를 끄집어내기 어려운 음반’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결국엔 리뷰어가 품은 ‘기분’의 변수에 따라 판단이 흘러가게 마련일 것인데, 이는 ‘객관성’의 측면에서 보면 심각한 결함을 야기시킨다. 물론 필자의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 리뷰의 애초 컨셉은 “반복해서 들을수록 맛이 우러나는 음반”이었다. 사실 그렇다. 열 번 이상 거듭하여 들어보니, 들을 때마다 새로운 풍미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이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는 스웨터에 적지 않은 호감을 품고있기도 하고, 그런 방향으로 얘기를 풀어갈 예정이었다. 허나 이를 어쩐단 말인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리뷰는 묘하게도 ‘긍정적’인 내용이 그렇지 않은 내용에 비해 훨씬 빈약할 것 같다. 해외에서 수입된 음반보다 순수 국산 음악 창작물에 훨씬 너그러워지는 게 솔직한 인지상정일진대(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있기는 하다), 이 음반은 상대적으로 그런 정을 덜 받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필자가 [Staccato Green] 음반을 ‘해부’하기에 앞서, 우선 스웨터에 대한 ‘명상’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스웨터는 자우림과 마찬가지로, 멤버의 연주 능력이나 노래의 짜임새보다는 여성 보컬리스트의 매력이 훨씬 우위에 있는 밴드다. 말하자면 프론트우먼인 이아립이 발산하는 매력이 스웨터의 핵심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아립이 지닌 매력이란 사실 대부분 ‘외양적인’ 것이다. 이아립의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자태가 거의 전부라 해도 무방한 것이다. 바로 거기서 자우림과의 차이점이 드러나는데, 김윤아의 경우 외양에서 풍기는 매력을 ‘카리스마’의 경지로 끌어올려 이것을 팀 컬러와 융합시켜 상승 작용을 꾀하는데 비해, 이아립의 경우는 본인이 지닌 매력이 밴드 전체의 개성으로까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수준에서 머무른다. 김윤아가 자우림에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밴드 내 다른 멤버들의 기량이 김윤아의 카리스마를 뒷받침해줄 수 있게 충분히 탄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스웨터는 아직 ‘신예’ 밴드의 상황이라고는 하나, 자우림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아립의 역량만으로 팀이 굴러가기엔 그녀의 ‘내공’이 아직 여려 보이고, 그렇다고 신세철을 중심으로 한 밴드 나머지 멤버들의 기량이 골고루 확산되기를 희망하자니 이번엔 밴드 자체의 내공이 힘에 부친다.

그래서 스웨터가 택한 차선책이, 바로 이한철을 초빙한 것이다. 이한철은 한국 인디/모던 록 분야에서 ‘베테랑’이라 불릴 수 있는 확고한 역량을 구축한 바, 스웨터가 추구하는 음악 세계에 든든한 백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래서, [Staccato Green]에는 음악 감독으로서의 이한철의 존재감이 전면에 드리워져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좋게 보아 (마치 필 스펙터(Phil Spector)처럼) ‘프로듀서 작가주의’요, 나쁘게 말하자면 한국 대중 음악의 현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제작자(또는 기획자)에 의해 뮤지션쉽은 고사하고 음악 자체가 휘둘리는 고질적 답습인 것이다. ‘주류 가요’라 불리는 분야(댄스, 발라드, R&B 그리고 최근의 ‘락&오케스트라’ 등의…)에서만 서식하는 줄로만 알았던 패턴이, 덜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인디 쪽에서도 그 싹을 틔우고 있다는 건 상당히 놀랍다.

잡설(또는 서론)이 너무 길었다. [Staccato Green]을 해부해 보자. 전반적으로 이 음반은 ‘깔끔한 사운드’로 점철되었다. 청량감 있으면서도 은근한 업 템포의 연주는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위에서 말했듯 이것이 비록 이한철의 역량이라 해도, 사운드 자체는 주목할 수준으로 안정적이다. ‘남녀상열지사’를 기본으로 깔면서도 삶에 대한 살짝 그늘진 상념의 편린이 담긴 이아립의 노랫말엔 적절한 품위가 있다. “멈춘 시계 태엽을 감아 기억을 모두 태워”(“분실을 위한 향연”) 같은 가사는 쉽사리 나올 수 있는 솜씨가 아니다.

스웨터의 사운드 구도는 밴드 내 역학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음반 전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이아립의 보컬과 신세철의 드럼이다(이 두 사람은 팀의 기둥이다). 신세철의 드러밍은 ‘모던 록’을 표방하는 스웨터의 스타일을 벗어난다. 즉 드라이빙감이 다소 과하다 싶을 만큼 넘치고 상당한 힘이 들어간 필인을 구사한다. 무엇보다도 특기할 점은 이아립의 보컬이다. 이아립의 보컬은 ‘평범’하지 않다. 음역이 좁고, 호흡이 짧다. 이런 보컬을 ‘가창력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배, 김완선, 장필순 등의 선례도 있고, 무엇보다도 모리씨(Morrissey)라는 대성공 사례가 있지 않은가(오히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보컬 기량을 지닌 가수들보다 생명력이 더 질긴 것 같기도 하다). 키보디스트 임예진과 기타리스트 송준우는 이아립과 신세철을 철저하게 서포트 하면서도 사이사이 짧은 순간 자신의 기량을 내비치는 솜씨가 날렵하다. “별똥별”에서의 오르간이나, “멍든새”의 인트로를 정교하게 꾸미는 기타 연주가 대표적이다. 기타와 오르간이 도란도란 연주를 주고받는 “lily”도 들을 만 하다. 그런데 의문점 하나. 송준우의 정체는 ‘리듬 기타리스트’인가? 부클릿을 보니, ‘기타 솔로’는 이한철이 도맡았다(“별똥별”, “인어는 없어”). 물론 인디/모던 록에서 과잉으로 가득 찬 필살기의 기타 솔로 연주는 금기에 가까운 사항이라지만, 이 정도의 ‘솔로’를 다른 이(그것도 프로듀서)가 연주했다는 것은, 무언가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징표다.

이 같은 ‘사연’은 [Staccato Green] 음반 전체에도 깔려있지 않나 싶다. 이 음반을 들으며 크게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음반의 중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즉 “staccato green”부터 “”우리 비 그치면 산책할까?””까지는 상큼하고 청순하고 약간의 여운과 우수도 담긴 인디 팝이다(물론 로킹(rocking)한 어프로치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그런데 갑자기, 여덟 번째 트랙 “인어는 없어”부터 가벼웠던 분위기는 강렬한 고출력 음향으로 탈바꿈한다. 연주 스타일도 당연히 바뀐다. 기타는 디스토션 짙게 걸린 ‘노이즈’ 사운드이고, 드럼은 둔중하고 기계적이며, 오르간은 몽환적인 신서사이저로 바뀌어 있다. 가장 놀라운 변신은 보컬이다. 마치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이아립의 보컬 톤은 완벽한 변신을 이룬다. 전반부를 풍미하던 ‘중음’은 ‘저음’으로 하강하고, ‘청순함’은 ‘무뚝뚝함’으로 돌변한다. 다만, ‘짧은 호흡’이 이 상반된 보컬(들)이 사실은 동일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증거한다. 이토록 무거운 분위기는 “분실을 위한 향연”, “결벽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려 그리고 픈”에 이르러서야 음반 전반부의 상큼한 뉘앙스와 연주가 (실로 극적으로!) 되살아난다. 예의 ‘경쾌한 연주’는 듣는 이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아비”, “꿈에서는”까지 흔들림 없이 진행되며 음반의 마지막을 이룬다.

스웨터의 ‘전설적인’ 데모 음반을 들어보면, ‘어두움과 무거움’을 표방하는 사운드가 이들의 본래 정체성을 이룸을 알 수 있다. 하지만 [Staccato Green] 음반으로 상황을 옮겨놓으면, 스웨터의 ‘본질’은 그만 ‘변수’ 또는 ‘돌발 상황’으로 처지가 바뀌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을 ‘발전’이라고 보아야 할까, ‘타협’이라 보아야 할까. 튜브 뮤직이 집계한 국내 음반 판매 순위를 보면, [Staccato Green]은 8월 23일~29일 사이에는 1위를, 8월 30일~9월 5일 사이에는 2위(강타의 [Pine Tree]에 밀렸다)를 차지한 것으로 보아 진실은 후자 쪽에 가깝다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대중’ 음악에서 상업성이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고 드는 것은 마치 암과 에이즈 중 어느 게 더 나쁜 질병이냐를 논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무엇보다, 국내 인디 음악에 대체로 시큰둥한 자세를 유지했던 필자의 마음을 홀리고 스웨터의 새 CD를 오매불망 기다리게 만들고 나오자마자 냉큼 집어들게 한 건, 분명 이들이 강렬하면서 보편적일 수도 있는 상업적 매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스웨터가 누리고 있는 인기와 성공을 색안경을 쓰고 째려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럴수록 ‘비평’을 하는 이의 초췌하기 짝이 없는 위상만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니까. 다만, 스웨터가 자우림처럼 너무 커다란 존재로까지 뻗어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아류’가 될 확률이 높고, [Staccato Green]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청순함’ 같은 건 소멸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리뷰어가 아닌 ‘팬’으로서 품는 바람이다. 20020913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7/10

수록곡
1. Staccato Green
2. 별똥별
3. lily
4. 길을 건너면
5. 멍든 새
6. 바람
7. “우리 비 그치면 산책할까?”
8. 인어는 없어
9. 분실을 위한 향연
10. 결벽증
11. 그리고 그려 그리고 픈
12. 아비
13. 꿈에서는 (보너스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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