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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리/키 보이스 – 오! 우짤꼬/정든 배는 떠난다 외 – 신세기(가 12125), 1965/6(추정)

 

 

미 8군용 로큰롤, 한국어로 가공되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해변으로 가요”나 “바닷가의 추억”은 이 음반의 주인공인 키 보이스와는 무관하다. 노파심에서 말한다면 이 곡들은 1969년 이후의 ‘후기 키보이스’가 연주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음반의 표지 때문일 것이다. 다섯 명의 멋쟁이 오빠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가에서 촬영을 했다. 그리고 아뿔싸! 윤항기(드럼)는 여성용 수영복을 입고 요염한 자태로 누워 있다. 황승환이 이 사진을 보았으면 ‘형님'(혹은 ‘언니’)하고 소리 지르면서 엎드려 절을 할 만하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음반이 키 보이스 최초의 음반이다. 그렇지만 키 보이스의 독집 앨범은 아니며 쟈니 리와의 ‘스플릿(split) 앨범’이다. LP의 표지를 보아서는 앞면과 뒷면이 구분되지 않는 표지를 가지고 있지만, 유심히 관찰하면 쟈니 리가 앞 면, 키 보이스가 뒷 면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개 작편곡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끼워팔기식 옴니버스 음반이 아니고, 그 점에서 음반 포맷 면에서도 모종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음반이기도 하다.

20020903055212-JohnyLee_KeyBoys_2키 보이스가 미 8군 무대에서 경력을 쌓은 존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음반 수록곡들 대부분이 ‘가요’가 아니라 ‘팝송’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시로서는 가수나 그룹이 작곡을 한다는 사실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으므로(‘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점을 두고 시비를 걸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외국의 팝송을 얼마나 잘 소화해 내고 있으며 그 성과가 이후의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키 보이스의 트랙들 가운데 홀수번 트랙(1, 3, 5번 트랙)들은 중간 템포에 차분하고 낭만적인 반면, 짝수번 트랙(2, 4, 6번 트랙)들은 업 템포에 흥겨운 곡이다. 이는 ‘비틀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때 ‘비틀스적’이라는 표현은 한편으로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파워와 에너지 넘친다는 뜻이다. 비틀스를 염두에 두고 말한다면, ‘고(故) 차중락과 차도균의 주류 팝의 감성과 김홍탁과 윤항기의 로큰롤 감성의 공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빠른 템포의 부기(‘텍사스 부기’) 리듬이 등장하는 “Wooly Bully”를 번안한 “웃기는 청춘”은 윤항기의 샤우팅 창법에 실려 로큰롤 특유의 에너지를 내뿜고(‘울리 불리’는 때로 ‘얼레 꼴레’로 발음된다), “Jambalaya”를 번안한 “석양에 타는 마음”은 휘청거리는 보컬이 광적이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돋구고, “Oh! Carol”을 번안한 “오! 첫날”은 첫사랑에 빠진 10대 소녀의 순수한 열정을 상큼하게 표현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킥 드럼(베이스 드럼)의 녹음이란 건 없던 시절’이자 ‘원 테이크로 녹음하던 시절’이라서 사운드는 풍성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런 곡들을 합주하면서 이들이 느꼈을 감정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뭐랄까 ‘모든 것을 잊고 순수한 환희에 빠지는 감정’이랄까… 여기에는 직역의 어색함을 피하면서 멜로디의 운에 맞춰 적절하게 번안된 한국어 가사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가사들은 특별한 자의식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과 이별에 대한 추상적 단어만 나열되던 주류 대중가요의 가사와는 달리 일상적이고 진솔하고, 때로는 원초적이다. 이 정도로. “어젯밤에는 사랑을 해 봤네 / 아 이 기분을 누가 안다냐”(“웃기는 청춘”)

다른 한편 2번 트랙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Are You Lonesome Tonight”을 번안한 “외로운 밤”이다. 연주가 심심하기는 하지만 차중락 특유의 매력적 보컬을 느끼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리고 4번 트랙 “바람아 너는 아느냐”는 놀랍게도 밥 딜런(Bob Dylan)의 “Blowing In The Wind”의 번안곡이다. 이 앨범에서 문제의 곡이고 이제까지 부각되지 않은 점이다. 이 곡의 연주나 가창(중창)은 밥 딜런의 레코딩보다는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레코딩에 가깝지만,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생톤’의 전기 기타로 연주하고 심벌의 연주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피터 폴 앤 메리와도 또 다르다. 즉, ‘포크’라기보다는 ‘포크 록’인데, 번안된 가사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로부터 애절한 사랑의 메시지로 둔갑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아쉬움은 포크 록이 이미 1960년대 중반에 한국의 ‘그룹 사운드’에 의해 수용되고 있었다는 놀라움으로 상쇄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의 곡은 첫 트랙에 수록된 “정든 배는 떠난다”이다. 뒤에 “정든 배”로 이름이 바뀌어 후기 키보이스에 의해 다시 녹음되어 생명을 이어가는 곡이자 일본곡 표절이라는 시비가 따라 다니는 곡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자는 키 보이스가 아니라 김영광이므로 표절에 대한 화살이 키 보이스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더구나 이 곡이 음계나 멜로디가 ‘왜색’ 혹은 ‘뽕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라틴 음악 스타일로 소화해 낸 밴드의 능력이 부각될 뿐이다. 퍼커션의 효과를 내는 드러밍, 마이너 코드에 텐션음을 집어넣는 기타 연주, 예의 그 구슬픈 전자 오르간 소리, 그리고 끊었다 다시 이어부르는 가창 등은 당시 대중가요의 일반 팬들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모멘트’로 남아 있다.

샘 더 섐 앤 더 파라오스(Sam the Sham & the Pharaohs)가 “Wooly Bully”를 히트시킨 것이 1965년이므로 이 음반의 발매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65년 이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애드 훠의 데뷔 음반보다는 뒤에 나온 것일 터이므로 ‘한국 최초의 록 음반’의 영예는 누리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애드 훠의 음반이 대중의 주목을 끄는데 실패한 반면, 이 음반은 키 보이스를 ‘인기 그룹’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키 보이스는 ‘한국의 비틀스’였는가 아니면 ‘한국의 몽키스’였는가. ‘번안곡을 연주하는 밴드’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돌 그룹’이었다는 점에서 키 보이스는 몽키스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멤버들의 이후의 굵직한 경력을 고려한다면 반짝 스타였던 몽키스에 비교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일 것이다. 비유는 시공간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20020901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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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탁의 증언에 의하면, 김영광이 12곡을 작곡해 왔는데 연주할 만한 곡이 없어서 “정든 배는 떠난다” 한 곡만을 선택했다고 한다.
* 쟈니 리의 트랙들은 업 템포의 흥겨운 로큰롤과 리듬&블루스, 느린 템포의 ‘슬로우 록’이나 ‘부루스’가 교대로 수록되어 있다. 특히 보컬의 애드립이 일품인 “What’d I Say”는 무대 위의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

수록곡
Side A
1. 오! 우짤꼬
2. 추억에 우는 마음
3. 얄궂은 사랑
4. What’d I Say
5. 사랑의 사슬을 풀어주오
Side B
1. 정든 배는 떠난다
2. 웃기는 청춘
3. 외로운 밤
4. 석양에 타는 마음
5. 바람아 너는 아느냐
6. 오!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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