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및 정리 : 김필호 들어가며 제니 초이와 연락이 오가기 시작한 건 내가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을 구입한 직후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팬이 음악인에게 접근을 시작하게 마련일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 반대였다. 인터넷 상에서 CD를 구매할 때 적어 넣은 주소로 보내온 그녀의 이메일에는, 사줘서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그녀의 이메일 소식지 수신 그룹에 대한 가입 권유, 그리고 자기는 자동으로 메시지를 작성/발송하게 할 만큼 컴퓨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편지는 직접 써 보내는 거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나는 답장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록 특집으로 제니 초이/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노라고 말했고, 그녀의 두 앨범에서 몇몇 곡을 사운드 샘플로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곧 돌아온 이메일에서 그녀는 내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고, 글이 실리게 되면 자기에게 한 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그녀의 공연도 한 번쯤 보고 싶었고, 전해 줘야할 글도 있었지만, 기왕 200킬로미터가 넘는 시카고까지 나들이가야 하는 마당에 인터뷰라도 해야 수지가 맞는 것 같아 그러기로 마음을 굳혔다. 6월 말이었지만 일찍 찾아든 폭염을 무릅쓰고 그녀가 솔로로 무대에 서기로 한 벅타운(Bucktown) 거리 축제로 향했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썰렁하기만 한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제니는 무대 근처 천막에서 약혼자인 동시에 그녀의 밴드 써드 쉬프트(Third Shift) 드러머이기도 한 필립 스톤(Philip Stone)과 한 백인 중년 아주머니, 그리고 한 아시아계 청년과 얘기를 나누며 장비 체크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아주머니는 필립의 어머니, 즉 제니의 장래 시어머니였고, 아시아계 청년은 시카고 아시아계 영화제 공연에서 만난 한국계 팬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제니는 내게 두 가지의 비/희소식을 전해 주었다. 우선 나쁜 소식은 그녀가 위궤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7월 20일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곧 시작된 공연에서, 한줌밖에 안 되는 관객을 앞에 두고도 성심 성의껏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한편으로 즐거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소 안타깝기도 했다. 대략 40분간의 짧은 세트를 끝내고 무대를 내려온 제니와 시작하게 된 인터뷰의 전반부는 출신 배경, 성장기, 데뷔 앨범을 냈던 시기, 그리고 페미니즘과 여성 문제에 관한 견해가 주로 이야기되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계) 여성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여느 이민 2세 젊은이들에게서는 보통 기대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제니 초이, 혹은 최수진과 나눈 얘기들을 적어 보기로 하자. 예전 얘기들 – 가족과 성장기 사진 : Jenny Choi & the Third Shift – 오른쪽부터 제니 초이, 마이크 스미스(Mike Smith, 기타), 토니 아로니카(Tony Aronica, 베이스), 필립 스톤(Philip Stone, 드럼) [weiv] 가족사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 하는데요. 그러니까 언제 부모님이 이민 오셨는지 등의 얘기들 말이죠. 제니 초이(Jenny Choi) 우리 엄마는 피아노 선생님이에요. 이곳 시카고에서 피아노 연주로 석사학위를 받으셨죠. 우리 아빠가 오시게 된 건 이곳에서 형제들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돈벌이를 할 기회를 찾고 있었죠. 그래서 아빠의 전 가족이 함께 여기로 이주했어요. 그 뒤에 우리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려 했고, 그래서 엄마도 이곳에 온 거죠. [weiv] 전에 한 인터뷰에서 TV 쇼 ‘솔리드 골드’와 밴드 시카고, 로라 브래니건 등 1980년대 팝 음악을 들으면서 자라났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음악적인 영향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고, 또 요즘 음악 중에서는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제니 이런, 글쎄요. 심지어 저 자신도 잘 몰라요, 늘 바뀌거든요. 재즈를 좋아해요. 매우 흥미롭거든요. 하지만 또 인디 록도 많이 들어요. 록 음악을 좋아하죠. 요즈음엔 훌륭한 인디 록 밴드들이 하도 많아요. 다른 밴드들만큼 인기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요. 디스멤버먼트 플랜(Dismemberment Plan)을 좋아하구요. 전엔 사지(Sarge)라고 불렸던 밴드가 있었죠. 지금은 레퓨테이션(Reputation)이라고 하는데, 얘네들 정말 좋아요. 인기 있는 밴드들 중에서는 지미 이트 월드(Jimmy Eat World)를 좋아하죠. 걔네들은 전엔 별로 인기 없었는데, 지금은 정말 대단한 인기죠. 그리고 뷰욕(Bjork)을 아주 좋아하구요… 그런 것들이죠. 옛날 재즈하구요. 인터뷰 샘플: 음악적인 영향과 취향 [weiv] 대학시절 얘기로 잠깐 건너뛰어 볼까요. 음악 전공이었죠, 맞나요? 제니 아뇨. 처음엔 음악 전공으로 시작했지만 바꿨어요. [weiv] 그럼 전공이 뭐였죠? 제니 제 전공은 영어 교육이에요. 제가 지금 하고있는 일이죠.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요. [weiv] 그러니까 전업 음악인이 아니란 말인가요? 제니 그렇죠(웃음). 가난하고 싶진 않거든요. 공립학교 선생이라 가난하긴 하지만, 그래도 굶고 싶은 건 아니에요. [weiv]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여간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몇 가지나 되는지 궁금해서 그랬던 건데요.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제니 기타도 치죠. 솔로 연주를 할 때는 기타를 많이 치곤 했어요. 하지만 전 좀 게을러서, 추가 장비들을 갖고 다니는 게 싫어서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연주해요. [weiv] 정규 음악 교육은 그럼 엄마한테서 받은 건가요? 제니 그렇죠, 우리 엄마한테요. [weiv] 대중 앞에서 음악을 하기 시작한 건 대학시절부터인가요, 아니면 그보다 더 전에? 제니 열 다섯이요. [weiv] 열 다섯 살 때부터라구요? 제니 예. 이 근방의 카페 같은데서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공연 같은 게 있었죠. 그리고… 에반스턴(Evanston: 시카고 북부 위성도시) 카페들, 반즈 앤 노블(Barns & Noble: 대형 서점 체인) 같은 데서두요. [weiv] 그러니까 새파란 십대 시절부터 싱어 송라이터로서 일상적 경로를 밟기 시작한 거로군요. 제니 그래요. [weiv] 오늘 이 자리에 마이크 (Mike Smith: 제니의 기타리스트)는 안 보이는데, 그래도 그 친구와 함께 연주한 게 꽤 되죠? 제니 예, 하지만 그 친구는 밴드를 그만 뒀어요. [weiv] 그래요? 그건 의외네요. 제니 지난 3월부터 새 기타리스트가 들어왔어요. 개리 투(Gary Tu)라고 하는 중국계 친구죠. 마이크도 저처럼 고등학교 교사에요. 일단 교사가 되고 난 뒤로는 밴드 활동을 할 시간이 나지 않았던 거죠. 저는 좀 음악 하는 일에 정신팔린 편이지만, 마이크는 저처럼 빠져있진 않았거든요. 이 일이 (그에겐) 좀 과했던 거죠. [weiv] 데뷔 앨범을 들여다보니 리즈 초이(Liz Choi)라는 이름이 있던데, 자매지간인가요? 제니 예, 제 여동생이에요. 바이올린 주자죠. 드폴(DePaul)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해요. [weiv] 동생은 지금 뭘 하지요, 오케스트라에 있나요? 제니 아직 학교를 끝내지 않았거든요. 졸업하고 나선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바이올린 레슨을 할 거예요. 달콤쌉싸름한(Bittersweet) — 1990년대 말 여성 싱어 송라이터로서 [weiv] 첫 번째 앨범을 들었는데, 제 느낌으론 전반적 음조가 다소 고백적이라고나 할까요. 종교적이거나 영적이라고까지 하긴 그렇다 치더라도… 제니 [Bittersweet] 말인가요? 그래요… 두 번째 앨범에 비한다면 그건 약간 더 개인적/사적(personal)이었다고 봐요. 왜냐면 거기 실린 많은 곡들이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썼던 것들이기 때문이죠. 첫 번째 앨범은 고등학교 신입생 때부터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의 기간을 나타내요. 그러니까 그 4년 동안인 거죠. 반면에 두 번째 앨범은 그 뒤로 단 2년을 포괄해요. 고등학교 시절엔 (우는 시늉을 하며) 다 이렇쟎아요. 그래서 그 시절 노래들도 좀 더 그랬던 거죠. [weiv] 하지만 [Bittersweet]가 실제로 나온 건 대학 3학년 때였쟎아요. 제니 그래요. 대학 가기 전까진 그럴 돈이고 뭐고 없었으니까요. [weiv] 종종 토리 에이모스(Tori Amos)에 비교되곤 하던데, 여러 음악인들이 일반적으로 다른 음악인들에 비교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요. 그런 비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니 글쎄요… 제 생각에 그건 불가피해요. 그리고 좋은 거구요. 밴드를 하는데 누가 와서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채) “너네들 음악은 누구 것 같냐?”고 묻는다고 해 봅시다. 거기 대고 “누구 것 같지도 않아. 우린 독창적이야”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고 싶어하는데, 때론 그걸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하자면 비교를 하는 거죠. 처음엔 저도 (화난 목소리를 지어내며) “난 토리 에이모스 싫어해!”라고 하기도 했죠. 지금은 “뭐, 괜찮아. 원하는 게 피아노 음악, 피아노 록이라면 비교해 보라지 뭐” 하죠. 인터뷰 샘플: 토리 에이모스와의 비교에 관해서 [weiv] 그런데 토리 에이모스의 음악을 좋아하긴 하는 건가요? 제니 고등학교 땐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그녀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토리 좋아하죠. 싱어 송라이터들 좋아해요. 하지만 록 밴드들만큼 많이 듣진 않아요. 그리고 그녀는 좀 요상해요(weird). [weiv] 그러니까 그런 음악으로부터 차츰 성장하며 벗어난 거로군요. 제니 그래요, 그런 거죠. [weiv] 이 질문은 토리 같은 여성 싱어 송라이터들과 관련된 거기도 한데, 1990년대 후반, 그러니까 대학 시절에 릴리쓰 페어(Lilith Fair)가 있었죠. 거기 갔었던가요? 당시 그들과 어떤 관계가 있었나요? 제니 첫 번째 릴리쓰 페어를 관람하러 갔었죠. 전 샴페인(Champaign: 제니의 모교인 일리노이 주립대가 위치한 소도시)에 살고 있었고, 뒤이어 제 첫 앨범이 나왔는데, 그땐 약간 정신 없이 돌아가는 때였어요. 저도 여성 싱어 송라이터의 유행(trend)에 끼여들게 된 거죠. 재미있는 건, 당시 전 제 사운드가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메이저 음반사의 관심을 끌게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알다시피 릴리쓰 페어의 열기가 식어버린 지금, 그 관심은 딴 데로 가버렸죠. 전 제 사운드가 나아져 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하지만 첫 번째 앨범에서의 과장 광고 효과 같은 건 덜하죠. 그래요, 그런 것들이 기억나네요. 그게 저와 그들과의 관계죠. [weiv] 대학시절 했던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아니 디프랑코(Ani DiFranco)의 영향을 언급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글쎄, 음악적인 면에서는 잘 모르겠던데, 아마도 음악 비즈니스를 꾸려가는 방식이랄까, 그런 면에선가요? 제니 바로 그래요. 하지만 제 생각에 그녀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아니 디프랑코에 대한 반발같은 게 생기는 건, 극단적인 정치적 견해라는 면에서 그녀가 아주, 음… 거의 군대식(military)이까지 한 탓이죠. 그녀가 특정한 결정들을 내릴 때 보인 그런 경직성 덕분에 팬들도 그녀가 위선적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녀의 삶과 그에 관련된 것들에 한해 말하자면… 그래요, 그건 내가 모델로 삼고 싶은 거죠. 페미니즘, 그리고 역사의 기억 [weiv]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여기나요? 제니 예. 제 말은, 제가 생각하기에 이젠 ‘페미니스트’란 말은… 어떤 종류든 아주 극단적인 남성 증오를 내포한다면, 그건 적실성이 없어요(irrelevant). 페미니스트들의 중요 관심사들에 한해 본다면, 그래요 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데 동의해요. 그게 절 페미니스트로 만든다면, 그렇게 되라지요. 이젠 그것도 예전만큼 시의성을 띠진 않는데, 세상과 시간이 점점 더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겠죠. [weiv] 직접 세운 ‘오나’라는 음반사 이름은 한자 ‘女’의 일본식 발음인데, 그게 또한 러시아어로는 (여성 3인칭 대명사) ‘그녀’를 의미한다는 건 알고 있었나요? 제니 정말요? 모르고 있었는데, 그거 좋네요. 나도 써먹어야지. [weiv]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 따름이죠. 운영중인 이메일 소식지 수신 그룹에 저도 가입했는데, 최근 소식지를 보니 “큼지막한 문신”을 해볼까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제니 이런, 그런 얘길 퍼뜨리면 안되는데…(웃음)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weiv] 사실은 문신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그게 2차 대전시 한국인 종군위안부(‘정신대’)를 기리기 위한 거라고 하길래… 제니 그래요, 2차 대전 한국인 종군위안부들이요. 실은 제 할머니를 위한 거예요. 아직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 못한 것이죠. 한국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뤄 그 악명을 높인 다큐멘터리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그게 결코 주류 미디어까지 뚫고 들어가지 못하리란 건 명백하지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가를 잊어버릴 테구요. 그래서 그건 나 자신,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게 어떤 것이었는가를 환기시키는 것, 기념품같은 거지요. [weiv] 종군위안부들에 대해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요? 제니 한국의 문화사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보고 있었죠.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기억나는 건 언젠가, 아마도 일본과 한국에 대해 뭔가를 기념하는 거였는데, 할머니는 저한테 신문을 보여주셨어요. 거기엔 무수한 한국인들의 머리가 잘려나간 채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사진이 있었죠. 할머니는 그걸 저한테 약간 설명해 주셨어요. 그리고 일본인들이 어떻게 한국인 여성들을 학대했는가에 대해 언급하셨지만, 진짜로 설명해 주신 건 아니었어요. 전 그게 더 커서 스스로 알아봐야 할거라고 짐작했죠. [weiv] 충격이 컸겠군요. 제니 그래요. 그 한국 신문에서 본 이미지는 충격적이었어요. 나중에 보게 된 것들도 그렇고. 전 그저 그런 것들을 계속 기억하고 있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weiv] 그런 것들에 관해 곡을 쓸 생각을 해 본적이 있나요? 제니 그래요. 실은 ‘Coarse’는 우리 엄마, 할머니, 그리고 여자 조상들을 위한 노래에요. 우리 가족에서 여자들은 아주 강인하고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아요. 아무 말도 안해요. 남자들은 (반대 의미에서) 아주 강하죠. 언제나 소리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그런 것들이요. 그런 것들에 대해 더 써보고 싶지만, 현재로선 ‘Coarse’가 제겐 그런 노래예요. (‘Coarse’ 가사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고 이 향그런 백합들은 오직 우리 역사 속에서만 한들거리고,” 그런 거요. 인터뷰 샘플: 한국 여성 수난사, 그리고 노래 ‘Coarse’에 얽힌 메시지 * Jenny Choi와의 인터뷰 2에 계속됩니다. 관련 글 Jenny Choi & The Third Shift [Grand and Ashland] 리뷰 – vol.4/no.15 [20020801] Jenny Choi와의 인터뷰 (1) – vol.4/no.15 [20020801] Jenny Choi와의 인터뷰 (2) – vol.4/no.15 [20020801] Jenny Choi와의 인터뷰 (영문) – vol.4/no.15 [20020801] Asian American Grrrl Power in Chicago: Jenny Choi & The Third Shift / Kim – vol.4/no.10 [20020516]