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06123227-largoBrad Mehldau – Largo – Warner Bros., 2002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재즈의 또 다른 가능성

어쩌면 이 앨범은 브래드 멜도우(Brad Mehldau)를 잘 알고 있던 재즈 팬들에게는 가장 불편한 음반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그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본 적 없던 록 음악 팬들에게는 가장 친절한 그의 음악이 될지도 모른다. 그건 굳이 이 앨범에 라디오헤드(Radiohead)의 “Paranoid Android”가 수록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이미 예전 앨범에서 “Exit Music”이나 비틀즈의 곡(“Blackbird”) 등 록음악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들려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애초 키스 자렛(Keith Jarrett)과 비교되던 그였지만, 이번 앨범으로 키스 자렛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 앨범에서 보여주었던 답답한 ‘정체감’도 느낄 수 없다. 물론 이 변화에 대한 선호는 분명히 갈리겠지만 말이다.

앨범의 시작부터 변화를 체감하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 흔한 브러쉬도 쓰지 않는 (재즈) 드럼은 분명 록의 그것이고, 중첩된 코드로 표현되던 그의 명징하면서도 명상적인 타건도 많이 다른 느낌이다. 여전히 명징하지만, 명상적이지는 않다. 4번째곡 “Dropjes”은 아예 전자 음향을 효과음으로 사용한다. 그것도 단순한 ‘삽입’이 아닌 곡 전체의 느낌을 좌지우지하는 ‘테마’의 성격이다. 몽환적이면서도 우수어린 혼돈을 가장 잘 표현하던 라디오헤드의 곡 “Paranoid Android”에 이르면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조금 더 감이 오기 시작한다. 주멜로디를 훼손하지 않은채 ‘아! 시작이네…’ 라는 느낌을 주는 친절한 인트로를 지나자마자 표현되는 중반부의 혼돈스런 리듬은, 원래부터 재즈 연주곡이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하긴 [Kid A]에서 들려주었던 재즈 세션들과의 협연을 기억한다면 어색하지도 않다. 원곡에서 금속성의 기타로 표현했던 극적 긴장감은 절묘하게 계산된 연주로 변주되면서 감탄을 자아낸다. 9분이라는 시간이 짧다.

“Sabbath”는 가장 파격적인 곡이다. 디스토션이 걸린 피아노와 ‘헤비’한 드럼연주는 마치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를 연상시킬 정도다. 모처럼 서정적인 피아노와 어쿠스틱 베이스의 안온함이 따뜻함을 주는 “Dear Prudence(비틀즈 원곡)”를 지나면 ECM스타일에 일렉트로닉과 애시드재즈를 더한 묘한 느낌의 “Free Willy”를 만나게 된다. 얼핏 ‘프리’하고 난해하게 표현된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집단 연주’의 규범이 느껴지는 건 드럼 조지 로씨(Jorge Rossy)와 베이스 래리 그레나더(Larry Grenadier), 이 세 멤버의 호흡 때문인 듯 하다(본 앨범에서 원래의 멤버인 이 세사람의 연주로 이루어진 유일한 곡이다). 이어지는 조빔의 명곡 “Wave”와 비틀즈의 “Mother Nature’s Son”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물론 메들리 형식으로 묶여있지만, 보싸노바와 비틀즈, 재즈, 일렉트로닉이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브래드 멜도우의 비브라폰 솜씨는 보너스.

개인적으로 재즈와 록, 모두를 즐기는 취향 때문일까. 외지의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한 평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흡족한 음악이였다. 메데스키, 마틴 앤 우드(Medeski, Martin & Wood)나 애시드 재즈가 보여주는 ‘외연확장을 통한 혁신’이나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 마이클 브렉커(Michale Brecker) 등이 지향하는 ‘전통 안에서의 혁신’과도 다른, 또 하나의 시도이다. 단순한 차용이 아닌, 록 음악의 본질을 재즈라는 형식에 가장 현대적으로 잘 접목시킨 시도라고 말하고 싶다. 이 정도는 되어야 ‘퓨전’이라는 용어가 싸구려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런 시도가 계속 이어질지 개인적인 음악적 활로를 위한 일회적인 시도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의미있는 시도이고, 멋진 변화이다. 20020903 | 박정용 jypark@nhncorp.com

8/10

수록곡
1. When It Rains
2. You’re Viding Me
3. Dusty McNugget
4. Dropjes
5. Paranoid Android
6. Franklin Avenue
7. Sabbath
8. Dear Prudence
9. Free Willy
10. Alvarado
11. Wave/Mother Nature’s Son
12. I Do

관련 사이트
Warner Bros 재즈의 브래드 멜도우 페이지
http://www.wbjazz.com/catalogrelease.html?id=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