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a – Sao Paulo Confession – Six Degrees, 2000 전통에 기댄 현대물의 승리 2000년도에 발매된 베벨 질베르뚜의 앨범 [Tanto Tempo]는 일본과 유럽을 중심으로 일정한 수준의 상업적 성공과 호의적 평을 동시에 획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하기에는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해도, 브라질이라는 곳의 대중음악계에서 여가수의 존재는 곧장 프로듀서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범한 평가를 얻는 데에는 프로듀서의 역할이 컸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그 음반의 프로듀서가 바로 수바(Suba)다. 상 빠울루는 브라질에서는 리우 데 자네이루와 더불어 브라질에서 그리고 남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도시이다. 수바는 이 도시를 자신 안에 녹아있는 동유럽(그는 유고슬라비아 태생이다)적인 음울함과 신비로움을 담아 지극히 현대적인, 그러나 분명 브라질의 느낌이 묻어나는 형태로 표현해 냈다. 최면적인 신서사이저 음과 명료하면서도 미니멀한 피아노 소리가 어우러지는 첫 트랙부터 이런 느낌은 충분히 감지된다. 루프가 아닌 실제 드럼으로 연주되는 비트가 매력적이며 나른하게 얹히는 여성 보컬을 감상할 때쯤이면 이미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반복되는 퍼커션의 연주와 음산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뭐라 말할 수 없이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샘플링으로 이루어진 “Voce Costa” 같은 트랙도 감상용 일렉트로니카로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영원한 보싸 노바의 스탠더드인 “A Felicidade”도 놀랍도록 변모된다. 소규모 편성으로 집적된 구조를 그려내는 보싸 노바 특유의 작법은 유지되지만 악곡의 흐름 사이에 가미되는 이국적인 샘플링들로 원곡은 환골탈태된다. “Sereia” 역시 신비로운 신서사이저 소리와 툭툭 내뱉는 듯한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부유하는 정서로 초대하는 매력 넘치는 트랙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렇게 음울한 정서만 포진해있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리듬이 산개하는 “Samba do Gringo Paulista” 같은 곡도 즐길 수 있다. 소위 샘플링과 신서사이저로 대변되는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미감은 음상의 시각화와 음 속으로의 지극한 몰입으로 대변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뮤지션이 쓰는 방법의 하나는 일련의 콜라주인데, 이는 규정된 장르의 나열, 혹은 그것의 다양한 조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음의 표면에 자신만의 가공을 가하여 새로운 형태로 변모시키는 것에 있다. 그런데 브라질의 전통적 대중음악은 간결한 악기편성과 울림이 적은 타악기들이 오밀조밀하게 엮어내는 현란한 리듬과 원초적인 형태를 지닌 극적인 편곡을 자제하는 청량감 넘치는 멜로디에 있다. 그렇다면 수바는 성공적으로 자신이 가진 브라질적 전통 속으로 일렉트로니카를 접목시키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리듬들은 일렉트로니카 특유의, 진자처럼 정확한 타이밍을 갖춘 것들이지만 이 리듬은 브라질에서 정통성을 획득하고 있는 삼바 리듬으로 열광적이고 최면적인 제의의 형식을 띄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팔세토를 자제하는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부르는 멜로디는 몽환적이며 어둡지만, 분명 자연 그대로의 인위적이지 않은 멜로디 라인을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뛰어난 음반을 창조해낸 수바는 불의의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운드 스케이프에는 유럽적인 어두움과 심오함, 브라질적 밝음과 최면적이고 열광적인 제의의 정서가 모두 담겨있다. 이 음반은 MPB의 새로운 전범을 확립한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만점이라는 평점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20020820 | 박주혁 villastrangiato@hanmail.net 10/10 수록곡 1. Tantos Desejos 2. Voce Gosta 3. Na Neblina 4. Segredo 5. Antropofagos 6. A Felicidade 7. Um Dia Comum 8. Sereia 9. Samba Do Gringo Paulista 10. Abraco 11. Pecados da Madrugada 12. A Noite Sem Fim 관련 글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빙자한 브라질 음악 스페셜(3): 보싸 노바와 MPB의 후예들 그러나 1세들과는 다르게 – vol.4/no.18 [20020916]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빙자한 브라질 음악 스페셜(2): 삼바, 보싸 노바, MPB의 명인들 – vol.4/no.17 [20020901]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빙자한 브라질 음악 스페셜(1): 까에따누 벨로주와 뜨로삐까이아 – vol.4/no.15 [20020801] Moreno Veloso [Music Typewriter] 리뷰 – vol.4/no.18 [20020916] Bossacaucanova & Roberto Menescal [Brazilidade] 리뷰 – vol.4/no.18 [20020916] Pato Fu [Televisao de Cachorro] 리뷰 – vol.4/no.18 [20020916] Bebel Gilberto [Tanto Tempo] 리뷰 – vol.3/no.2 [20010116] Marisa Monte [Memories, Chronicles and Declarations of Love] 리뷰 – vol.3/no.2 [20010116] Marisa Monte [Mais] 리뷰 – vol.3/no.3 [20010201] Virginia Rodrigues [Nos] 리뷰 – vol.3/no.2 [20010116] 관련 사이트 Six Degrees 레이블의 음반 소개 http://www.sixdegreesrecords.com/travelseries/artists/su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