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 The Music – Hut, 2002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라 아주 오래 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지구의 제왕은 공룡이었고 그들은 하드 록이나 프로그레시브 록 같은 것들을 연주하며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펑크라고 불리는 인류가 등장했다. 펑크는 DIY와 3분짜리 로큰롤이라는 무기로 공룡들을 멸종시키고 펑크 록의 천년왕국을 수립했다. 비록 펑크 자체는 단명하고 말았지만 왕국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왕국의 역사책을 보면 공룡시대를 ‘암흑시기’로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암흑시기는 지루하고 위선적인 예술지향주의적 쓰레기가 지배하던 시기로서 10분이 넘는 대곡과 마라톤 잼 세션 그리고 컨셉트 앨범 등의 구악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다. 왕국의 법전은 이러한 공룡시대를 되살리려 시도하는 자는 누구든 중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침실에 몰래 숨어 공룡시대의 음악을 들을 뿐 드러내놓고 그것을 듣거나 말하지는 않는다. 자칫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공개처형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왕국의 질서는 살벌한 무단통치와 철저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유지되어 왔다. 왕국의 교육자들은 도탄에 빠진 록 음악을 어떻게 펑크가 구원했는지를 인민의 머리 속에 주입시켰고, 정치가들은 공룡의 잔당이 발견되면 누구든 가차없이 돌을 던지라고 선동했다. 그러나 이러한 왕국의 질서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년 전 오션 컬러 씬(Ocean Colour Scene)이라 불리는 일군의 반혁명 분자들은 자신들의 두 번째 앨범 [Moseley Shoals]를 발표해 수백만 장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한 적이 있다. 왕국의 판관들은 당시 이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내심 크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나?” 그들의 입장에서 오션 컬러 씬의 성공은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옳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 오션 컬러 씬보다도 훨씬 더 반동적인 과격집단 뮤직(The Music)의 첫 앨범이 출반되었다. 여기서 이들이 들려주는 선 굵은 리프와 장대한 스케일 그리고 호쾌한 연주는 영락없이 공룡시대의 하드 록을 빼다 박은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 대한 판관들의 반응은 오션 컬러 씬 때와는 달리 놀라울 만큼 우호적이다. 판관들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천년왕국의 질서가 드디어 붕괴의 조짐을 나타내는 것일까? 아니면 쿠퍼 템플 클로스(The Cooper Temple Clause)나 사운드트랙 오브 아워 라이브스(The Soundtrack of Our Lives) 같은 공룡 후예들의 연이은 침공에 시달린 나머지 유화 제스쳐를 보이는 것일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왕국의 음악이 (앰프의 볼륨 올리기를 두려워하는) 샌님과 겁쟁이들의 시대를 경과하면서 인민의 지지를 크게 상실했다는 점은 명확한 것 같다. 또한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공룡시대에 대한 혁명 1세대의 원초적 증오와 반감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도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뮤직의 음악이 겉보기와 달리 천년왕국의 질서에 근본적 위협이 되지 않는 하드 록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음악에는 암흑시기 음악의 요소 중 구악으로 간주되는 것들이 안전하게 배제되어 있다. 뮤직의 음악은 길지만 터무니 없이 길지 않고, 연주력이 뛰어나지만 과시적이지 않고, 스케일이 크지만 허황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뮤직의 음악은 과거와 현재의 절묘한 타협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뮤직의 음악은 공룡시대의 하드 록이 21세기 천년왕국의 관점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Truth Is No Words”의 지지 탑(ZZ Top) 리프나 “Disco” 도입부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오마주 등은 이들이 지닌 공룡의 후예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끝났다면 이들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을 자극하는 리바이벌 밴드 이상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벡(Beck)이 “나의 음악은 컨트리다. 그러나 그것은 드럼 & 베이스를 아는 사람의 컨트리다”라고 했던 것처럼 뮤직의 하드 록은 단순한 하드 록이 아니라 댄스클럽에 출입해 본 사람의 하드 록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공룡시대의 블루지한 하드 록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드럼과 베이스의 굴곡 심한 댄스비트를 통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단호히 거부한다. 물론 댄스비트의 차용은 이미 스톤 로지스(Stone Roses)가 답사했던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이다. 뮤직의 음악을 스톤 로지스의 아류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상상력이 요구된다. 뮤직의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로버트 하비(Robert Harvey)의 힘있고 우렁찬 보컬이다. 그의 강력하면서도 풍부한 고음은 실로 오랜만에 고전적 록 보컬리스트를 만났다는 반가움을 느끼게 해준다. 30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그는 아마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나 이언 길런(Ian Gillan)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보컬리스트로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담 너터(Adam Nutter)의 기타 역시 이들 음악의 간과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압도적인 슬라이드와 격렬한 와와 등 다양한 테크닉으로 연출하는 리프도 들을만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역시 들릴 듯 말 듯 빈 곳을 채우는 세밀한 디테일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의 이러한 기여를 통해 이들의 음악은 하드 록에서 자칫 결여되기 쉬운 섬세함과 미묘함이 충만한 음악으로 완성된다. 요즘 보기 드문 하드 록 앨범이라는 화제성을 차치하고라도 이 앨범은 대단히 알찬 내용을 담고 있는 매우 즐길만한 작품이다. 질풍같은 격정의 하드 록(“The Dance”)과 비장한 록 발라드(“Turn Out The Light”) 심지어 음산한 고쓰 록(“Getaway”)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메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운드 실험(“The Dance”의 루프를 이용한 CD 튀는 소리, “The People”의 스크래칭을 흉내낸 전자음, “Take The Long Road And Walk It”의 하우스비트) 그리고 과거의 형식을 철저히 성찰하여 재구성한 음악형태(부기우기를 업데이트한 “The People”, 센티멘탈리즘을 배제한 록 발라드 “Turn Out The Light”) 등 이 앨범은 실로 무궁무진한 들을 거리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다소 좁은 음폭의 사운드를 통해 1970년대적 느낌을 되살린 짐 어비스(Jim Abbiss)의 프로듀싱도 이 앨범에 들어간 정성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천년왕국은 공룡시대 음악을 전면 부정해버림으로써 이런 앨범이 나올 가능성을 원천봉쇄해 왔다. 최근 왕국의 위기를 틈타 다양한 종류의 음악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처럼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가득찬 앨범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제 하드 록은 더 이상 공룡시대의 음악으로 무시당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어쩌면 왕국의 판관들이 이런 반문을 던지는 날이 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이런 음악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나?” 20020901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 주의: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들을 것 수록곡 1. The Dance 2. Take The Long Road And Walk It 3. Human 4. The Truth Is No Words 5. Float 6. Turn Out The Light 7. The People 8. Getaway 9. Disco 10. Too High 관련 사이트 The Music 공식 사이트 http://www.themusic.uk.com/tm/index.c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