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보이스 – 보칼 No.1 키 보이스 특선 2집(해변으로 가요/바닷가의 추억) – 유니버어살, 1970 “해변으로 가요”를 수록한 후기 키 보이스의 정점, 그리고 딜레마 [보칼 No.1 키 보이스 특선 2집(해변으로 가요/바닷가의 추억)]은 후기 키 보이스의 두 번째 앨범이다. 두 번째 앨범이지만, 신곡으로 이뤄진 정규 2집이라기보다는 히트곡과 애창곡 모음집의 성격에 가깝다. 이는 이 앨범이 ‘제2회 플레이보이컵 쟁탈 전국 보컬그룹 경연대회’ 최고 인기상 수상 기념작이기 때문이다. 경연대회 이름에 ‘5.16 기념’이란 구절이 들어가 있던 1969년 1회 대회 때 이미 최우수상과 연주상(조영조)을 수상했던 키 보이스는 이 음반으로 최고 인기 그룹사운드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다. 당시 이들과 인기 양강 체제를 이뤘던 히 파이브/히 식스와의 라이벌 경쟁이 더 격화되었음은 물론이다. 앨범의 구성을 보면 기발표곡이 절반, 외국음악 커버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은 신곡이자 머릿곡인 “해변으로 가요”의 음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해변으로 가요”를 그저 청년들의 여름 송가이자 ‘여름철 국민가요’ 정도로 간주하며 쉽게 지나쳤던 사람들이라도 이 정규 스튜디오 레코딩은 의외로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우선 기타와 키보드가 동시에 진행하는 ‘잊혀진’ 리프가 그렇다. 지금 들어도 ‘짧지만 나무랄 데 없는’ 싸이키델릭/하드 록 풍의 장중한 리프가 인트로를 장식하고 나면, 누구나 아는 그 낭만적 낙관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보컬 그룹으로서 특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 단번에 기억되는 반복적인 후렴구는 예상대로다. 하지만, 때로는 중창으로, 때로는 돌림노래처럼 지연되어 나오는, 화음이 인상적인 백킹 코러스와 화성에 이 노래의 장수비결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인트로의 인상적인 리프가 수미상관을 이루며 반복되면서 곡이 끝나는 구조도 흔한 스타일은 아니다. “해변으로 가요”가 여름 해변으로 가자는 충동질이라면, 이어서 나오는 “바닷가의 추억”은 지난 여름 만난 사람을 못 잊어 하는 ‘후속편’ 격인 연가(戀歌)이다(물론 “바닷가의 추억”이 먼저 발표된 곡이다). 출렁이는 파도 소리와 와와 기타(조영조)가 어우러지는 도입부는 시작부터 ‘그해 여름’에 대한 추억을 씁쓸하게 울렁이게 하는데, 가라앉는 듯한 보컬 하모니와 올갠 소리 또한 왠지 씁쓸한 느낌을 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리드미컬한 드럼 연주는 이 노래의 분위기를 청승맞음에서 구원한다. 키 보이스가 최고의 인기뿐만 아니라 ‘해변가요’의 지존 자리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를 이 두 곡은 충분히 보여준다. 이어지는 세 번째 곡은 “뱃노래”이다. 록 밴드의 민요 연주라는 게 현재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이 당시만 해도 민요는 록 밴드의 주요 레파토리 중 하나였다. 물론 이는 당시 그룹사운드들이 특별히 민요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각종 페스티벌에서 참가곡으로 국내곡을 일정정도 연주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플레이보이컵 쟁탈 보컬그룹 경연대회’의 경우 국내곡 2곡을 필수적으로 연주하도록 했다). 1970년대 그룹사운드의 음반에서 민요 커버곡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무튼 페스티벌의 그런 참가규정은 창작 관행이 없는 그룹사운드에게 곡 창작을 자극하는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당시 그룹사운드의 민요 연주처럼, 키 보이스의 “뱃노래” 역시 전형적인 국악 연주와 록을 결합한 것이다. 대금과 거문고와 북 연주로 구성된 도입부가 2분 넘게 지나고 나서야 노래의 코러스 부분이 나올만큼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만든 곡이다(히 식스의 민요 커버곡과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그런데 이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해변으로 가요” 스타일? “정든 배” 같은 트로트 스타일? 이 앨범에 실린 커버곡들은 어떤 힌트를 준다. 여기 실린 커버곡들의 경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사람” “오브 라디 오브 라다(Ob La Di Ob La Da)” “멀어져간 사랑”처럼 전기 기타가 리드하는 연주곡의 형태다. 원곡이 그리 시끄럽거나 빠른 곡이 아니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기타는 원곡의 노래 선율에 충실하고 전주와 간주 등에서 조금 애드립을 하는 정도이다. 정규 보컬리스트 없이 영미 팝/록 음악을 커버하던 미8군 캄보밴드의 관행이 이어진 사례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B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돈 렛 미 다운(Don’t Let Me Down)”부터 “불(Fire)”까지의 경우. 로킹한 원곡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이 커버들은 카피지만 상당히 맛깔스런 연주를 들려준다. 이 커버들은 키 보이스의 다른 곡들(전문 작곡가가 만든 곡이더라도)과 현격한 스타일과 사운드의 차이를 보인다. 무겁고 시끄러운 사운드, 때로 샤우팅도 마다하지 않는 보컬, 능숙한 연주력은 키 보이스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록의 역사가 어떤 면에서 카피 밴드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곡을 자신들에 맞게 소화해서 능숙하게 연주하는 능력은 탁월하며, 현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더해서, 커버곡의 오리지날 아티스트들인 비틀즈, 박스 탑스(The Box Tops), 스테픈울프(Steppenwolf), 아더 브라운(Arthur Brown)은 그 당시 그룹사운드들이 선호하던 영미 록의 스펙트럼과 이들의 지향점을 일별하게 한다. 전작 [Key Boys’ Soul & Psychedelic Sound](1969)로 그룹사운드가 전문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 음반을 내놓는 시도를 한 바 있는 이들은 이 앨범으로 자신들의 기존 히트곡의 재녹음 버전과 외국 음악 커버를 반반씩 섞고 신곡을 가미하는 기획음반을 선구적으로 선보였다. 단순히 옛 레코딩들을 모아놓은 히트곡 모음집이나, 외국 음악 커버곡 모음집이 아니라, 나름대로 기존 인기곡들을 재녹음하고 로킹한 커버곡들도 상당수 선곡하고 신곡을 머릿곡으로 내놓는 기획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공을 들인 결과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곡에 가장 부합하는 설정과 표현으로 곡의 질을 높인 조영조의 기타 또한 밴드의 팀워크에 충실한 좋은 사례였다. 그렇지만 키 보이스의 곡들과 외국 커버곡들 사이의 상당한 스타일 차이는 문제점으로 남는다. 전작에 비한다면 훨씬 세련된 편곡과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든 배”나 “미련(내 말 전해주오)”의 연주자가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나 “불(Fire)”의 연주자와 동일하다는 것은 당시 그룹사운드의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다. 결국 키 보이스는 다음 앨범에서 “해변으로 가요” 스타일의 서프 음악이 아니라 “정든 배” 스타일의 트로트 록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게 된다. 그런데 어쩌랴. 이들의 최대 히트곡 “정든 배”와 “해변으로 가요” 모두 일본 노래를 표절한 곡이라는 걸. 딜레마는 남는다. 20020812 | 이용우 pink72@nownuri.net 0/10 수록곡 1. 해변으로 가요 2. 바닷가의 추억 3. 뱃노래 4. 미련(내 말 전해주오) 5. 그 사람(경음악) 6. 오브라디 오브라다(Ob La Di Ob La Da) 7. 정든 배 8. 돈 렛 미 다운(Don’t Let Me Down) 9. 애기처럼 울어라(Cry Like A Baby) 10.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 11. 불(Fire) 12. 멀어져간 사랑(경음악) 관련 글 로스트 메모리스 1965-1972: 키 보이스와 ‘부루 코메츠’, 동아시아 록 음악의 잊혀져 가는 기원을 찾아서 – vol.4/no.16 [20020816] Blue Comets [Past Masters: 1965-1972] 리뷰 – vol.4/no.16 [20020816] 키 보이스 [Key Boys’ Soul & Psychedelic Sound] 리뷰 – vol.4/no.16 [20020816] 키 보이스 [스테레오 앨범 Vol. 3] 리뷰 – vol.4/no.16 [2002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