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e & Sebastian – The Boy With The Arab Strap – Matador, 1998 성장(직전)의 일기 누구나 거치는 사춘기. 성년기과 유년기의 접선/평행선과도 같은 그 시기. 어른의 세계를 두려워하거나 증오하는 이들이 머무르고 싶어하는 도피처.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은 이런 사춘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자신들은 부인하겠지만. 1,000장 한정 발매된 데뷔 앨범 [Tigermilk] (1996)의 출발부터, 1999년 브릿 어워드의 수상에 이르는 동안 언론의 밀어주기, 신화 만들기는 얼마동안 계속되었다. ‘잘 팔리는 컬트’가 된 덕에 그들의 EP들, 입소문만 났던 음반까지 국내의 음반 매장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기 고백적 정서를 담고 있는 포크 록, 다양한 악기와 풍성한 텍스처를 자랑하는(그래서 거칠고 조야한 로파이 인디와는 선을 긋는) 챔버 팝의 사운드, 때로는 수줍고 때로는 경쾌한 사운드에 냉소와 유머를 담아냈던 그들은 이제 나름대로 ‘거물’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작 [Storytelling]은 새로운 개척 영역인 영화음악 영토에 제대로 입성하지 못한 데다가(감독 토드 솔론즈와의 암묵적 불화도 한몫 거들었다), 몇몇 곡들이 벨 앤 세바스찬 표 음악이긴 하지만 진일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정점(이라 평가하고 싶은) 앨범은 2집 [If You’re Feeling Sinister] (1996)이다. 이후에 나온 3집인 [The Boy With The Arab Strap] (1998)은 2집과 비슷한 수준과 분위기다. 아니, 전보다 훨씬 정제되고 살랑거린다. 그걸 일단은 지속과 안정이라고 부르자. 허나 지속과 안정이라는 말은, 그것이 일정 이상의 질을 담보하지 못할 경우 신선하지 않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스튜어트 머독이 독점하던 작곡은 이 앨범에서 점차 다른 밴드 멤버들―스티비 잭슨(“Chickfactor”, “Seymour Stein”), 스튜어트 데이비드(“A Space Boy Dream”) 등의 참여로 확대되었는데, “A Space Boy Dream”에서 특히 나른하고 건조한 스튜어트 데이비드의 독백과 강렬한 비트는 전혀 벨 앤 세바스찬 같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 말은 낯선 사운드에 대해 이중적 태도 – 재미 혹은 당황 – 를 동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존 거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드는 시도는 여전해서, 전작의 밥 딜런에 이어 이 앨범에서는 레코드 업계 거물 시무어 스타인을 등장시켜 ‘그녀’ 때문에 저녁 식사를 거절하는 이야기를 재치있게 써 놓았다(“Seymour Stein”).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런 모든 것들은 치기 어린 욕망, 불투명하고 모호한 공상, 열병과도 같은 불안한 정서와 일탈 등이 혼돈스럽게 공존하는 소년기의 모습을 닮았다. 소년이 아니면서도 소년인(척하는), 혹은 그 반대의 ‘영악한 감성’은 결코 자라고 싶어하지 않는 피터팬의 모습도 보여준다. 소년기에 꾸는 꿈(벨 앤 세바스찬의 곡 제목에도 종종 ‘꿈’이란 단어가 등장한다)이란 종종 비이성적인 몽상이다. 미지의 화성으로 일탈하는 공상(“A Space Boy Dream”)이거나 음란한/더러운 꿈(“Dirty Dream Number Two”)처럼. 여기에 동반되는 정서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센티멘털리즘, 그 여드름 같이 돋아나는 욕망이 부유한다. 애매모호한 절망과 막연한 희망이 교차하는(아무 한 일도 없이 방학이 휙 지나가 버렸을 때의 그 허무함과 비슷한) “A Summer Wasting”, 게으름에 대한 찬가 “Sleep The Clock Around”처럼. 그리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소년과 같은 씁쓸하고 자조적인 섹스에 대한 감정까지 도달한다. ‘아랍 스트랩을 한 소년(The Boy With The Arab Strap)’이라… 영국 포르노 잡지 광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발기 부전자들을 위한 섹스 기구 브랜드, 그 기구를 한 소년의 모습처럼.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시기가 사춘기건만, 벨 앤 세바스찬의 사춘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성장을 멈추었다가 어느날 홀연히 그것을 재개한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그들 역시 다시 한 번 자라나지 않을까. 근거없는 기대라 해도, 실은 기대란 것이 애초에 ‘근거’를 무시하고 품는 것이 아니던가. 20020903 | 최지선 fust@nownuri.net 6/10 수록곡 1. It Could Have Been A Brilliant Career 2. Sleep The Clock Around 3. Is It Wicked Not To Care 4. Ease Your Feet In The Sea 5. A Summer Wasting 6. Seymour Stein 7. A Space Boy Dream 8. Dirty Dream Number Two 9. The Boy With The Arab Strap 10. Chickfactor 11. Simple Things 12. The Rollercoaster Ride 관련 글 Belle & Sebastian [Storytelling] 리뷰 – vol.4/no.18 [20020916] Belle & Sebastian [Fold Your Hands Child, You Walk Like A Peasant] 리뷰 – vol.2/no.14 [20000716] Belle & Sebastian [If You’re Feeling Sinister] 리뷰 – vol.2/no.3 [20000201] Belle & Sebastian [Tigermilk] 리뷰 – vol.4/no.18 [20020916] 관련 사이트 벨 앤 세바스찬 공식 홈페이지 http://www.belleandsebastian.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