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이 동북아시아에서도 월드컵 트로피를 안아간 비결은 무엇일까요? 밤낮만 바뀌었을 뿐 계절은 똑같은 유럽과 달리(그리고 계절은 바뀌어도 밤낮은 똑같은 아프리카와 달리) 계절과 밤낮이 모두 바뀌어서 만반의 준비를 다했기 때문일까요? 아, 말도 안 됩니다. 비슷한 조건인 아르헨티나는 죽을 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 둡시다.

어쨌든 ‘브라질 음악’은 ‘브라질 축구’만큼이나 막강합니다. 1년전쯤 ‘포르투갈어로 노래부르는 디바들’ 어쩌구 하는 제목의 연재글에서 브라질 음악을 디바 중심으로 다뤄보았습니다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브라질 음악은 ‘선수층’이 두텁고 ‘개인기’가 능합니다. 거기에 ‘흑백의 조화’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음악’만큼이나 대중음악이 풍성한 나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제가 알고 있는 음악도 빙산의 일각, 일각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브라질 음악의 전문가를 자처할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핑계가 있어야 할텐데 ‘월드컵 우승’이란 건 이제 핑계도 되지 않을 것이므로 다른 핑계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행히도 마침 핑계가 생겼습니다. 다름 아니라 몇 일 있으면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까에따누 벨로주(Caetano Veloso) ‘형님’의 환갑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환갑 노인네보고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우습기는 합니다만,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를 적절히 부를 명칭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까에따누 벨로주가 질베르뚜 질(Gilberto Gil), 갈 꼬스따(Gal Costa), 톰 제(Tom Ze), 마리아 베타니아(Maria Bethania), 무딴치스(Os Mutantes) 등과 함께 1960년대 말 뜨로삐까이아(tropicalia), 뜨로삐까이즈무(tropicalismo)라고 불리는 ‘문화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은 브라질 음악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역사적 사실’일 것입니다. 운동이란 ‘운동권’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한국에서 운동이라는 말이 다소 이상한 뉘앙스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사건 이전과 이후 브라질의 음악과 음악문화는 매우 달라졌습니다.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국제적이면서도 국민적인(브라질적인) 음악의 태동과 그와 연관된 문화현상에 대해서는 언제 다시 길게 언급해야할 것입니다.

뜨로삐까이아는 이제 30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그 유산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30년 이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음악을 들어보면서 현재성을 검토해 보고 몇 일 뒤에는 30년이 지난 오늘날 그 유산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설프고 소략하지만 이게 브라질 음악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는 가장 적절한 길로 생각됩니다. 20020729 | 신현준 homey@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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